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226

김해 송담서원과 표충사

경상남도 기념물 제99호 사충단(四忠壇)은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동상동 161)에 위치하며, 분산성(盆山城) 우측 계곡에 있다. 사충단은 임진왜란 때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김해부성(金海府城)을 지키다 전사한 송빈(宋賓), 이대형(李大亨), 김득기(金得器), 류식(柳湜)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 8년(1871) 왕명으로 건립한 묘단이다. 1995년 송담서원松潭書院과 표충사表忠祠를 국도시비(國·道·市費) 약20억원을 들여 복원했는데 비각 이외의 건물은 모두 신축하였다. 비각은 주심포식(柱心包式) 겹치마의 맞배지붕을 하고 여의주를 문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지키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네 명의 충신을 용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에 향례享禮를 ..

충주 팔봉서원 八峰書院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達川은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에서 충주시 수안보에서 발원한 석문동천石門東川을 만나는데 수주팔봉이라 말하는 검암劍巖(칼바위)의 약한 암석을 뚫고 달천達川과 합류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살미면 토계리의 검암劍巖(칼바위)이 대소원면 문주리를 휘돌아 가는 달천達川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문주리에 화룡점정畵龍點睛 같은 팔봉서원八峰書院을 남기고 탐금대彈琴臺에서 남한강을 만나 큰 강이 된다.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74-1에 위치한 팔봉서원八峰書院은 연산군 축출 이후 진보적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1819) 때 극형을 당하거나, 귀양 갈 때, 이곳으로 귀양 온 계옹溪翁 이자李耔(1480~1533)와 충주 용탄龍灘으로 낙향한 탄수灘叟 이연경李延慶(1484~1548)이 거룻배를..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구룡정 九龍亭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산 132(백연)에 위치한 구룡정九龍亭은 1968년 부산과 함양의 계원들이 용유담 바위 위에 세운 정자로 용유담龍遊潭에 용龍 9마리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이름을 지었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237m, 좌표는 35°24'41"N 127°42'30"E를 가리킨다.(35°24'42.0"N 127°42'32.0"E) 구룡정九龍亭에는 김희소金熙韶가 지은 구룡정상량문九龍亭上樑文, 강기대姜起大가 지은 구룡정기九龍亭記, 구룡정계원명단九龍亭契員名單이 걸려 있고 정자 옆 암반에는 건립에 조력한 이강신李康信공로비를 1977년에 세웠다. 용유담龍遊潭에 살았던 구룡은 한쪽 눈이 먼 용 한 마리만 남겨두고, 여덟마리가 서로 싸우다가 마적도사에게 쫓겨가는 모양을 그린 구룡병풍이 법화사에 있었으나 해인사 성보박물..

부소산 백화정과 낙화암 扶餘山 百花亭 落花巖

성주에서 긴 거리를 이동하여 백제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부소산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에 도착했다. 낙화암으로 가기 위해서 부소산문을 통해야 하는데 루樓의 전면 현판을 '扶蘇山門'이라 했고 안쪽에서 루樓를 바라보니 '사비문泗沘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부소산 북쪽 절벽이 낙화암落花巖인데, 그 낙화암 위에 있는 정자가 백화정百花亭이다. 낙화암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멸망 당시 이곳에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곳인데, 이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백화정百花亭을 세웠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소동파蘇東坡가 혜주惠州에 귀양갔을 때 성 밖의 풍호豊湖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射百花洲’라는 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6각형 평면에 6각의 겹처마 지붕이다. 백화정 편..

성주 회연서원 檜淵書院

창원성균관유도회에서 2023년 선현지 탐방을 성주 회연서원과 낙화암을 둘러보기로 하여 참가했다.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일행들이 타고 탐방지를 향해 달려간 첫 번째 장소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유적지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이었다. 『회연서원檜淵書院』은 1974년 12월 10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으로 1622년(광해 1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설립되었다가 1627년(인조 5)에 정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회연서원檜淵書院을 세웠으며, 1690(숙종 16)에 “회연檜淵”이라는 사액을 받아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74년에 정부의 보조와 지방유림의 협력으로 복..

함양 병곡면 원계정 遠溪亭

원계정遠溪亭은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193-1(가촌길 37-25)에 위치하며 진양하씨晉陽河氏 하일河鎰이 부제학·대사헌·이조참판 등을 지낸 삼산三山 이병상李秉常(1676~1748)이 함양에 귀양와 있을 때 더불어 놀았던 이심대理尋臺 위에 200여년 뒤인 원계遠溪 하재섭河在涉이 영모재를 지었고, 그의 아들 하정식河定植이 6대조 하일河鎰을 추모하여 이 원계정遠溪亭을 세웠는데, 손자 하종철河宗澈이 1938년에 완성했다. 원계정遠溪亭을 방문하게 된 것은 필자가 경남의 진주강씨 재루정齋樓亭를 찾아다닐 때 보다 더 이전에 이곳을 지나다 봐둔 정자라 그때 지나는 길에 들렀던 기억이 난다. 위천渭川의 강변 널찍한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좌우에 높다란 담장을 한 모습이 특이했는데 예전에는 주변에 제법 많은 노송이 있었지만..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도통사 道統祠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724(내축로577번길 29-9)에는 우리나라에서 안자安子라 칭하는 회헌晦軒 안향安珦(1243~1306)을 공자孔子·주자朱子와 함께 모시는 도통사道統祠가 있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65m, 좌표는 35°07'58"N 128°00'56"E를 가리킨다. 도통사道統祠는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고, 처음에는 대평면 하촌리 547-2번지에 있었는데 남강댐 공사로 인하여 1995년 이곳으로 옮겼다. 공자(孔子)를 주벽(主壁)으로 주자(朱子)를 배향하고 안자(安子)를 종향(從享)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공자탄신일인 8월 27일에 제향한다. 안향安珦은 1290년 왕과 왕비를 호종하고 원나라에 가서 주자서를 손수 베끼고 공자와 주장의 화상을 그려서 이듬해에 돌아와 연구하고 성인의..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수원백씨 벽양재 碧陽齋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347-1(대암로171번길 49)에는 수원백씨水原白氏 중시조 별좌공파別坐公派 옥계공계玉溪公系의 백창직白昌稷을 1세로 하여 그 후손들이 선조의 영령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재실齋室인 벽양재碧陽齋가 위치한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83m, 좌표는 35°12'52"N 128°42'38"E를 가리킨다. 창원의 역사를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창원의 누정樓亭을 찾아보게 됐는데 정작 내가 살았던 지역은 천지개벽을 하여 원주민들의 재실은 없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나마 창원 주택지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재실을 발견하였고 지금에서야 창원의 본래 주인들을 찾아본다. 지금 수원백씨 재실을 관리하는 백성웅 친구의 도움으로 벽양재를 둘러보게 돼 고맙게 생각한다. 능력이 부족하여 더 많은 정보와..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악양루 岳陽樓

악양루岳陽樓는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산 122에 위치하며 중국 후난성 웨양시의 동정호洞庭湖가 보이는 곳에 건설한 악양루岳陽樓의 경치와 비교하며 함안군 서촌리 남강南江과 함안천咸安川이 합수하는 곳의 함안천 절벽 위에 1857년 안효순安孝淳(1790~1846)이 지은 정자에 그의 손자 안정호安廷鎬(1884~1938)가 기문을 의뢰해 걸었다. 이후 6.25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1963년에 그 손자 안판수安判洙(1914년 9월 22일생)가 고쳐 지었고, 2003년 문화재청의 중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판수의 적명籍名은 안상수安祥洙이다. 1857년 악은처사안공岳隱處士安公이 창건했을 때 의두헌倚斗軒이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전해지고 지금은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峯(1908~1991)의 글씨인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이 정..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예천권씨 초간정 草澗亭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용문경천로 874)에 대구부사大丘副使, 승정원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를 역임하고 초간일기草澗日記 등 문집을 남긴 권문해權文海(1534~1591)가 49세 때인 1582년에 창건하고 도승지 박승임朴承任이 초간정사草澗精舍라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26년에 아들 죽소공竹所公이 초가집 몇 간으로 다시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붕괴 되었다. 그후 1739년 세 번째로 세운 것이 현재의 모습을 한 초간정이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174m, 좌표는 36°42'05"N 128°22'55"E를 가리킨다. 초간정草澗亭은 금곡천金谷川이 바위를 만나 휘돌아 가는 계곡의 상부에 위치하며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개천으로 바로 떨어지도록 설계를 했다. 초간정草澗亭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