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871

대암선생문집_전(臺巖先生文集_全)

『대암선생문집_전(臺巖先生文集_全)』은 1811년(순조 11) 최동집(崔東㠍, 1586∼1661)의 시문을 목판본 2책으로 발간한 것을 후손들이 1책으로 한지 접장에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다시 엮은 것이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최흥벽(崔興壁)의 발(跋)이 있다.이 책은 토지서점의 물건을 9월 15일 북코아를 통해 11,950원에 구입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0cm, 세로 28.6cm이며 206쪽이다. 최동집(崔東㠍, 1586∼1661)은 본관이 경주, 자는 진중鎭仲, 호는 대암臺巖이다. 현령 최계崔誡의 아들이고,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이다.1616년(광해군 8) 진사가 되었고, 유일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어 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이후 팔공산 농연聾淵 가에 자리를 잡..

논어(論語)_하루에 한 문장362

제16편 계씨(季氏)14邦君之妻(방군지처)를 君(군)이 稱之曰 夫人(칭지왈 부인)이요 나랏님의 아내를 나랏님이 일컫기를 부인이라 하고夫人(부인)이 自稱曰小童(자칭왈소동)이요 부인이 스스로 일컫기를 소동이라 하며,邦人(방인)이 稱之曰 君夫人(칭지왈 군부인)이요 그 나라 사람이 일컬어 말하기를 군부인이라 하며,稱諸異邦曰 寡小君(칭제이방왈 과소군)이요 다른 나라에 대하여 일컫기를 과소군(寡小君)이라 하고,異邦人(이방인)이 稱之(칭지)에 亦曰 君夫人(역왈 군부인)이라하니라다른 나라 사람이 그를 일컫기를 또한 군부인이라고 한다.

물재선생문집-전(勿齋先生文集-全)

『물재선생문집-전(勿齋先生文集-全)』은 평산 신씨(平山申氏) 시조 신숭겸(申崇謙, 875?~927년)의 산재(散在)한 유고(遺稿)를 수집(蒐集)하여 초판(初版)이 1726년 목판되었고, 1875년 문집(文集)으로서 절목(節目)을 갖추어 건곤양권(乾坤兩卷)으로 간행(刊行)되었으나 수차(數次)의 병화(兵禍)로 소실(消失)되었다. 이러한 기록들을 가지고 1987년 15세손 신승락(申承洛)이 세로글씨 양장본으로 국역하여 문진사에서 인쇄 발간했다.권두에 목차를 붙이고 발간사를 실은 후, 물재선생의 생가. 유지, 묘소, 신도비와 각, 재실, 묘당 등 다양한 사진을 실었다. 권말에는 발 3개와 세계도(世系圖), 동서양 연대표를 붙였다.이 책은 가자북의 물건을 9월 15일 북코아를 통해 13,150원에 구입했다. 책의..

논어(論語)_하루에 한 문장361

제16편 계씨(季氏)13陳亢(진항)이 問於伯魚曰 진항(陳亢)이 백어(魚曰)에게 묻기를 子亦有異聞乎(문어백어왈 자역유이문호)아 “그대는 선생님께> 남달리 들은 것이 있는가?”라고 하니對曰 未也(대왈 미야)로다 嘗獨立(상독립)이어시늘 대답하기를 “없다. 일찍이 혼자서 계시기에 鯉趨而過庭(리추이과정)이러니 曰 學詩乎(왈 학시호)아 내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니 말하길 ‘시를 배웠느냐?’고 하시기에對曰 未也(대왈 미야)로이다 不學詩(불학시)면 대답해 말하기를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더니無以言(무이언)이라하시거늘 鯉退而學詩(리퇴이학시)호라말씀하시기를>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방법이 없다.’고 하셔서 내가 물러나 시를 배웠다.他日(타일)에 又獨立(우독립)이어시늘 鯉趨而過庭(리추이과정)이러니 다른 날..

뇌옹집_권지삼~오(餒翁集_卷之三~五)

『뇌옹집(餒翁集)』은 석인본 8권 3책으로 노루지 접장에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엮은 순 한문의 세로글씨이다. 조선 후기 옥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곽수엽(郭守熀, 1679~1753) 선생의 시가와 산문을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책은 중고 거래 ‘당근’에서 9월 14일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사는 판매자에게 15,220원에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3책이 완본이지만 3책 중 2책만 구입했다. 본관은 선산, 자는 경문景文, 호는 뇌옹餒翁이다. 옥천 출신으로 종사랑 곽문완郭文浣의 손자, 통덕랑 곽진郭榗의 아들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다.1713년(숙종 39) 진사시에 합격했다. 경의經義와 예설禮說에 밝았고, 율곡 이이와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학문을 따르고자 하였다.석인본 7권 3책이다. 곽면재郭冕..

논어(論語)_하루에 한 문장360

제16편 계씨(季氏)12齊景公(제경공)은 有馬千駟(유마천사)하되 死之日(사지일)에 제나라 경공은 사천 필의 말이 있었으나 죽는 날에 民無德而稱焉(민무덕이칭언)이요 伯夷叔齊(백이숙제)는 백성이 덕을 일컬음이 없었고, 백이·숙제는餓于首陽之下(아우수양지하)하되 民到于今稱之(민도우금칭지)하나니 수양산에서 굶주렸으나 백성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칭송하고 있다.《誠不以富 亦祗以異》 其斯之謂與(기사지위여)인저《『시경』에 진실로 부귀에 있지 않고 특이한 덕행에 있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소학제가집주(小學諸家集註)

『소학제가집주(小學諸家集註)』은 필사본이며 한지 접장에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엮은 순 한문의 세로글씨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0.2cm, 세로 29.5cm이며, 59쪽이다.책은 중고 거래 ‘당근’에서 9월 14일 전주시 완산구에 사는 판매자에게 15,220원에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아래는 디지털장서각에서 붙여둔 해제의 내용이다. ◑이이(李珥 1536~1584)가 편집한 『小學諸家集註』를 1612년(광해군 4)에 간행한 책이다.◑서지사항본 도서는 1612년 훈련도감자로 간행되어 묘향산사고에 내린 내사본이다. 그러나 각 책 첫 면에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 이후 소장처의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말에는 李恒福 의 발문과 간행에 참여한 훈련도감의 관원 및 간..

논어(論語)_하루에 한 문장359

제16편 계씨(季氏)11孔子曰 見善如不及(공자왈 견선여불급)하며 공자께서 말하길 착한 것을 보면 거기에> 미치치 못할 듯이 여기고見不善如探湯(견불선여탐탕)을 착하지 않는 것을 보면 끓는 물이 뜨거워서 손을 빼듯이 한다 하였는데,吾見其人矣(오견기인의)요 吾聞其語矣(오문기어의)로라 나는 그런 사람을 보았고, 그런 말을 들었다.隱居以求其志(은거이구기지)하며 行義以達其道(행의이달기도)를 숨어 살면서 뜻을 구하고 의를 행하여 그 도를 달성한다 하였는데,吾聞其語矣(오문기어의)요 未見其人也(미견기인야)로라나는 그런 말을 들었으나 그런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반남세사(潘南世史)

『반남세사(潘南世史)』라 제목을 붙인 이 책은 『반남가사(潘南家史)』라 이름 붙인 책과 함께 한질(一帙)을 이루는 2권의 책이다. 이렇게 제목을 붙인 것은 표지에 제목이 없어 내용을 파악하면서 짓게 되었다. 『반남가사(潘南家史)』의 마지막 쪽에는 소화구년육월삼일(韶和九年六月三日) 발행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즉 1934년 6월 3일에 발행했다는 것이다. 발행은 ‘전라남도 나주군 공산면 복용리 21’이라 적었고, 제작과 발행은 박우양(朴瑀陽)이 했으며, 인쇄와 발행소는 ‘반남면 석천리 272’에서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반남세사(潘南世史)』는 한지 접장에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엮은 순 한문의 세로글씨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1.7cm, 세로 17.4cm이며, 104쪽이다.책은 중고 거래 ‘당근’에서 ..

논어(論語)_하루에 한 문장358-제16편 계씨(季氏)10

제16편 계씨(季氏)10 孔子曰 君子(공자왈 군자)는 有九思(유구사)하니 공자께서 말하길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다.視思明(시사명)하며 聽思聰(청사총)하며 볼 때는 분명하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확실하기를 생각하고, 色思溫(색사온)하며 貌思恭(모사공)하며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태도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言思忠(언사충)하며 事思敬(사사경)하며 말은 충실하기를 생각하고, 일은 신중하기를 생각하고, 疑思問(의사문)하며 忿思難(분사난)하며 의심날 때는 물어보기를 생각하고, 분할 때는 재난을 생각하고, 見得思義(견득사의)니라 이득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