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31

밀양 무안 어변당(魚變堂)-덕연서원(德淵書院)-편액

덕연서원(德淵書院)은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 421-2(연상1길 29)에 위치하며,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 394에 있는 어변당(魚變堂)의 부속건물로 어변당은 박곤(朴坤, 1370~1454)의 후손들이 1994년 세웠고, 덕연서원(德淵書院)은 어변당 기념사업회(魚變堂 記念事業會)가 1998년 정부(政府)에 건의(建議)하여 국비보조(國費補助)로 건립한 서원이다. 이곳에는 어변당(魚變堂) 박곤(朴坤, 1370~1454)과 종향(從享)으로 임진공신(壬辰功臣) 모우당 박몽룡(慕優堂 朴夢龍), 죽림제 박세용(竹林齊 朴世墉;1685~1773)을 매년 추향(秋享)으로 향사(享祀)하는 곳이다. 박곤의 충효쌍전(忠孝雙全)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은 덕연서원(德淵書院)을 창건하면서 당호를 ‘쌍전당(雙全堂)’이라고 붙였고, 덕연..

밀양 금시당 가을(今是堂)

금시당십이경운(今是堂十二景韻) 驚麓春花 앵봉의 봄꽃-제1경春風一夜足生涯 봄바람은 생애 하룻밤에도 족한데雨洗山顏碧破霞 비에 씻긴 푸른 산의 안개가 흩어지네金馬歸來曾機日 금마문에서 돌아온 지 그 언제인데年年留發杜鵑花 해마다 두견화는 잊지 않고 피어나네 金馬歸來(금마귀래) : 금마문(金馬門)은 중국 한나라 때 지어진 미앙궁(未央宮) 문의 하나. 벼슬을 하여 관청에 나가 하문(下問)을 기다리던 곳이다. 따라서 금마귀래는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오다는 뜻이다. 龍壁冬篁 용두언덕의 겨울 대나무-제2경龍岡歲慕綠猗猗 용강은 세모에도 푸른 대가 무성하여活意欣看机案移 기분 따라 책상 옮겨 흔쾌히 바라본다.鳳去千年山獨立 봉황은 가고 산만 천년 홀로 섰는데琅干不見雪封枝 눈이 가지를 덮어 ..

함양 거연정(咸陽 居然亭)과 편액(扁額)

함양 거연정(咸陽 居然亭)은 경남유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정자(亭子)로 함양군 육십령로 2590(서하면 봉전리 881-5)에 위치한다. 좌표는 35°37'35"N 127°44'15"E이고, 고도는 299m이다. 입구 안내판에는 『고려 말 전오륜의 7대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全時敍)가 처음 터를 잡은 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1872년 화림재 7대손인 진사 전재학(全在學)·전계진 등이 세웠으며, 1901년에 고쳤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건물로 내부에는 벽체를 판재로 구성한 방을 1칸 두고 있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네모지고 짧은 서까래를 올림 겹치마 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파(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식이다. 거연정은 하천의 암반 위에 세워져 주변의..

합천 옥전서원(陜川 玉田書院)

합천군 황강옥전로 1510-60에 위치한 옥전서원(玉田書院)은 초계 정씨의 시조인 정배걸(鄭倍傑;?-1051)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철종 12년(1861)과 1981년에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른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마루로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두었다. 1993년 12월 27일 지정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직전에 동래부사가 자신이 찬한 정간공(정문의 시호) 신도비문을 목형으로 세우고 비각으로 둔갑시켜 훼철을 모면하였다고 전한다.서원은 정배걸의 묘소 앞에 있으며 정배걸과 아들 정문(鄭文;?-1106)을 향사하는 용도로 사용하며, 매년 음력 3월 1일과 10월 1일에 춘추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玉田書院..

삼가 기양루(三嘉 岐陽樓)

합천군 삼가면 금리 622-12에 위치한 기양루岐陽樓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건물 앞 안내판에는 이처럼 기록해 두었다.『이 누각은 동편에 관아 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삼가현성三嘉縣城 안에 있던 관청의 부속 건물로 보인다. 조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건물에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조선시대의 지방관공서 건물이 15세기에 많이 지어졌으므로 그 무렵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기양루岐陽樓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의 지명이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742~765) 때 삼기현三岐縣에서 강양군江陽郡으로 바뀐 적이 있는데, 이 지명에서 기岐와 양陽 두 글자를 따왔을 ..

합천 가남정과 사우정 느티나무

합천 야로면冶爐面 하림리 753(빈연길 7-9)에 위치한 가남정伽南亭은 사우정四友亭이란 현판도 함께 붙어있는데 야로면冶爐面에서 해인사 가는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 가야천 변에 마을과 떨어져 독채로 있다. 가남정伽南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 대장 정인함鄭仁涵(1546~1613)을 도와 공을 세운 문암文庵 정인기鄭仁耆(1544~1617)·금월헌琴月軒 정인함鄭仁涵·우천愚川 정인휘鄭仁徽(1548~1606)·낙재樂齋 정인지鄭仁止(1550~?) 4형제를 모시고 추모하는 곳으로 ‘사우정四友亭’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1738년 서산정씨瑞山鄭氏의 시조와 4형제를 우계리에 세덕사를 세워 모시기 시작했고 1862년 운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되었는데 1919년에 가남정伽南亭을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

김해 송담서원과 표충사

경상남도 기념물 제99호 사충단(四忠壇)은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동상동 161)에 위치하며, 분산성(盆山城) 우측 계곡에 있다. 사충단은 임진왜란 때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김해부성(金海府城)을 지키다 전사한 송빈(宋賓), 이대형(李大亨), 김득기(金得器), 류식(柳湜)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 8년(1871) 왕명으로 건립한 묘단이다. 1995년 송담서원松潭書院과 표충사表忠祠를 국도시비(國·道·市費) 약20억원을 들여 복원했는데 비각 이외의 건물은 모두 신축하였다. 비각은 주심포식(柱心包式) 겹치마의 맞배지붕을 하고 여의주를 문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지키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네 명의 충신을 용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에 향례享禮를 ..

충주 팔봉서원 八峰書院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達川은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에서 충주시 수안보에서 발원한 석문동천石門東川을 만나는데 수주팔봉이라 말하는 검암劍巖(칼바위)의 약한 암석을 뚫고 달천達川과 합류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살미면 토계리의 검암劍巖(칼바위)이 대소원면 문주리를 휘돌아 가는 달천達川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문주리에 화룡점정畵龍點睛 같은 팔봉서원八峰書院을 남기고 탐금대彈琴臺에서 남한강을 만나 큰 강이 된다.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74-1에 위치한 팔봉서원八峰書院은 연산군 축출 이후 진보적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1819) 때 극형을 당하거나, 귀양 갈 때, 이곳으로 귀양 온 계옹溪翁 이자李耔(1480~1533)와 충주 용탄龍灘으로 낙향한 탄수灘叟 이연경李延慶(1484~1548)이 거룻배를..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구룡정 九龍亭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산 132(백연)에 위치한 구룡정九龍亭은 1968년 부산과 함양의 계원들이 용유담 바위 위에 세운 정자로 용유담龍遊潭에 용龍 9마리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이름을 지었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237m, 좌표는 35°24'41"N 127°42'30"E를 가리킨다.(35°24'42.0"N 127°42'32.0"E) 구룡정九龍亭에는 김희소金熙韶가 지은 구룡정상량문九龍亭上樑文, 강기대姜起大가 지은 구룡정기九龍亭記, 구룡정계원명단九龍亭契員名單이 걸려 있고 정자 옆 암반에는 건립에 조력한 이강신李康信공로비를 1977년에 세웠다. 용유담龍遊潭에 살았던 구룡은 한쪽 눈이 먼 용 한 마리만 남겨두고, 여덟마리가 서로 싸우다가 마적도사에게 쫓겨가는 모양을 그린 구룡병풍이 법화사에 있었으나 해인사 성보박물..

부소산 백화정과 낙화암 扶餘山 百花亭 落花巖

성주에서 긴 거리를 이동하여 백제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부소산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에 도착했다. 낙화암으로 가기 위해서 부소산문을 통해야 하는데 루樓의 전면 현판을 '扶蘇山門'이라 했고 안쪽에서 루樓를 바라보니 '사비문泗沘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부소산 북쪽 절벽이 낙화암落花巖인데, 그 낙화암 위에 있는 정자가 백화정百花亭이다. 낙화암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멸망 당시 이곳에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곳인데, 이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백화정百花亭을 세웠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소동파蘇東坡가 혜주惠州에 귀양갔을 때 성 밖의 풍호豊湖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射百花洲’라는 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6각형 평면에 6각의 겹처마 지붕이다. 백화정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