대곡면 덕곡리 670(마진한실로 11)는 남강이 용트림을 하듯 흘러오다 진성면과 대곡면을 가로 지르는 곳에 혈을 맺었다. 그곳에 전주이씨의 오당吾戇 이인첨李寅瞻과 남하南下 이두빈李斗贇을 기리는 송월정松月亭이라는 정자亭子를 마련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44m로 표시하고 「위도35°13'28.2"N 경도128°11'55.4"E」라 표시한다.
송월정 앞에는 높이 22m, 가슴높이 둘레 343cm, 나이 150년 정도의 팽나무 노거수가 우뚝 서 있어 자전거 동호인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송월정의 좌측에는 『완산이진선처유인김해김씨렬행비完山李震善妻孺人金海金氏烈行碑』가 비각에 모셔져 있다.
솟을대문에는 숭모문崇慕門이라 편액했고 본정에는 송월정松月亭이라 편액했다.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으며, 마루 위에는 송월정기松月亭記, 송월정중수기松月亭重修記, 송월정량송松月亭樑頌, 松月亭原韻 및 松月亭次韻 등 다수의 편액이 걸렸다.
松月亭記
讓寧大君之裔 流落南鄕 其一支 有居晋陽 東梧谷里 雖其繁榮之稍謝而金柯玉葉 尙帶王春舊色 蓋亦至德之餘休也 相傳大君九世孫諱琥望 實始奠此邑 號默隱 肅宗朝推蔭贈參議 其字寅瞻號吾戇亦 以蔭贈漢城尹 又其字斗贇 號南下 贈主簿參議公 墓舊有齋事實己 具近復 爲其下兩世起一亭 而扁曰松月 後孫丙禧來請余記之余於晋先鄕也 傳聞有舊不可以莫之述也 因念松月之號雖倣 諸山名而亦有取義夫 松之於衆木非有燦爛 可觀而所尙者 不以盛衰改節 月之爲光雖 以時盈虧 而自其本體 言之卒莫有消長也 維人亦然盛衰消長 固時運之所不能無 而至其衰 而不衰消 而可長必有道 以持之是道也 卽人之所待以生而不 爲時運之所推移者也 想黙隱之黙 吾戇之戇其殆有衰也 之意者乎 而其歛退自守 不以求異於人 亦若松之混凡木 而月之晦其明者乎 乃若南下公之性品 有法度敎子以忠孝 其見於實紀者 槪可悉矣 是豈非本體之不虧 而且能保有志節 以待來後者乎 吾願李氏之齋 明于是燕 語于是一 惟是道之胥 相紬繹念念存存 以體于行如 月之恒如松之無 不戒承 則其於上追 大君之德 而不失爲是祖之後人也幾矣 請以是而記 諸松月之扁
歲壬寅肇夏上浣 義城 金榥記
송월정기 松月亭記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예가 남향南鄕으로 내려와 그의 일지一支가 진양 동쪽 오곡리梧谷里에 거주하니 비록 번성繁盛치는 않으나 금지옥엽金枝玉葉이 오히려 왕춘王春¹⁾의 구색舊色을 띠은 것은 대개 대군大君의 지극한 그늘이다. 대대로 이어 서로 전해 오기를 대군의 9세손으로 이름이 호망琥望인 분이 처음 이 고을에 자리 잡으니 호號는 묵은默隱이다. 숙종조肅宗朝에 참의參議를 증직贈職하였고 자字는 인첨寅瞻이요 호號는 오당吾戇이니 또한 한성윤漢城尹을 증직贈職하였고 그의 자字는 두빈斗贇이요 호號는 남하南下니 주부主簿를 증贈하였다. 참의공參議公의 묘墓하에 재실齋室이 옛날 있었다는 사실이 있는데 근래近來에 다시 그 아래에 두 세대의 선조를 위하여 정亭을 세워 송월松月이라 하고 후손 병희丙禧가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하니 진양晉陽은 나의 선조향先祖鄕이라 예부터 전해 들었으니 기술記述치 않을 수 없다. 생각건대 송월松月이란 호號가 비록 산명山名에 의방依倣했으나 또한 그런 의의義意가 있다. 대개 송松이란 것이 중목衆木과 같이 찬란燦爛해 가관可觀할 것은 없으나 숭상崇尙할 것은 성쇠盛衰로 개절改節²⁾치 않음이요 월月의 빛이 비록 때로는 영휴盈虧³⁾가 있으나 그의 본체本體는 소장消長이 없다. 오직 사람도 그와 같이 성쇠盛衰와 소장消長이 시운時運에 따라 없지는 않으나 그 쇠衰해도 쇠衰치 않고 소消해도 장長한 것은 반드시 도리道理로써 자지自持하는 것이니 이의 도리는 즉 사람의 삶이 시운時運에 따라 옮기지 않는 것이라 묵은黙隱의 묵黙과 오당吾戇의 당戇이란 것이 아마도 쇠세衰世를 의미意味한 것이다. 그의 은퇴隱退에 자수自守하여 중인衆人과 다름이 없는 것은 역시亦是 송松이 범목凡木에 섞인것과 같다고 하겠다. 도한 이렇듯 남하공南下公과 같은 성품性品이 엄嚴하고 법도法道가 있어 자손子孫을 충효忠孝로 가르침은 그의 실기實紀에서 가히 알아보겠다.
이것이 어찌 본체本體가 휴虧치 않고 또한 지절志節을 보존하여 후손에 기대企待치 않을 것인가. 원願컨대 이씨李氏가 여기에 제계齊戒하고 여기에 휴식休息하여 항상 송松의 무변無變함과 같이하면 이러한 조상의 후손됨을 잃지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송월정松月亭에 쓴다.
1962년 초여름 15일 전에 의성 김황金榥 쓰다.
【주석】
왕춘王春¹⁾ : 음력 정월을 말한다.
개절改節²⁾ : 변절하다.
영휴盈虧³⁾ : 가득참과 이지러짐
松月亭重修記
진주의 동 사십여리 대곡면 오곡리는 전주이씨 세장지향이다. 지리산 줄기가 살아 굼틀거리는 용처럼 구불구불 내려와서 살포시 도사린 그 사이로 청정옥수인 남강이 흐르니 요산요수의 취향을 찾아 음풍농월을 즐기는 선비들이 이러한 승구를 비워 둘리가 있겠는가 정사나 사우를 지어 꾸미고 다듬어서 긍구긍당의 숭고한 정신을 하나의 긍식으로 삼고 거룩한 조상의 유지를 계술하고 찬란한 유방을 후세에 전할 터전을 마련하면서 음덕을 덮어 길러준 은공에 보본하기 위하여 갱장지도의 성의를 다하고자 마련한 미지이기에 어떻게 형식이어야 되겠는가. 그리하여 태종태왕太宗太王 장자이신 양녕대군讓寧大君 11세손 휘집첨諱宙瞻 호오당號吾戅 증 한성부윤漢城府尹 겸 오위도총관五衛都摠과 12세손 휘두빈諱斗贇 호남하號南下 증 선무랑주부宣務郞主簿 부자분을 추모 봉향하는 정사를 서기 1957년 정유丁酉에 창건하여 50녀간 예를 다해 오다가 세월이 오래되어 동량과 제벽이 허물어져 더 이상 지탱하기가 어려워 산하 자손 인기·신기·성기·종규·종수·종명·종섭·종팔·종진·광도·광국·광선·석민·철한 등 첨종이 합문하여 옛 정사를 허물고 부지도 확장하여 새롭게 중수키로 합의하였다. 재원은 다년간 비축한 수곡의 원리금과 도로부지에 편입된 종산의 보상금으ㄹ합하여 제반 비용을 감당하고 병호씨丙琥氏의 동역 아래 서기2001년 신사辛巳 초봄에 착공하여 삼간본정을 비롯하여 대문과 원장을 단장하고 동년 가을에 준공하여 주련은 옛것을 확대하고 문호와 중수기 원차운은 손질하여 높이 거니 검은 바탕에 흰글씨가 일월을 가린다.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세세년년 이어가는 제례행사는 조상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성의 표시이고 자신들의 뿌리를 확인하고 일가 간의 유대감과 혈통의식을 고취시키고 문중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이와같이 서술함은 귀문에 병호丙琥·종규鍾奎 두분의 청문에 의한 것이다.
단기 4340년 丁亥 念夏節
光山後人 金永乾記而並書
출처 및 참조
대곡면지-대곡면지편찬위원회/도서출판 대보사(2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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