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00

합포구 우산동 창열각 彰烈閣

합포구 밤밭고개에서 현동으로 내려가다 좌측에 처음으로 만나는 마을이 합포구 우산동으로 이곳 합포구 우산동 233번지에는 열녀안씨 정려각(烈女安氏 旌閭閣)과 비석 및 郡守尹侯候愛民善政碑(군수윤후후애민선정비), 通政大夫姜俊模惠恤褒善碑(통정대부강준모혜휼포선비) 등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곳 열녀안씨 정려각에는 창열각(彰烈閣)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편액의 말미에 ‘광무7년 계묘 3월 일’이라는 글씨가 있어 1903년에 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안에는 烈女順興安燕之碑(열녀순흥안연지비)라 적고, 崇禎紀元後三丁巳七月日立(숭정기원후삼정사칠월일입)이라 새긴 2개의 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오른쪽의 오래된 비는 풍화에 마모되어 글씨를 볼 수 없는 상태이다. 정려각은 정면, 측면 각각 1칸으로 네 개의 기둥..

창녕성씨 시조신도비

창녕군 대지면 효정리 474-2번지 1080국도 길가에는 조선 고종42년(1905)에 세운 성인보(成仁輔)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성기운(成岐運)이 짓고 후학 곽전이 쓴 비석이다. 당초 맥산재 남쪽 탕건바위 옆에 있었는데 맥산은 잉어가 물위에 떠있는 형국이라 잉어의 등에 석물이 있으면 무게를 주어 후손들이 활동하는데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설에 현혹되어 1930년 성씨들이 번창하여 현달함을 알리기 위해 신작로의 잘 보이는 곳에 옮겨 세웠다한다. 그 후 세속이 변하고 경술국치와 8·15광복, 6·25전란 등으로 10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풍우에 시달려 훼손되기에 유촌공 성환(柳村公 成環)의 후손들이 헌금을 내어 대종회에서 중수하여 보존관리 하고 있다.

함안 오비각은 조종영의 효성을 기린 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82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82호인 오비각(五備閣)은 함안군 산인면 송산로 434(운곡리 96-1)에 세워진 조종영의 효성을 기린 정려각(旌閭閣)이다. 가야읍에서 대산면 방향으로 지방도 1021도로를 따라가다 운곡마을을 가기 전 우측 산과 논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오비각은 생육신(生六臣)으로 추앙받고 있는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예인 독촌공(獨村公) 조종영(趙宗榮)의 효성을 추앙하고, 뛰어난 학문과 덕성을 기리는 정려각(旌閭閣)이다. 1892년(고종 29)에 효감유허비(孝感遺墟碑)가 세워 졌고, 1905년(광무 9)에 정려각을 세우게 되었다한다. 오비각은 주소를 모르면 지나치기 쉬운 곳으로 한적한 산기슭에 자리하였고,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집이다. 몸체에 비해 큰 지붕을..

창원향교 풍화루를 찾아보니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59번길 6(소답동 433-2)은 창원향교의 입구인데 홍살문 옆 작은 공터에 주차를 하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 담긴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는 비갈(碑碣)이 방문객을 먼저 맞이한다. 이 하마비(下馬碑)는 창원향교의 위상을 바로세우라는 의미가 있는 표석으로 2012년 2월 8일에 세운 것이다. 풍화루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는 붉은 칠을 한 대문(大門)인 홍살문(紅살門)이 자리를 하고 있다. 홍살문(紅살門)은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그리고 충효절열(忠孝節烈)의 정려각(旌閭閣)이 있는 마을에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운 문으로 이 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경의를 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