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락 옛터 비갈
『중앙부락 옛터 비갈』은 2011년 2월 삼원회에서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이란 책을 발간 한 후 2년이 지난 2013년 12월에 세운 비갈이다. 그럼에도 ‘부락部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식민교육의 결과이다. 이러한 것은 교육을 통한 세뇌洗腦가 한 인간의 성장은 물론이고 집단에 많은 부분 의심 없이 살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부락部落”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 왜구가 우리 민족을 미개한 족속으로 보고 사용한 용어로 그 뜻은 “백정, 부랑인, 불치전염병보균자, 전쟁포로, 정신적으로 이상한 자(칠푼이), 조센징 등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단 거주지를 일러 왜국 말로 부라쿠민[ぶらくみん]”이고 한자로는 部落民이라 한다. 왜구들의 나라에는 지금도 존재하며 왜구들은 이들을 노비 취급을 하고 사람 대우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부락部落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미군의 점령 시기 중 1960년대 후반까지만 우리나라 행정기록에서 사용되었다가 이후 사라진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용어가 2005년 1월 『고산부락유허비高山部落遺墟碑』에 사용되었으며, 2013년 ‘중앙부락中央部落 비갈’에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부락部落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스스로 정신에 문제가 있거나 정상적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게 식민사관이고 이러한 말을 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자가 대한민국 행정의 수장들이며, 소위 전문가라 말하는 대한민국 박사들이다. 경계하고 또 경계警戒할 일이다.
『중앙부락 옛터 비갈』은 성산구 상남동 13-1에 위치하며, 이곳의 해발 높이는 57m, 구글지도에서 좌표는 35°13'25.6"N 128°41'03.8"E를 가리킨다. 금석문의 뜻에는 “중앙부락 유래”가 기록되어 있어 여기에 옮기고 추진위원들의 명단이 있어 옮겨 둔다.
중앙부락 유래
상남역에서 대저로 오가는 길목이었고 원래는 창원군 상남면 용지리 였으나 면사무소, 지서支署, 우체국, 초등학교 등이 자리하면서 용지리에서 분리되어 중앙부락이라 불렀다. 1970년대 정부의 근대산업화 시책에 따라 사라진 동네를 회상하고 역 마당 언저리에 터를 잡아 그때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 흔적을 남긴다.
2013년 12월 20일
유허비 건립위원회 위원장 강대호
추진위원회
위원장 강대호
부위원장 김봉진
총 무 박준배
강대윤, 김극기, 감성규, 김성문, 김우성, 김판주, 김회규, 남기철, 문장복, 박수호, 박익현, 박태봉, 안영길, 이정길, 이재현, 유감이, 정상섭, 정현만, 조중재, 최흥렬, 황산열
제호 : 근암 강대경
글 : 효당 김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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