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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동 상촌마을 유허비

천부인권 2020. 10. 12. 06:02

2009.5.22. 봉림동 상촌마을 유허비 "내고향 상촌땅"

상촌마을유허비 즉 『내고향 상촌땅』이라 새긴 비갈碑碣이 있는 곳은 창원대학교 학군단 옆, 의창구 퇴촌동 69번지이다. 구글 지도에서는 위도 35°14'56.0"N 경도 128°41'36.4"E에 위치한다.
상촌마을 유허비의 제목은 『내고향 상촌땅』이라 이름했다. 개인적으로 창원 원주민들이 세운 많은 옛터 비 또는 유허비 중에 가장 정겨움을 담은 비갈이라 생각한다. 비갈의 형태 모양은 빼고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다.

 

2009.5.22. 상촌마을 연혁을 기록함


『내고향 상촌땅』이라는 제목을 단 상촌마을유허비갈의 전면과 뒷면에는 아래처럼 기록했다.

예로부터 이곳은 상촌上村(웃안골) 사람들의 터전이었다.기품있는 전단산旃檀山(精兵山), 거기에서 뻗어내린 누운등과 똥메산 자락이 마을을 아늑하게 감사고 있었다. 누운등 동쪽으로 용동이, 소자문(孝子門) 서남쪽으로 퇴촌이, 돌테미 남쪽으로 상림이 위치했고 큰 도랑 지나 건넌들 너머에 두랑곡이 있었다. 
원래 상촌은 김해김씨 단산공파(入鄕祖: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어모장군 김중철) 집성촌으로 출발했지만 딴 파의 김해김씨, 경주김씨, 여양진씨, 동래정씨, 창원황씨, 남평문씨, 창원구씨 등 다른 집안 사람들도 이사와 함께 살았다. 이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소목고개보다 높은 보릿고개도 헤쳐 나갔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재조정 때 상촌上村은 상림上林과 함께 퇴촌동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퇴촌退村과는 분리된 독자적인 마을이었고, 상림, 두랑곡과는 하나의 마을이었다. 이웃끼리 정답게 400년을 살다가 창원대학의 이전으로 1982년에 정든 고향 땅을 떠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간 땅은 자그마치 10여만평에 이른다. 고향을 잃는다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인재 양성의 대의大義를 위해 누구 없이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흩어져 살게 된지 어언 25년. 그동안 옛 이웃들은 상전벽해된 고향 땅에서 ‘웃안골 큰잔치’를 열곤하여 향수를 달래어 왔다. 이러한 뜨거운 마음과 창원대학교 측의 배려로 조상님들의 얼과 우리의 숨결리 베어 있는 이곳에 ‘내고향 상촌땅’ 비碑를 세운다.

 

2009.5.22. 내고향 상촌딸 비갈 뒤면

 

상촌연가(上村戀歌) / 김정대
수리덤, 굿밭등, 붉은등, 누운등은
상촌의 근간이요
국논, 묵답, 못밑, 큰자리는
우리의 곳간이며
삼밭골, 못밭골, 산골, 뒷골은
우리의 고생골이라네
돌테미 지나 큰도랑 건너 두랑고개 넘으면
대처로 가는 길이요
구루맛간 종종걸음 귀신 난다는 대밭골 지나
뛰는 가슴으로 못둑 오르면 내 고향 상촌이라네!

 


상촌리上村里 지명
*웃안골 : 상촌上村을 일컷는 말 위 안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1914년 이후 행정상으로는 퇴촌에 속했으나 별개의 마을이었다.
*징산 : ‘정병산精兵山’의 다른 이름으로 천지가 개벽을 할 때 모두가 불속에 담기고 징 만큼의 땅만 남았다 한다. 정병산(556m), 불모산(801m), 장복산(582.2m)과 함께 창원공단을 둘러싸고 있는 병풍같은 산이다. 이 정병산 산록에 상촌, 퇴촌, 봉림, 용동 등 많은 자연마을이 산재해 있다.
*수리덤먼딩이 : 상촌 뒤산. 정병산 봉우리에서 비음산 방향으로 조금 가면 아찔한 단애를 이루는 암릉이 나타나는데 이곳에 정병산 수리봉(鷹峯 460m)이란 표식비가 있다. 
*잿고개(일명 찔꿉) : 수리덤먼딩이에서 용동쪽으로 가는 낮은 고개
*생이방구 : ‘잿고개’에서 용동쪽에 있는 상여를 놓아둔 것 같은 형상의 바위 일명 ‘매방구’ 정월 대보름이 이 바위의 아래편에서 뜨면 풍년이 들고 위편에서 뜨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다.
*재뿔때기 : 일명 재뿔등 퇴촌동과 상촌 사이의 중턱을 가리킨다.
*부치바구 : ‘재뿔때기’에서 상촌의 등성이에 있는 여래입상 형상의 큰바위.
*산골 : ‘부치바구’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평펴짐한 기슭 일대를 말한다. 축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해병대 포사격장이었다. ‘산꼴’은 ‘사람을 산(燒)골짜기’ 즉 ‘화장터’ 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배륵박골짝 : ‘산꼴’에서 소목고개로 가는 도중의 골짜기. 골짜기의 언덕이 ‘배륵박(벽)’처럼 가파르다.
*굿방구 : ‘수리덤먼딩이’와 상촌마을 중간 등성이에 있는 바위로 좌우 골짜기에 샘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던 곳이며 이 등성을 ‘굿밭등’이라 한다. ‘굿방구’의 위쪽에 ‘송굿방구’가 있다.
*송굿방구 : ‘굿방구’에서 100m 정도 위쪽에 있는 바위. 송곳처럼 뾰족하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몰똥밭 : ‘굿방구’에서 퇴촌쪽에 있는 등성이. 바위들이 말의 똥같이 모닥모닥 모여 있다. ‘몰’은 ‘말’의 다른 말.
*불탄등 : ‘굿바우’에서 용동 쪽에 있는 등성이로 옛날부터 불이 자주났다.
*매방지 : ‘산꼴’의 오른쪽에 있는 낮게 펑퍼짐한 등성이
*뿔근등 : ‘매방지’의 오른쪽 ‘굿방구’의 아래쪽 등성이로 나무는 별로 없고 붉은 황토가 노출되어 있다.
*돼지바구 : ‘뿔근등’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살찐 돼지와 같이 생긴 바위.
*절앞 : ‘뿔근등’에서 용동쪽으로 있는 등성이 이 등성이의 왼편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참새미 : ‘절앞’에 있는 샘. 아래에 나오는 ‘따밭골’ 아래에 있는 샘도 ‘참새미’라 하였다. 물이 매우차다.
*글거등 : ‘절앞’의 오른쪽 등성이.
*허문골 : ‘글거등’의 위쪽에 있는 골. 골짜기가 험하다.
*진등 : ‘허문골’의 오른쪽에 있는 등성이. 등성이가 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방아달캉이 : ‘진등’의 위쪽 끝부분 등성이가 방앗가래(Y자형)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옥시개울 : ‘돼지방구’아래에서 마을의 ‘웃못’으로 흐르는 개울. 무리 깨끗하다.
*죽도가리 : ‘옥시개울’ 곁에 있는 논인데 죽 한 그릇과 바꾼 논이라고 한다.
*딧등 : 마을 뒤를 감싸고 있응 야산.
*삼밭골 : 딧등과 ‘뿔근등’ 사이의 논밭. 이전에 삼을 심었던 곳이다.
*뜰감 : 마을 서·북쪽에 있는 천수답의 논밭.
*소자고개(孝子門고개) : 상촌에서 퇴촌 웃각담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효자문이 있었다고 한다.
*서재배미 : ‘소자문고개’에서 볼 때 퇴촌쪽 바로 아래에 있는 옛날 서재書齋 터 였다는 논.
*진배미 : 퇴촌 ‘옛못’ 위쪽의 긴 논.
*똥매산 : 마을 서쪽에 있는 야산(창원대학교 신축 도서관 뒷산)
*장사짤갯돌 : 상촌 ‘아래못’ 곁에 있는 5개의 커다란 바위. 옛날에 장사가 짤개(살구,짜새)받던 돌이라는 전설이 있다.(현재 창원대학교 동력실 옆에 있음.)
*돌테미새미 : ‘장사짤갯돌’에서 상림上林(상촌 아래에 있는 자연마을) 쪽에 잇는 장사가 손을 짚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인데 그 위에 손바닥 흔적이 있다.
*송징이논 : 상촌 진입로 조금 위에 있는 논.(현 창원대학교 정문 근처)
*두랑고개 : 해병대 훈련장에서 상림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두랑’이라는 장사가 살았다는 고개(현재 용호동)
*건너들 : ‘두랑고개’와 상림 사이의 논. ‘건너가서 있는 들’이란 뜻(현재 사림동)
*따밭골 : ‘두랑고개’에서 용동으로 통하는 길 왼편 골짜기. 이전 해병대 수류탄 교장이었다(현재 사림동)
*비석껄 : 상촌에 집단 거주하는 김해김씨 선조의 비석이 있는 ‘추모각追慕閣(단산공파檀山公派 1대조인 어모장군 김중철金重喆 추모각)’ 일대를 일컬음. 당시 마을의 위쪽에 있었다. (현 창원대학교 인문학관 뒤쪽)
*정지나무 : ‘비석껄’ 옆에 있던 5백년 이상 된 회화나무. 마을주민의 휴식처 였는데 창원대학교 측에서 베어버렸다.(현재 창원대학교 인문관 뒤쪽)
*정냥아껄(정양껄) : ‘비석껄’과 정지나무가 있던 일대
*메똥걸 : 마을 가운데 묘가 있던 곳(현재 창원대학교 인문관 주차장)
*게밑 : 마을 뒤 과수원이 있는 등성이. (현재 국도25호선 우회도로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넉바앝(넉밭) : ‘게밑’에서 ‘잿고개’로 올라가는 곳에 있는 너들겅골짜기
*눈등(누운등 누른등) : 상촌과 용동의 경계가 되는 등이다. 황토로서 누렇다고 누른등, 길게 누었다고 ‘누운등’ 길다고 ‘진등’ 등으로 불린다.
*묵답 : 마을 아랫부분에 있는 논. ‘묵은 전답’이란 뜻(현재 창원대학교 정문 위쪽)
*국논 : ‘묵답’과 개울을 사이하여 마주보는 논인데 옛날에 국 한 그릇과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청수굿대 : 마을 앞 복栿(보)가 있던 곳(현재 봉림상가 앞 개울)
*시골밭(새골밭) : ‘눈등’을 지나 용동쪽에 있던 밭
*물렁게(물넘게) : 마을 ‘웃못’의 물이 넘쳐 흐르도록 만들어 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