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 1284

東人(동인)

이 책의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내용을 파악하면 알 수 있을까 해서 물음)책의 표지에 『東人(동인)』이라는 흔적이 있어 책 제목을 『東人(동인)』이라 붙인다.책은 필사본으로 세상에 떠도는 정보도 거의 없다. 내용은 7언율시의 장편 시로 여겨진다. 서문과 목차, 지은이도 없는 것을 보니 개인이 지었거나 지은 시를 필사로 옮겨둔 듯이 보인다. 책은 한지 접장본으로 가로 120cm, 세로 200cm이며 154p이다. 이 책은 2015년 6월 일가의 배려로 다른 책 16권과 족보 등을 소장하게 됐다.아래는 본문의 내용 중 제목을 일부 옮겨 적었다. -아래-兩0女 五更鷄唱 白頭吟_李詠狀士不曾悲笑未歌涙先岳_竜0(일본식 한자 竜) 島與張子房至傳浪沙中先視狙伏處議封六國後試張子房本心怒問湘山神臥遊夜深猶自搗寒衣_權0出郊勸耕..

강익문의 교지와 백패·홍패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는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2007.6.28.일 등록된 당암강익문교지 (戇庵 姜翼文 敎旨)와 백패·홍패가 기록되어 있다. 당암 강익문의 교지는 백패·홍패와 예조참판·예조판서 증직 교지의 4장이다. 이 문서들은 현재 합천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강익문(1568∼1648)의 자는 군우(君遇), 호가 당암(戇庵)이다. 영의정 내암 정인홍(來庵 鄭仁弘)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동문들과 함께 내암 휘하에서 의병투쟁을 했다. 광해군 시대에 정언·지평·장령 등을 역임했고 교산 허균과 친했다. 1623년 계해정변(인조반정) 후 정인홍의 문인이라고 하여 원찬(遠竄)됐다. 1631년(인조9) 정인홍의 앞잡이라고 하여 사판(仕版)에서 삭제되고 의금부에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 아들 강대수도 정인..

한사 강대수 신도비_합천군 묘산면 관기리

합천군 묘산면 관기리 704에는 한사강선생신도비寒士姜先生神道碑와 비각이 있는 곳으로 이곳의 해발 높이는 221m이고, 좌표는 35°38'53"N 128°07'30"E를 가리킨다.아들과 함께 찾아간 이곳은 관기리를 지나는 국도24호와 인접한 공터로 『한사강선생신도비각寒沙姜先生神道碑閣』은 옛길에서 잘 보인다. 한사강선생寒士姜先生은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파殷烈公派 파조派祖 1세 민첨民瞻(963~1021)의 19세손으로 2세 태자태전太子太傳 단旦, 3세 예빈경禮賓卿 보輔, 4세 상서성좌승尙書省左承 정협貞叶, 5세 판삼사추성익재공신判三司推誠翊載功臣 여익呂翼, 6세 원감元鑑, 7세 정靖, 8세 순珣, 9세 적𥛚, 10세 검釖, 11세 진천군파조晋川君派祖 위상渭詳, 12세 인선仁先, 13세 거호居好, 14세 승..

거창 연안이씨 종중문적

거창 연안이씨 종중문적(居昌 延安李氏 宗中文籍)은 보물 제651호로 지정되었는데 연안이씨 종중에서 익산시 박물관이 보관하던 것을 2024년 거창박물관에 기증함에 따라 거창박물관이 특별전을 했다. 연안이씨는 황해도 연안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시조 이무(李茂)는 당나라 장수로 나당연합군에서 공을 세우고 신라로부터 식읍을 받아(황해도 연안) 신라에 귀화했다.이지(李漬)로부터 이어지는 통례문부사공파(通禮門副使公派) 후손들인 ‘연안이씨 충간공 종중’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성종의 즉위에 기여하며 공신까지 오른 충간공(忠簡公) 이숭원(李崇元, 1428~1491)를 중심으로 계보가 이어져온 문중이다.보물 제651호 “연안이씨 종중문적”은 충간공 이숭원 관련 고문서들이다. 그 가치를 일찍이 인정 받아 1979년 보..

간송 전형필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은 서울 출생. 중군(中軍, 西班, 정3품) 전계훈(全啓勳)의 증손으로, 내부주사(內部主事)와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전명기(全命基)의 아들이다. 증조 때부터 배우개(지금의 종로4가) 중심의 종로 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10만 석 부호가(富豪家)의 상속권자였다.그는 24살 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많은 재산을 우리나라의 문화재 수집에 최선을 다했고, 수집한 문화유산은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12점,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 등 다수의 수집품이 매우 중요한 평가를 받았다. 책은 저자인 이충열의 서문과 목차를 붙이고 문화유산을 수집하는 과정의 후일담을 기록했다. 책의 발행에는 발행인 박강휘, 발행처 김영사, 등록 1979년 5월, 첫 번째 발행은 2..

향토사료집(제4집)

『향토사료집(재4집)』은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한 밀양의 고문서로 신익전(申䋚全: 1605~1660)의 동강집(東江集 16권 별록)에 실려 있는 밀양지(密陽誌)와 2014년 일본 고문서판매점에서 구입한 밀주지(密州誌)는 1899년 초동면 오봉서원(五峯書院)에서 필사한 것으로 추정하는 밀주지(密州誌), 또 2015년 한옥션경매장에서 구입한 밀주지(密州誌)의 원본을 복사한 책이다. 『향토사료집(재4집)』에는 2016년 손정태 밀양문화원장의 발간사를 책 머리에 붙였고, 목차를 부친 후 원본 복사를 실었다. 발행처는 밀양문화원이고, 편집은 밀양문화원향토사연구소가 맡았으며, 발행인은 손정태 밀양문화원장이다. 인쇄는 태화출판인쇄사가 맡았으며, 발행은 2016년 12월에 했다. 책은 떡제본으로 가로 181cm, 세로 2..

松塢遺稿 송오유고

송오유고(松塢遺稿)는 사천시 곤명면 탑동길 30(삼정리 52)에 위치한 오사재五思齋를 지은 진주강씨 박사공파 1세 강계용姜啓庸의 23세 강위영姜渭永(字 允仲:1861~1927)의 시詩와 만시挽詩를 비롯해 서書 5편과 부록으로 가장, 묘갈명, 오사재기五思齋記, 상량문 등과 발문을 담은 책이다. 서문은 진양 정중규鄭中圭가 썼고, 발문은 강달희姜達熙가 썼다.책은 1988년 7월에 한지 접장으로 오사재에서 발간했고 발행인은 강달희姜達熙이며, 삼협사인쇄소에서 인쇄했다. 이 책은 오사재의 후손인 강상석씨의 배려로 소장하게 됐다. 五思齋夜話 오사재 밤 이야기萬事誠難分外求 만사는 참으로 밖에서 억지로 구하기 어렵고願從摩詰坐林幽 마음은 왕유(摩詰)처럼 숲속의 고요함에 앉고 싶구나.醉竹初醒餘白髮 취한 대나무 막 깨어나니..

고지도로 보는 창원의 옛 모습

『고지도로 보는 창원의 옛 모습』은 현재의 창원시를 구성하는 ‘역사적 권역’인 구 창원부, 진해현, 웅천현, 칠원현 지역을 수록했고, 시기의 기준은 대한제국 초기에 해당하는 1899년까지로 정했다.이 책의 저자인 박영주 책임연구원은 해동지도, 여지도, 지승, 빈번사인방지도, 1872년지도, 산남여도와 여지도서, 경상도읍지, 영남읍지, 읍지, 영남읍지, 웅천읍지, 진해군읍지, 창원읍지, 칠원현읍지, 칠원군읍지 등과, 대축적전국지도인 동여비고, 동국대지도, 대동지도, 조선도, 조선팔도지, 청구도(1834), 대동여지도, 대동방여전도, 동여도, 경상북도지도,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 좌해지도, 목장지도, 영남호남연해형편도, 1872년지방지도, 조선왕국도, TYO SYEN됴선朝鮮 COREE, 한국또는조센 등의 자료..

진해 금석문

『진해금석문』은 진해시 시절에 발행한 『진해의 비문(1996년)』을 참조하고 수정·보완하였으며, 탁본으로 기록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진해문화원에서 2024년 12월 발간했다. 이 책은 오임숙씨가 엮었으며, 발행처를 진해문화원으로 하고, 발행인은 진해문화원장 우순기이며, 희문인쇄사에서 인쇄했다. 특징적인 것은 웅천읍성 명문성돌의 발견으로 웅천읍성 축조 시 성곽 할당 지역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책은 떡제본으로 가로 210cm, 세로 296cm이며 269p이다. 이 책은 2025년 5월 진해문화원의 배려로 소장하게 됐다.

합천 영암사지 陜川 靈岩寺址

합천 영암사지(陜川 靈岩寺址)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1659의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좌표는 북위 35° 28′ 27″ 동경 128° 0′ 10″을 가리킨다. 1964년 6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31호 합천영암사지(陜川靈岩寺址)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 “합천 영암사지(陜川 靈岩寺址)”로 변경되었다. 이 절은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적연선사자광탑비(寂然禪師慈光塔碑)"에 의하면,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 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적연선사 부도(寂然禪師 浮屠)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329에 있다. 발굴을 통해 조사해본 결과, 불상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