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소봉림유허비 관리 않으려면 왜 만들어

천부인권 2020. 10. 8. 06:00

2020.10.7. 봉림동 소봉림휴허비 모습


『소봉림유허비小鳳林遺墟碑』가 건설된 곳은 의창구 봉림동 502번지이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8m를 기록하고 위도 35°15'10"N 경도 128°40'00"E에 위치한다. 이 유허비遺墟碑는 지대석 위에 비좌碑座를 놓고 그 위에 자연석 비신碑身에 음각으로 새긴 비갈碑碣의 모양을 하고 있다. 비좌를 대형으로 만든 것은 그곳에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기록을 적은 판을 붙여두기 위함인 것으로 파악되며 2011년 2월에 사단법인 삼원회가 발행한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에는 45개의 유허비가 실렸는데 15기의 마을 유허비가 동일한 모양을 하고 있다. 

 

2020.10.7. 소봉림의 유래와 역사를 기록한 판석


소봉림유허비의 기록 내용은 따로 옮기지 않고 위 사진으로 대신한다.

 


봉림동鳳林洞의 유래를 살펴보면 
봉림산鳳林山 봉림사鳳林寺가 있었기에 지명 이름이 등장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봉림산과 봉림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봉림리鳳林里가 기록되어 있다. 
봉림리鳳林里는 소봉림리小鳳林里와 대봉림리大鳳林里로 나뉘어 졌으며 두 마을을 통덜어 부르는 이름이 봉림리이다. 봉림사라는 절의 이름은 진경대사眞鏡大師(853~923)가 명명했다는 기록이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에 적혀 있다.

 

 

근대 봉림동 지명 변천을 살펴보면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에서 1972년 창원공단의 개발로 인하여 공단의 분지 지역만 1973년 7월 1일 마산시 상북동上北洞으로 변경되었다. 당시 개발의 주체인 수자원개발공사의 현장 사무소가 있던 곳이 상북동이었기 때문에 상북동이 부각되었다. 이후
1976. 9. 1 : 경상남도 창원지구 상북지소
1980. 4. 1 : 창원시 상북동上北洞, 봉림동鳳林洞으로 개칭된 후
1991. 8. 1 : 창원시 상북동, 사림동士林洞이 등장하는데 창원대학이 퇴촌동退村洞 일대에 들어오면서 사림동士林洞이 탄생하게 된다.
1991. 8. 28 : 인구의 증가로 인해 창원시 사림동, 봉곡동으로 분동이 이루어지는데 원래 이름도 없던 봉곡동의 탄생은 명곡사거리 즉 봉림상가지역이 명곡동에서 봉림동지역으로 편입되면서 봉림동의 ‘봉(鳳)’과 명곡동의 ‘곡(谷)‘의 한자씩을 따서 봉곡동이란 지명이 생겼다. 
현재의 지명은
1997. 7.14 : 대동제의 실시로 인하여 봉곡동 + 사림동이 합쳐져 창원시 봉림동鳳林洞으로 변경되었다.

 


소봉림유허비는 시간을 내어서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일반인에게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만들 때는 보조금으로 만들었으나 누구도 관리를 하지 않아 황폐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실재 이 물건을 만든 소봉림 원주민들은 관리하지 않는다고 하니 무엇 때문에 예산을 들여 이런 물건을 세웠는지 모를 일이다. 유허비에는 7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살아 있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일이다. 금석문에 이름 함부로 새기는게 아니라는 것을 후대의 사람들은 꼭 참고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