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생각하다 359

훈민정음_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訓民正音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而習 便於日用矣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나라의 말소리가 중국(中國:중앙 나라말,궁궐, 한양)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세종대왕 당시 조선의 각 지역 언어는 서로 소통되지 않는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즉 경상도와 제주도, 함경도, 한양의 궁궐 언어 등이 서로 달라 소통되지 못하여 각 지역에서 벼슬한 자들이 궁궐에서는 한문으로 소통했다.

창원시 봉림산 산불

2026년 2월 21일 오후 3시 50분쯤 봉림동 보현선원 인근에서 산불이 발생해 약 1시간 만에 진화했다. 소방서와 산림당국, 경찰이 동원되었고, 헬기 10대 등 장비 40여 대와 인력 140여 명이 출동하여 주불을 진화했다. 이 불은 10대들이 불꽃놀이를 하다가 산불로 발생했다는 목격자의 말을 토대로 조사가 진행됐다.23일 불이 난 사실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사진을 남겼고 불길이 지난 자리의 소나무는 잎의 빛이 변했다. 불이 발생한 지역에서 보현선원은 30m 정도까지 불길이 있었고 농장에 설치한 건물 일부는 불길의 영향을 받았다.

봉림천_지방1급하천(경상남도 관리)

봉림천(鳳林川)은 봉림산(295m) 서쪽 사면 244m 지점에서 발원해 2.6km를 내려와 창원천1호교 위에서 합류한다. 좌표는 35°15'32"N 128°40'55"E이다. 봉림천은 5개의 지천이 합류하여 비교적 짧은 거리를 이동해 창원천으로 유입된다. 앤골약수터, 봉림산발원지. 소봉마을발원지, 가마골약수터, 태복산(太福山;250m) 창원CC 8번홀, 「의창구 봉림동 637」로 옛 부처고개마애석불이 위치했던 곳이다.

늙으면 생각한다.

老則思 年長志遠 思慮愈深無用長生 甚為醜陋 徒延歲月 可羞可恥 壽而無德 不若不壽 苟延殘喘 不足觀也늙으면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뜻은 멀어지고 생각은 더욱 깊어진다 쓸모없이 오래 살지 마라, 매우 추하다 헛되이 세월을 늘이는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덕 없이 오래 사느니 차라리 오래 살지 않는 것이 낫다 구차하게 숨만 이어가는 모습은 볼 것도 못 된다

전당(殿堂)

전당(殿堂)전당(殿堂)은 우리말이 아니라 왜놈(倭者)이 만든 조어이다. 이 조어(造語)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우리 전통을 훼손하는 말이다. 우리는 건물에도 위계가 있고 이름을 짓는 기준이 있다.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이 건물의 서열이다. 전(殿)과 당(堂)은 섞어서 사용하는 명칭이 아니다. 전(殿)은 궁궐, 사찰, 향교 등에 사용되는데 궁궐에는 근정전(勤政殿)처럼 임금만 사용하고, 사찰에는 대웅전(大雄殿)이라 하고 부처만 있다. 향교에는 대성전(大成殿)이라는 공자(孔子)를 모신 곳에만 사용한다.당(堂)은 전보다 권위가 낮은 건물이거나 전(殿)에 딸린 건물 등에 붙는 명칭이다. 따라서 전당(殿堂)이라 함은 그냥 당(堂)이라 하는 게 맞는 말이다.당(堂)은 창경궁(昌慶宮)의 부속인 양화당(養和堂..

서시 序詩

序詩 서시 至死仰天 願無一點愧色。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風動葉間 吾心亦傷。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以歌星之心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當愛一切將逝之物。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且當履吾所受之途。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今夜亦有星光 爲風所拂。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1917~1945) -

동국여지_창원도호부

東國輿地志 卷四下-慶尙道_昌原都護府只耳浦。在府南十里。有鹽盆。 지이포 부 남쪽 10리에 있다. 염전이 있다.沙火浦。去只耳浦五里。有鹽盆。사화포 지이포에서 오 리 떨어진 곳이다馬山浦。在會原廢縣。마산포 회원 폐현에 있다.合浦。在府西十里。高麗元宗十五年春,元世祖欲征日本,以合浦縣爲征東行省,詔洪茶丘與金方慶等監造戰艦于合浦。冬十月,方慶等與元帥忽敦、副元帥洪茶丘ㆍ劉復亨等,以蒙軍二萬五千、我軍八千、稍工ㆍ引海ㆍ水手六千七百、戰艦九百餘艘征日本。至一岐島,敗倭兵,復亨中流矢夭死,遂還軍合浦。七年,帝又命忻都、茶丘,與方慶等復征日本,王親至合浦閱兵。帝又令范文虎將蠻軍十萬發江南。합포(合浦)는 부(府)의 서쪽 10리에 있다. 고려 원종(元宗) 15년 봄, 원(元) 세조(世祖)가 일본을 정벌하고자 합포현(合浦縣)을 정동행성(征東行省)으로 삼고, 홍다구(洪..

조선왕조실록의 국민 國民

"조선왕조실록"에서 "國民"이라 입력을 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나타난다.  1.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 7월 12일 임오 6번째기사 / 전 동북면 도순문사 이지원이 편민 사의를 올리다 그 영조(營造)하는 물자가 비록 사재(私財)와 사노(私奴)에서 나왔다 하나, 사노(私奴)가 곧 국민(國民)이요, 사재(私財)가 곧 국재(國財)이니, 공사 와요(公私瓦窰)와 토목(土木)의 역사 를 풍년이 들때까지 한하여 일체 금하소서. 其營造之資, 雖曰出於私財私奴, 然私奴乃國民也, 私財乃國財也。 公私瓦窰土木之役, 乞限豐年一禁。 2. 세종실록 56권, 세종 14년 6월 27일 갑인 4번째기사 / 판부사 고 이화영 처의 봉록외 인호 점유건을 논의하다 "몰래 점령한 인호는 죄다 들춰내어 군역(軍役)으로 차정(差定)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