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옹집(餒翁集)』은 석인본 8권 3책으로 노루지 접장에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엮은 순 한문의 세로글씨이다. 조선 후기 옥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곽수엽(郭守熀, 1679~1753) 선생의 시가와 산문을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책은 중고 거래 ‘당근’에서 9월 14일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사는 판매자에게 15,220원에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3책이 완본이지만 3책 중 2책만 구입했다.
본관은 선산, 자는 경문景文, 호는 뇌옹餒翁이다. 옥천 출신으로 종사랑 곽문완郭文浣의 손자, 통덕랑 곽진郭榗의 아들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다.
1713년(숙종 39) 진사시에 합격했다. 경의經義와 예설禮說에 밝았고, 율곡 이이와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학문을 따르고자 하였다.
석인본 7권 3책이다. 곽면재郭冕載의 편집을 거쳐 1937년 곽창재郭昌載가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이해익李海益의 서문이 있다.
권1에는 시 135수가 있는데, 오언・칠언을 고시・절구・율시 순서로 배열하였다. 대부분 증시贈詩와 차운次韻이며, 자연을 생활에 흡수시켜 읊은 것으로 전아하고 담박하다는 평이다. 권2~3은 서書・잡저로, 서書에는 정호鄭澔・민진후閔鎭厚・송일원宋一源・김진옥金鎭玉・민우수閔遇洙 등과 경의經義에 대해 토론한 것이 많다. 그중에는 스승인 권상하와 상례・제례 등 예설에 대한 논설을 담은 편지 5편, 송유원宋有源과 심성心性・이기론理氣論・오상론五常論・기질변론氣質辨論 등에 대한 답변 6편이 별지와 함께 있다. 잡저 중에〈행당이공복초부자효행정문杏堂李公復初父子孝行呈文〉은 국왕의 행차에 이복초李復初와 이만춘李萬春의 효행에 대해 포장褒章을 청한 정문이다. 또〈호유통고문湖儒通告文〉은 윤선거尹宣擧의 문집에서 의리에 틀린 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조정에 연소聯疏하고자 정내창鄭來昌・육홍운陸鴻運・박수근朴守謹 등과 연명으로 호남・호서의 유림에게 돌린 통문이다.
권4의 서序에는〈삼외재문생계첩서三畏齋門生契帖序〉등 6편, 기記에는〈담락재기湛樂齋記〉・〈삼오당기三吾堂記〉・〈경률당기景栗堂記〉가 있는데,〈경률당기〉는 도잠陶潛의 율리청풍栗里淸風과 이이李珥의 율곡도덕栗谷道德에 감명해 ‘율栗’자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발跋 9편, 명銘 4편, 스승인 권상하의 초상에 대한 찬贊 1편, 상량문 1편이 있다. 권5에는 축문 8편, 제문 10편, 묘지명 3편, 묘표 1편이 있고, 권6에는 행장 7편, 권7은 전傳 8편이 실려 있다.


餒翁集總目
餒翁先生文集卷之一
餒翁先生文集卷之二
餒翁先生文集卷之三
書
答宋建叔_文相 / 郭守熀
與閔蟾村_遇洙 / 郭守熀
與宋士能_能相 / 郭守熀
答樸參奉_彙正 / 郭守熀
與鄭伯亨汝楫正叔_匡濟 / 郭守熀
與陸子羽_鴻運 / 郭守熀
答周文煒_燦然 / 郭守熀
與鄭元禮_履儉 / 郭守熀
與鄭元禮子運 / 郭守熀
上仲氏三畏齋 / 郭守熀
雑著
杏堂李公復初父子孝行呈文 / 郭守熀
樸公基夏孝行呈文 / 郭守熀
湖儒通告文 / 郭守熀
餒翁先生文集卷之四
序
三畏齋門生契帖序 / 郭守熀
善山郭氏族譜序 / 郭守熀
玄風善山郭氏大同譜序 / 郭守熀
送平安都事鄭正叔序 / 郭守熀
送尹擎叔?詩序 / 郭守熀
梧村金蘭契序 / 郭守熀
湛樂齋記 / 郭守熀
三吾堂記 / 郭守熀
景栗堂記 / 郭守熀
家姪鼎屋遺稿跋 / 郭守熀
蘭溪樸先生家訓跋 / 郭守熀
安養詩帖跋 / 郭守熀
書學孔顏墓誼原六字後 / 郭守熀
書柳源傅後 / 郭守熀
書陶巖鄭公重宇自笑吟後 / 郭守熀
書尤菴先生與張判書善?丙辰九月書後 / 郭守熀
書同晦申公伯謙所製尤菴先生卞誣疏後 / 郭守熀
書六後契帖後 / 郭守熀
銘
樂遠堂銘 / 郭守熀
三畏齋銘 / 郭守熀
安分窩銘 / 郭守熀
手足爪甲囊銘 / 郭守熀
寒水齋權先生畫像贊 / 郭守熀
上樑文
滄州書院祠宇上樑文 / 郭守熀
餒翁先生文集卷之五
祝文
表忠祠春秋享祝文 / 郭守熀
龍門影堂告由文 / 郭守熀
官家主山祈雨文 / 郭守熀
智勒山祈雨文 / 郭守熀
龍潭祈雨文 / 郭守熀
龍堂祈雨文 / 郭守熀
天臺山祈雨文 / 郭守熀
磻巖詩祈雨文 / 郭守熀
祭寒水齋權先生文 / 郭守熀
與滄州院儒諸公祭寒水齋先生 / 郭守熀
祭家姪鼎垕文 / 郭守熀
祭家姪小祥文 / 郭守熀
祭戚叔呂上舍有衡文 / 郭守熀
祭再從姪敬叔商垕文 / 郭守熀
祭南公以周文 / 郭守熀
祭全啓仲基沃文 / 郭守熀
祭從伯父大遷葬時文 / 郭守熀
祭從叔父文 / 郭守熀
祭鄭參判匡濟文 / 郭守熀
墓志銘
家姪鼎垕墓誌 / 郭守熀
孺人辛氏墓志銘 / 郭守熀
晦峯裵公後度墓志銘 / 郭守熀
墓表
僉使樸公振立墓表 / 郭守熀
餒翁先生文集卷之六
餒翁先生文集卷之七


『餒翁集』 卷之三
答宋建叔_文相
昨日有曾所不見之客, 忽然來訪使之姓 即華宗也。不覺驚喜之際, 袖傳下札, 開緘疾讀, 無異對面傾倒也。示意謹悉。此等事雖凡然, 知舊之間當有顧見之意, 況華宗乎。仍念老先生送咸興朱君之序有曰 「彼草間之蛛, 亦當愛之。」 又曰 「雖宋與株之無情者, 亦將無數於心。」
夫老先生後朱子已過廿千之年, 以朱而爲姓者, 見愛如此, 則矧華宗與老先生族親 而年近乎 此來示鄭重,又非他人付囑之比乎。今朝請院洞諸人極言屋上烏可愛之義, 又招里任仔細分付矣。所惜者華宗之窮甚 於蒙袂而輯屨者, 處吾洞三年, 今始知面, 又聞其身章不成貌樣, 時時見敗於村漢。此命也, 奈何然自今以後必無此患, 勿以爲慮, 如何適諸兄弟來到, 故爲傳盛札, 則皆曰 「顧護之道, 當以物周之, 而同在涸轍, 未由以相濡云耳。」 經禮問答, 果爲印來, 而紙地二十三束, 能無不足之患耶 自龍門影堂欲寫送人, 而紙地之外, 當有印出之價矣。或云 「寧爲買來便當。」 如欲買之, 則價錢幾何 如有驢江往來之便試問望望
『뇌옹집』 제3권
송건숙(宋建叔)에게 주는 답장 _ 문상(文相)
어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손님이 갑자기 찾아와 성을 물어보니 바로 화종(華宗, 같은 성씨의 친족)이었습니다. 깜짝 놀라면서도 기쁜 마음에 그가 소매에서 꺼내 건넨 귀하의 편지를 받아 열어 속히 읽으니, 마치 얼굴을 맞대고 회포를 푸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보여주신 뜻은 잘 알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비록 평범한 일일지라도 지기(知舊) 사이라면 마땅히 돌보아주는 정의가 있어야 할 터인데, 하물며 화종이겠습니까.
이어 생각해보니, 노선생(老先生, 주자)께서 함흥의 주군(朱君)을 보내며 쓰신 서문에 이르기를 “저 풀숲 사이의 거미[蛛]라도 마땅히 아껴야 한다.” 하였고, 또 “비록 소나무[宋]와 그루터기[株]처럼 무정한 것이라도 또한 마음속에서 잊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노선생께서 주자(朱子)보다 뒤에 오신 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는데, '주(朱)' 자를 성으로 쓰는 사람을 이처럼 아끼셨거든, 하물며 화종은 노선생과 족친(族親)이고 연대도 가까운데 가긍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보내주신 정성이 정중함은 또 다른 사람의 부탁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오늘 아침 원동(院洞)의 여러 사람을 청하여 “지붕 위의 까마귀도 사랑스럽다”는 뜻을 극진히 말하고, 또 이임(里任, 마을 이장·임원)을 불러 자세히 당부하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화종의 가난함이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신발을 끌고 다닐 정도[蒙袂輯屨]보다 심하여, 우리 동네에 산 지 3년 만에 이제야 얼굴을 알게 되었고, 또 듣건대 그의 차림새가 몰골을 이루지 못하여 때때로 시골 한량들에게 모욕[見敗]을 당한다고 합니다. 이는 운명이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부터는 필시 이런 근심이 없을 터이니 염려하지 마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마침 여러 형제들이 도착했기에 보내주신 편지를 전하여 보여주니, 모두 말하기를 “돌보아주는 도리는 마땅히 물품으로 구제해주어야 하겠으나, 다 함께 말라붙은 수레자국 속에 있는 처지[涸轍]라 서로 침으로 적셔주지[相濡] 못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경례문답(經禮問答)은 과연 인쇄하여 왔습니까? 종이 23속(束)으로 부족할 근심이 없겠습니까? 용문영당(龍門影堂)에서 베껴 보낸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종이 외에도 마땅히 인출(印出)하는 값이 들 것입니다. 혹자가 말하기를 “차라리 사 오는 것이 편하고 당당하겠다.”라고 하니, 만약 사려 한다면 가격이 얼마나 됩니까? 혹 여강(驢江)을 왕래하는 편이 있거든 시험 삼아 물어보아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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