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488

한림공원의 협재굴과 쌍용굴

한림공원은 제주의 기후와 지형을 비롯해 생태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곳으로 제주 여행에서 이곳을 봤으면 기본은 다 알았다 할 정도로 집약된 제주도를 알려 주는 곳이라 소개하고 싶다. 제주도는 화산활동으로 솟아난 용암지역이며 여러 번 용암 분출로 곳곳에 오름을 만들고 지하에 수많은 동굴을 만들었다. 제주에서 알려진 만장굴이나 협재굴, 쌍용굴은 지표면에 가까워 드러난 동굴이지만 『제주4·3 유적지』로 남아 있는 안덕면 동광리 지역의 「큰넖궤」와 조천읍 선흘리의 「도틀굴」 등이 산재하고, 곶자왈 어느 곳에도 숨골이 있다. 이 숨골을 통해 지하에서 물이 이동하는 지하 동굴구조를 가진 특이한 땅이다. 어슬렁거리며 들어선 한림공원은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야자수 군락과 나무에 기생한 일엽초, 석위, 등 양치식물의 모..

한림읍 명월대明月臺

제주도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명월대明月臺는 한림읍 명월리를 지나는 용포천에 위치해 정확한 위치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명월리 1847-4를 입력하고 영각사라는 일반 집 같은 절을 찾는 게 쉽다. 이곳 용포천은 남에서 북쪽으로 물이 흘러간다. 용포천 따라 늘어선 명월리 팽나무 군락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홍교 형식의 명월교에서 상류쪽을 바라보면 명월대明月臺가 있다. 용포천 안쪽 절벽 위에 자리한 명월대는 정사각형의 대 자리를 잡고 육각의 단을 만든 후 맨 위쪽은 원형의 제법 넓은 대를 만들어 두었다. 그 뒤쪽 바위 위에 명월대明月臺라는 비석을 세웠다. 이곳 안내판에는 명월대明月臺에 대해 이처럼 기록해 두었다.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2223외 1필지, 명월대는 예부터 양반촌으로 알려진 명월리애 있으며 옛 선..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에 위치한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남한강 변에 있다. 통일신라가 중원을 평정하고 세운 7층석탑으로 절의 부속 건축물이 아니라 상징적 표식물로 건설됐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는 이 탑과 어우러질 만한 절터의 흔적이 인근에 없고 남한강의 영역 안에 있어 홍수에 대비하여 절을 지을 땅이 없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높다. 탑은 높이 14.5m에 비해 너비가 좁아 가늘게 치솟은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다. 또한 탑이 위치한 곳은 인근의 다른 곳 보다 높은 편인데 예전부터 이곳이 높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충주에서 보았을 때 표식이 될 높이로 탑을 세웠을 것이다. 이곳에 세워 놓은 안내판의 내용에는 “1817년 해체·복원 시 6층 탑신에서 훼손된 고서류와 ..

영산 석빙고 靈山 石氷庫

창원시 중앙평생교육센터 김경주 센터장이 자신의 고향인 창녕 역사탐방을 계획하고 함께할 회원을 모집하여 시작하게 된 여행조직은 운전자 포함 8명의 단촐한 구성원으로 영산 탐방을 했다. 영산의 만년교, 석빙고, 영산향교, 만년교정원을 둘러보고 소고기 점심을 먹고 다시 창녕읍의 관룡사와 사리 배롱나무군락지를 거쳐 일과를 마쳤다. 『영산 석빙고 靈山 石氷庫』는 창녕군 영산면 교리 410-2에 위치하며 국가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봄과 여름에 사용할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이다. 건물의 형식은 땅을 파서 돌로 벽을 쌓고 바닥은 출입문의 앞을 높게 하고 뒤를 낮게 경사를 두었으며, 흙을 다지고 돌을 깔아 물이 잘 빠지도록 했으며, 천정의 돌은 홍예虹蜺(둥근 모양) 모양으로 쌓아 바람이 잘 통하고 지붕에 구멍..

전단산 우곡사 이야기

전단산우곡사(栴檀山牛谷寺) 공덕비(功德碑)의 이야기를 티스토리블로그에 기록한 것이 다음블로그에서 tistoryblog로 옮겨지면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2022년 10월 15일 15시경 카카오톡 서브의 화재로 인해 한때 사용할 수 없으면서 사라진 것인지는 몰라도 ‘역사와 야생화’란 블로그 기록에서 사라져 버렸다. 또한 다른 기록도 없다. 이제 믿을 만한 것이 점점 없어진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전단산우곡사栴檀山牛谷寺의 공덕비는 전단산栴檀山의 한자 이름에 대한 기록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다시 찾아가 사진을 남기고 그 내용들을 남겨둔다. 전단산은 정병산精兵山의 옛 지명이고 지금까지 옛 기록들 외에 근래에 세운 금석문金石文으로 남아 있는 한자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옛 기록 중 많은 기록이 한자로는 ..

애월 한담공원과 월령리 이야기-창원향토사연구회 제주도 여행기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세수도 못 하고 김해공항으로 가기 위해 중앙동 경유지에 도착해 차량에 올랐다. 남산버스정류소에서 선배 부인이 운전하는 차량은 일행을 태우고 정신없이 공항을 향했다. 다행히 시간은 늦지 않아 다른 일행들과 국내선 2층 약국 앞에서 합류하여 대한항공에 올랐고 그렇게 제주도에 도착해 첫날의 일정이 시작됐다. 공항에서 현지 관광안내인을 만나 줄지어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첫 번째 도착지인 애월한담공원의 물허벅여인상 앞에 다다랐고 일행은 단체 사진을 남긴 후 제주 올레길 15번 해안산책로를 걸었다. 단체 사진을 찍은 물허벅여인상의 뒤쪽에는 『물허벅여인상』에 대한 내력이 석판에 새겨져 있어 옮겨 본다. 『물허벅여인상 물허벅은 이 고장에 상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식수를 길어 나르던 생활의 도구이다..

지리산 노고단을 가다.

지인들과 지리산 길상봉(1,507m)의 정상인 노고단(老姑壇)을 탐방하기 위해 아침 7시경부터 차량을 기다리며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으나 차량이 예정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되어 출발도 늦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은 전라도 섬진강 휴게소를 들러 구례를 거쳐 지리산 노고단로를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랐다. 목적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시암재휴게소 주차장에 잠시 들렀는데 운전하신 분이 성삼재주차장으로 착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장 성삼재주차장으로 진입해 주차하고 일행들은 산행 준비 했다.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의 모습으로 맑고 온화한 날씨였으며 걷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날이다. 우리 일행은 총 6명이다. 그중 한 분이 건강에 이롭다며 맨발로 등산을 즐기는 분이라 체력에 자신이 없었지만 따라가면..

단양 도담삼봉 島潭三峯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국회의를 지방에서 처음으로 단양에서 열 개 되어 부울경지역회원들도 참석을 하게 됐다. 창원시역에는 총 6명의 사료조사위원이 있는데 이번에는 4명이 참가하고 자가용으로 이동 수단을 이용하기로 해 김해지역 위원 1명도 포함해서 5명이 한차량으로 이동하게 됐다. 새벽 5시에 출발하자고 해 출발하여 단양에 도착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배위원의 건의로 국보(1979.05.22.)로 지정된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를 탐방하게 됐다. 이 탐방은 다음에 기록하기로 하고 전국회의 중 잠시 짬을 내어 다녀온 단양 팔경의 하나이며, 명승 제44호인 도담삼봉(島潭三峯)의 이야기를 먼저 남긴다. 도담삼봉(島潭三峯)은 개인적으로 몇 번을 갔다 왔지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이번에도 기록하지..

남해 망운산 망운사 望雲寺 주련

남해에 문중 재실이 있는지 알아보고 겸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망운산봉수대를 찾으러 갔다가 찾지 못하고 예전에 영상으로 봤던 망운사望雲寺를 찾았다. 망운사는 돌일주문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찾아보니 입구에 일주문一株門을 세웠고 절집의 이름을 전면에 “望雲山望雲寺”라 편액하고 뒷면에는 “不二門”이라 편액하여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라 이러지만 그 본뜻은 ‘진리란 말’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양 기둥에 대련을 달았는데 그 뜻은 이러하다. 一株門 對聯 일주문 대련 入此門內莫存知解 이문 안으로 들어오면 아는 체 하지마라 無解空器大道盛滿 아는 것이 없는 빈 그릇이 큰 도를 이룬다. 불이문을 지나 너들강을 건너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에 돌일주문이 암반위에 세워져 있다. 돌일주문의 패..

성주사 창건기로 본 믿기 어려운 역사 이야기

2020.6.1. 장복산 능선에서 본 성주사 곰절 이 사진을 찍은 곳은 웅산에서 안민고개로 내려오는 능선으로 높이는 해발 452m, 위도 35°09'58.5"N 경도 128°42'48"E의 위치이다. 아래의 2012년 사진과 비교해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변해가는 성주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주사聖住寺의 또 다른 이름이 웅신사熊神寺이다. ‘성인이 머무르는 사찰’이란 의미의 성주사聖住寺와 ‘곰의 신령이 있는 절집’이란 의미의 웅신사熊神寺를 동시에 사용하는 절집이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부터 ‘성주사 곰절’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성주사聖住寺의 창건설화는 2가지가 전해오고 있는데 그 하나가 가야시대 남방불교를 전파한 장유화상長遊和尙 창건설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 흥덕왕 때의 무염국사無染國師 창건설이다. 첫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