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211

밀양 표충비

『밀양 표충비(密陽 表忠碑)』는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901-3(동부동안길 4)에 위치하며, 1972년 02월 12일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록 유산이다. 표충비(表忠碑)는 738년(영조 14)에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조사(南鵬祖師)가 이를 중수하면서 표충비를 세웠으며, 지금은 단층 팔작지붕의 보호각 내에 있다.비의 재질은 대리석이고, 규모는 전체 높이 4m, 탑신 높이 270㎝, 비 폭 96㎝, 두께 54.5㎝이다. 비 전면에는 송운대사비명(松雲大師碑銘)으로 시작하는 사명대사의 행장이, 후면에는 서산청허당휴정대사비명(西山淸虛堂休靜大師碑銘)으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좌측면에는 밀양영취산표충사사적비(密陽靈鷲山表忠詞事蹟碑)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영중추부..

무신생갑계기념비(戊申生甲契紀念碑)-칠원읍 운곡리 운동

『戊申生甲契紀念碑(무신생갑계기념비)』는 칠원읍 운곡리 1040-6의 운문로 길가에 위치하는데 옆에는 버스정류소가 있다. 이곳의 좌표는 35°19'03"N 128°32'26"E이고, 고도는 52m이다. 碑文(비문)宇宙(우주)는 넓고 歲月(세월)은 길다. 넓고 긴 時空(시공) 가운데 奚獨(해독) 우리들만 이곳을 같이하고 때를 함께한다는 것이 實(실)로 偶然(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일찍 信義契(신의계)를 모아 信(신)과 義(의)로서 一生(일생)을 같이하자고 다짐하면서 봄가을이면 山山水水景(산산수수경)을 따라 마음껏 즐기었다. 이젠 우리도 나이 古稀(고희)를 넘어 契員(계원) 한두 사람이 幽明(유명)을 달리하였지만은 앞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읽기 전에 어떤 記念(기념)이라도 남길가 하는 老婆心..

백운대(白雲臺)와 雲林臺(운림대)-칠원읍 운곡리 운동

칠원읍 운곡리 855-1에는 백운대(白雲臺)와 雲林臺(운림대)가 인접해 있다. 이곳의 좌표는 위도 35°18'59"N 경도 128°32'27"E이며 고도는 53m이다.옛 운곡초등학교의 남쪽 담장 밖의 농로 위에 위치하고 백운대(白雲臺)와 雲林臺(운림대)는 운곡초등학교 숲의 내력을 담고 있다. 이 숲은 이팝나무 4그루와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의 노거수가 있다. 느티나무가 보호수라는 안내판은 있었으나 그렇게 오래된 느티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백운대(白雲臺) 비갈 옆면을 다듬어 西紀 一九七六년 丙辰 七月 七日(서기 일구칠육년 병진 칠월 칠일)金鍾榮 金尙煥 事役 (김종영 김상환 사역)黃喆柱 撰 金正淵 書(황철주 찬, 김정연 서)라 새겼다. 백운대(白雲臺) 비갈과 나란히 오석의 비를 세웠는데 내용은 ..

김해김씨부자포효비(金海金氏父子褒孝碑)

지귀동에 전하는 『김해김씨부자포효비(金海金氏父子褒孝碑)』에 관하여 예전에 글을 썼지만 당시에는 한문을 이해하지 못해 한글로 전하는 자료를 모아 이야기했다. 이제야 겨우 글을 알게 돼 이전의 비가 있는 명지노인당 앞의 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위치는 의창구 명서로123번길 9(명서1동 174-9), 명지경로당 앞에 옛 비가 있고, 좌표는 위도 35°14'45"N 경도 128°38'54"E이며 고도는 9m이다. 새로 세운 비는 의창구 봉곡동 4에 위치하며 좌표는 위도 35°14'55"N 경도 128°39'19"E이고 고도는 31m이다.김해김씨부자포효비의 원문과 번역 내용은 아래와 같다, 金海金氏父子褒孝碑金海金氏父子褒孝碑將竪 金君聖斗 與其三從孫魏坤靈坤請余 爲銘謹按 其遺事狀牒櫽括 以敍次之父公諱禹振字聖謙 節孝先..

향운대(鄕雲臺)-칠원읍 운곡리 운동 입구

칠원읍 운곡리 1040-8는 현재 버스 정류소가 위치하며 운동 마을 표석과 향운대(鄕雲臺) 비갈과 충효 비갈, 향운회성지처(鄕雲會成志處), 회원명단(會員名單) 등의 비갈이 시멘트 대위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곳의 좌표는 35°19'03"N 128°32'25.2"E이고, 고도는 52m이다. 회원명단(會員名單)에는 김기문(金基文) 외 56명의 이름을 새겼고, 충효(忠孝)비갈 옆에 향운대(鄕雲臺) 비갈이 있으며, 향운회성지처(鄕雲會成志處) 비갈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푸르고 높은 뜻과 굳은 의지로 향토(鄕土)의 발전(發展)과 후진 양성(養成)을 위해 일구육오년 춘절(一九六五年 春節) 젊은 향우()가 등불을 밝히고 본회()를 창립 오늘에 이르도록 숙원사업인 결과 빛을 이 고장에 심었고 앞으로 영원불변 향토..

탁금대(濯襟臺)-칠원읍 운곡리

칠원읍 운곡리 269-1에는 탁금대(濯襟臺)라 새긴 비(碑)와 내력을 담은 비가 따로 있다. 비가 위치한 곳은 무릉산(武陵山;565.1m)이 남쪽으로 내려와 계곡부를 이루는 곳에 건설된 「운무로」가 지나는 길옆에 있다. 이곳의 좌표는 35°18'59"N 128°33'56"E이고, 고도는 121m이다. 이 탁금대(濯襟臺)는 운무로가 건설되면서 산이 절개가 되어 지나는 곳이라 창원시 무동리에서 함안군 운곡리 방향으로 내려갈 때만 보인다. 칡과 잡초가 많이 자라 접근하기 쉽지는 않다. 내력을 담은 큰 비의 내용은 파악하기 쉽지 않아 다음 기회가 오면 하기로 하여 포기를 하고 탁금대(濯襟臺)의 내용만 아래에 기록한다. 濯襟臺(탁금대) 마음을 씻는 누대武陵源裡水(무릉원리수) 무릉도원 속의 물은淸爭本無塵(청쟁..

장붕익 부사 선정비 2기

창원시에는 3개의 장붕익 부사 선정비(張鵬翼 府使 善政碑)가 있다. 하나는 용지공원 비석군에 위치하고 두 개는 천주산 입구인 창원시 의창구 동정동 94-4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곳의 좌표는 35°16'15"N 128°36'50"E이고, 고도는 128m이다.「장붕익 부사 선정비」가 이 위치에 있는 것은 창원도호부의 소공관(小公館)이 있는 주물연진(主勿淵津)으로 가는 길이며 한양(漢陽)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천조(山川條)〗에는 『주물연진(主勿淵津)』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주물연진(主勿淵津)은 부(府) 북쪽 40리 지점에 있으며 칠원현(漆原縣) 매포(買浦) 하류이다. 언덕 위에 작은 소공관(小公館)을 개설하여 배를 타고 왕래하는 왜국(倭國) 사신을 접대한..

봉암동 봉진비(鳳津碑)

봉암동을 찾은 것은 창원천의 발원지를 찾으면서 그 최종 종착지인 봉암갯벌을 가면서 들렀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고 블로그를 하게 된 계기가 봉암나루 때문이다. 봉진비를 처음 본 것이 거의 20년 전의 일인데 환경운동연합에서 아무거나 좋으니 글 한 편 달라고 했다. 글을 써본 적도 없고 재주도 없는데 억지로 꺼리를 만들려고 찾은 곳이 내서와 창원 분지를 잇는 봉암(鳳岩)을 찾게 되었다. 이곳 나루는 기수지역이라 무언가는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찾았는데 뜻밖에 이 봉진비를 만나게 되었고 그 내용이 아름다워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봉진비문의 원문을 옮겨 적게 되었고 한글로 해석하면서 옛 선비의 생각도 보게 됐다. 봉암동 비석군이 위치한 이곳은 창원시 회원구 봉암동 103이며, 좌표는 35°12'47"N ..

한사 강대수 신도비_합천군 묘산면 관기리

합천군 묘산면 관기리 704에는 한사강선생신도비寒士姜先生神道碑와 비각이 있는 곳으로 이곳의 해발 높이는 221m이고, 좌표는 35°38'53"N 128°07'30"E를 가리킨다.아들과 함께 찾아간 이곳은 관기리를 지나는 국도24호와 인접한 공터로 『한사강선생신도비각寒沙姜先生神道碑閣』은 옛길에서 잘 보인다. 한사강선생寒士姜先生은 진주강씨晋州姜氏 은열공파殷烈公派 파조派祖 1세 민첨民瞻(963~1021)의 19세손으로 2세 태자태전太子太傳 단旦, 3세 예빈경禮賓卿 보輔, 4세 상서성좌승尙書省左承 정협貞叶, 5세 판삼사추성익재공신判三司推誠翊載功臣 여익呂翼, 6세 원감元鑑, 7세 정靖, 8세 순珣, 9세 적𥛚, 10세 검釖, 11세 진천군파조晋川君派祖 위상渭詳, 12세 인선仁先, 13세 거호居好, 14세 승..

귀곡·귀현 옛터 碑

『귀곡·귀현 옛터비』는 적현로와 두산볼보로가 만나는 길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이곳의 해발 높이는 5m, 좌표는 35°11'15"N 128°35'48"E이다.지금은 신촌동에서 해안선을 따라 자동차 도로인 적현로가 개설되어 있지만, 이곳 귀곡·귀현마을은 유래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육로는 없고 오직 배편만 있던 창원의 오지 중 한 곳이었다.산업기지개발이 없었을 때 이곳을 드나들기 위해서 신촌에서 산을 넘어 출퇴근하셨던 동사무소 직원이나 삼귀초등학교 선생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고 지금은 그 오솔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귀곡·귀현 옛터비』에 새겨진 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귀곡·귀현은 산성산 자락을 배산으로, 합포만을 임수로 품어 안은 아름다운 갯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오백여년간 조상 대대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