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52

개천절 천제를 올리는 김해 소도마을

개천절의 의미를 나름대로 뜻깊게 보내려고 우리민족 고유의 행사를 진행하는 곳이 창원시에 인접한 곳을 수소문 해보니 김해 蘇塗(소도)마을에서 개천절 행사를 한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 나섰다. 개천절은 국경일인데 정작 우리들은 개천절이 무엇을 기리기 위함인지 알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인터넷의 지도를 중심으로 길을 검색하여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고 김해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소도마을에 도착했고 天神(천신)에 제사를 지내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소도마을을 찾아가시려는 분들은 김해시 생림면 나전리 산 194-2번지를 입력하고 가면 임도에 소도마을이라는 돌 표지석이 세워진 곳을 찾으면 된다. 蘇塗(소도)란 청동기시대의 마지막 자존심의 상징이며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시조신앙이다. 철기시대를 ..

달천계곡 오토캠핑장 이용과 산포된 비지정문화재 답사

우리 마을 인근에서 여름휴가를 알차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하늘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다는 창원의 명산으로 명성황후가 3일간 기도를 올린 곳이기도 한 천주산[天柱山, 638.8m]과 “달천계곡 오토캠핑장”이 떠올랐다. 천주산 정상에는 매년 4월이면 ‘진달래 축제’가 열려 아름다움을 즐기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달천계곡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허목[許穆,1595~1682]의 유허비와 계곡의 바위에 그가 새겼다는 해서체의 ‘달천동(達川洞)’ 글씨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의 정면에는 「문정공미수허선생유지(文政公眉叟許先生遺址)」라 새겼고 뒷면에는 「무인 시월 일달천계(戊寅 十月 日 達川契)」라 새긴 것으로 보아 1938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앞면의 폭이 50cm, 옆..

최윤덕 장군 생가지에 대한 이견

생가지와 유허지는 완전 다른 개념이다. “정열공 최윤덕장상 연보”에는 “부북면 내곡에서 출생했다.”고 기록하여 생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유허지와는 아무른 관련이 없다. 따라서 “정열공 최윤덕장상 연보”는 수정해야 한다. 창원시는 “이 외에도 영조대 국가차원에서 간행된 『여지도서』(창원도호부, 인물조)에는 ‘최윤덕은 부북 내곡인’ 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기록은 최윤덕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공신력 있은 자료이며. ‘무동리’와 관련된 문헌 자료는 19세기까지 자료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고 답하였습니다. 창원시의 답변이 문제가 있는 것은 『여지도서』는 유허지란 뜻으로 말한 것이지 생가지의 이야기는 아니다. 결국 출생이란 생가지 이야기이다. 창원시가 말하는 19세기 당시 ‘부북 내곡’이..

최윤덕 장상 연보 수정필요

창원 용지역사공원에 세운 최윤덕 장상 연보는 엉터리 기록이므로 수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역사를 만든 사람에게 그 비용을 청구해야 할 것이다. 금석문에 기록한 연보를 보면 “고려우왕 2년(1376) 5월 16일 창원부 북면 내곡리에서 양장군 최운해 장군의 장남으로 출생하다. 6세에 모친 창원이씨 별세(양수척에게 위탁)”라 기록했다. 최윤덕 장군의 출생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을 하면서 태어난 곳은 엉터리로 적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최윤덕 장상 생가 터 고증 중단되나’라는 제목의 경남도민일보 2011년 3월 24일자 이일균 기자의 기사에 의하면 최씨 문중에서 제공한 목판본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 목판본에 의하면 ‘정열공 유지 창원북면’이라 적고 내곡리라 표기된 곳에 집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원 봉림동의 지명탄생과 태백산의 근거

봉림동 역사의 시작 봉림동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존재하고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봉림산鳳林山 자락을 따라 펼쳐져 있는 역사가 살아있는 땅이다. 532년 밀양의 이궁대에서 가야의 10대 구형왕이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선양하자 가락국을 사랑한 많은 무리들이 이곳 퇴로촌退老村에 들어와 정병산精兵山에서 병사를 조련하고 말을 키우며 가락국 회복을 위해 힘을 키웠던 땅이다. 그래서 퇴로촌을 진촌進村이라 불렀는데 지금의 퇴촌동退村洞이 그곳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물러날 退’라는 글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즉 '나아갈 진進' 앞으로 나아 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적인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퇴계 이황선생이 자신의 호에 사용한 이유도 같은 의미이다. 나라를 세우기 위한 ..

경상남도 한자지명 정리

昌原市 창원시 聖山區 성산구- 加音洞 가음동 加音丁洞 가음정동 貴谷洞 귀곡동 貴山洞 귀산동 貴峴洞 귀현동 南山洞 남산동 南陽洞 남양동 南支洞 남지동 內洞 내동 內里洞 내리동 大方洞 대방동 大元洞 대원동 佛母山洞 불모산동 沙巴洞 사파동 沙巴丁洞 사파정동 木 洞 목 동 盤溪洞 반계동 盤林洞 반림동 盤松洞 반송동 盤知洞 반지동 三丁子洞 삼정자동 上南洞 상남동 聖住洞 성주동 新村洞 신촌동 安民洞 안민동 梁谷洞 양곡동 淵德洞 연덕동 完岩洞 완암동 外 洞 외 동 熊南洞 웅남동 月林洞 월림동 赤峴洞 적현동 中央洞 중앙동 昌谷洞 창곡동 遷善洞 천선동 吐月洞 토월동 昌原市 창원시 義昌區 의창구 - 德亭洞 덕정동 道溪洞 도계동 東井洞 동정동 斗大洞 두대동 明谷洞 명곡동 明西洞 명서동 鳳谷洞 봉곡동 鳳林洞 봉림동 北 洞 북..

최윤덕장상 생가지로 지정한 경남도기념물제145호는 생가지가 아니다.

1995년 05월 02일 경상남도가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한 창원시 의창구 북면 내곡리 1096, 1097, 1099번지 일대 2,840㎡의 면적은 생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최윤덕장상의 생가지로 지정한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는 해지되어야 한다. 생가지(生家地)에 대한 경상남도의 기준은 「생가(生家)’의 사전적 용어의 의미는 “사람이 태어난 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생가지(生家地)’는 “사람이 태어난 집터”라는 의미가 될 것이며, 광의적인 의미로는 “사람이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생가지란 사람이 태어나야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 생가지로 지정한 북면 송촌마을 뒷산(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