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부락유허비 高山部落遺墟碑
부락部落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에 왜구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하여 미국의 점령시기인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행정기록에서 사용되었다가 이후 사라진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용어가 2005년 1월에 창원지역의 옛 마을을 기억하자는 금석문인 기림비에 새겨두어 놀라웠다. 대체 자신들의 마을을, 마을 사람 스스로가 자신들의 기록으로 비참한 뜻을 지닌 “부락部落”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금석문에 새긴 글은 천년이 지나도 뚜렷하게 남아있다는 점에서 함부로 새기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신중하게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의 오류이지만 기록을 훼손하지 않으면 그것이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部落”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에게 전한 용어로 그 뜻은 “백정, 부랑인, 불치전염병보균자, 전쟁포로, 정신적으로 이상한 자(칠푼이), 조센징 등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단 거주지를 일러 왜국 말로 부라쿠민[ぶらくみん]”이고 한자로는 部落民이라 한다. 왜놈들의 나라에는 지금도 존재한다.
아직도 부락部落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스스로 정신에 문제가 있거나 정상적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게 식민사관이고 이러한 말을 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자가 대한민국 행정의 수장들이며, 소위 전문가라 말하는 대한민국 박사들이다. 경계하고 또 경계警戒할 일이다.
이곳 성산구 사파동 33-20은 고산정어린이공원이란 이름을 가졌으며 공원의 귀퉁이에 『고산부락유허비 高山部落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74m, 좌표는 35°13'49"N 128°42'03"E이다.
유허비 아래 오석에는 마을의 연혁과 기록을 새겼는데 아래의 글과 같다.
이곳은 창원의 관적 성씨(貫籍姓氏)인 창원황씨(昌原黃氏) 집성촌(集成村)으로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온 정든 고산 마을의 옛 터이다. 비음산정기를 이어받은 쉼대골(비음산약수터)에서 발원한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토월공원산의 남향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로 1600년대 초 창원 황씨 선조에 의하여 마을이 만들어진 이후 마을 명이 최초에는 괴정(槐亭)에서 고산(高山), 괴산(槐山)으로 다시 고산(高山)으로 부락명이 변천을 거치면서도 삶의 터전으로 대대로 번성하여 왔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정겨운 옛 고향 마을의 모습이 사라지게 되어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 조상의 얼이 서려있는 이곳에 표(表)를 하오니, 고산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모든 후손들이여고산의 자부심과 긍지를 간직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삶을 누리소서!
아! 부끄럽다.
용어 하나 잘못 기록하여 천년 만대에 욕을 하는 꼴이니 일제의 만행이 그칠 줄 모르고 이 나라의 역사가 바로 서지 못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