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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강공 묘갈명 병서 學生姜公墓碣銘幷序

천부인권 2022. 4. 2. 06:41

學生姜公墓碣銘幷序 
公諱萬圭。字達洙。姜氏。貫晋陽。高句麗元師以式。爲上祖。高麗兵部尙書殷烈公民瞻。爲中顯祖。晋州君渭祥。爲分派祖也。有諱仁壽。號和齋。孝廉薦監察。贈司憲府執義。三傳。翼文號戇菴。師事鄭寒岡先生。有士林重望。文科弼善。至司諫。光海昏朝。立節。贈禮曹判書。子鷗洲大適。與兄寒沙大遂。俱有經學盛名。薦洗馬。丙子胡亂。兄弟倡義。著殊勳。贈左承旨。子徽俊號鵞湖。贈户判。於公。間八世。曾祖曰泰邦。祖曰時汶。考諱遇賢。妣。高靈朴氏龍貞女。以高宗癸巳。生公于陜川郡大陽而鵝川里故第。公。資性稳藉。志氣堅剛。自幼。知愛親敬兄之節。稍長。見其父及兄之從事儒業。不遑經理產業。於是。掇學而幹家。使父兄。安其所業。及其析箸而異居也。有一嶺之隔。而間日來往。定省温清。必誠必敬。以其餘日。盡力于農畒。晨出而暮還。無柱費一寸之光陰。能倍出其田產。以是。田園漸廣。家日以潤。乃隨其力。益虔其奉養。凡飮食衣服。必時其所欲。而敬進之。及丁內外艱。執喪無違禮。事兄。欣慽必同。有無相通。帷床之間。和氣常藹然。養子。慈嚴并至。教之以義方。不納於邪。至於鄕里宗族。忠信敦睦。各得其宜。以享年五十八之庚寅六月八日。終。葬于漢原洞案山酉坐原。配。尚州周氏。相錫女。有婦行。祔公同堋。二子。長錫任。行警官及面長職。次錫權。方居晋州鳳原國民學校教師。担當教務。兄弟俱以英秀稱。孫。浩洙榮洙進洙民洙。長房出。學洙。次房出。女壻。延日鄭錫鎔。外孫。鄭昌永鄭光永鄭贊永鄭寶永。曾孫。秉在秉俊。銘曰 
敦本以孝友。教子以義慈。建業以勤儉。善哉其政家。

 

학생 강공 묘갈명 서문을 아울러
공의 휘는 萬圭며 자는 達洙며 姜氏로 貫은 진양이다 고구려 원수 이식(以式)이 上祖가 된다, 고려 병부상서 은열(殷烈)공 민첨(民瞻)은 中顯祖가 된다. 晉州君 위상(渭祥)이 분파조가 된다. 朝鮮朝 휘 인수(仁壽)가 있으며 호는 和齋며 효렴(孝廉)으로 감찰에 천거되어 사헌부 집의를 증직 받었 3대를 전하여 익문(翼文)은 호가 당암(戇菴)이며 鄭 寒岡선생을 師事했다. 사림에 重望이 있었다. 文科 필선(弼善)은 司諫에 이르렀고 광해혼조에 節義를 세워 예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아들 구주(鷗洲) 대적(大適)은 兄 한사(寒沙) 대수(大遂)와 함께 經學으로 盛한 이름이 있었고 洗馬에 천거되었으며 병자호란에 형제가 창의하여 수훈(殊勳)이 드러나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아들 휘준(徽俊)은 호가 아호(鵝湖)로 호조판서에 증직되어 공에게 8세간이다. 증조는 泰邦이며 조부는 時汶이며 부친의 휘는 遇賢이며 모친은 고령박씨 龍貞의 따님이다. 고종 계사(癸巳: 1,893.)에 합천군 대양면 아천리 옛집에서 공을 낳으니 공은 자질과 성품이 온당하고 志氣가 굳세고 강하여 어려서부터 부모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는 예절을 알았고 차츰 자라자 그 아버지및 형이 종사하는 儒業에
經理산업에 겨를이 없었다. 이에 배움을 그만두고 집을 주간하여 父兄으로 하여금 그 業 하는 바를 편안하게 하였다. 그 分家에 미쳐서는 다른곳에 살았고 한 고개 떨어진 사이에 있어 날마다 왕래 하면서 따뜻하고 서늘함과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와 이부자리를 정하는 것을 반드시 정성스럽게 반드시 공경하게 하여 그 남는 날에 농사에 진력했다. 새벽에 나가서 저물어서 돌아와 일촌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아 그 밭의 생산이 나온 것이 倍가 되어 이로써 田園이 점차 넓어지고 집이 날로 윤택하여 이내 그 힘에 따라 더욱 그 봉양을 경건히 하고 무릇 음식과 의복을 반드시 하고자 하는 때에 공경히 올렸다. 부모 喪을 당해서는 喪을 집행하기를 禮에 어김이 없었고 형을 섬기되 기쁨과 슬픔을 반드시 같이하고 있고 없음을 서로 통하여 침상 사이에 和氣가 항상 많았다. 자식을 기름에 溫和와 嚴함을 아우러 이르게 하고 가르침을 義方으로 간사한데 들이지 않게 했다. 향리와 종족에 이르러 진실과 믿음으로 돈목하였고 각기 그 마땅함을 얻었다. 향년 58세의 경인(庚寅 1,950.) 6월 8일에 마쳤다. 한원동 案山 酉坐 언덕에 장례했다. 배위는 尙州周氏 相錫의 따님이다. 婦人의 行實이 있고 공과 同堋으로 합사하였다. 두 아들은 長男은 錫任으로 警官 및 面長職을 行하였으며 次男은 錫權은 방금 진주 봉원초등학교 교사로 교무담당이다. 형제가 함게 영특하고 뛰어났다고 일컬어 진다. 孫은 호수 영수 진수 민수는 長房 출생이며 학수는 次房 출생이다. 사위는 延日 정석용이며 외손은 정창영 정광영 정찬영 정보영이며 증손은 병재 병준이다. 명(銘) 하기를
孝友로서 근본을 도탑게하고 의리와 자애로서 아들을 가르쳤다.
勤勉과 儉素함으로 사업을 세웠다. 착하도다! 그 집을 다스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