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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가야인의 삶이 만든 창녕송현리고분군

천부인권 2017. 3. 17. 06:00



<2009.10.14. 창녕송현리고분군>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4번지에 위치한 昌寧松峴洞古墳群(창녕송현동고분군)은 경상남도 사적 제81호로 지정이 된 非火加耶(비화가야)의 무덤이다. 비화가야인들은 자신들이 죽은 후에도 살아있던 때의 지역을 보고 싶어 해 경관이 매우 뛰어난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영산고분군이나 교동고분군 및 이곳 송현리고분군 역시 다른 곳에서 보기도 쉽고 고분군에서 사방을 두루 볼 수 있는 경관을 갖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창녕군 일대의 고분들은 일제강점기 때 89호, 91호분이 발굴되어 엄청난 양의 유물이 반출되었고, 후대에는 도굴이 심했으며, 경작으로 인한 피해도 극심한 곳이었다. 비화가야의 고분군들은 지배층과 왕릉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2000년 2월부터 6월까지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현황파악을 위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였지만 파괴의 정도가 심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송현리고분군은 목마산 자락에 무리지어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으로 원래 80여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7기 정동의 봉토분이 확인 되고 있다. 일제의 정식 발굴보고서가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무덤형식, 부장유물 등에서 인접한 교동고분(사적 제80호)과 비슷할 것으로 추증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지름 20m 정도의 개형무덤(1~7호, 15호분)은 구릉의 높은 줄기를 따라 배치되었고, 소형무덤(8.9.11~14호분)은 높은 줄기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6호분과 7호분은 합쳐져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





송현리고분군 입구에는 보물 제75호인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이 위치해 있어 함께 볼 수 있는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하고 있는 변한 12국 중 하나로 전하는 ‘不斯國(불사국)’이 창녕을 거점으로 이룬 비화가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555년(진흥왕 16) 신라가 창녕 지역에 비사벌주를 설치하고, 561년에는 창녕진흥왕순수비를 세운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신라에 병합되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