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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강씨사효각 姜氏四孝閣 양세삼효비 兩世三孝碑

천부인권 2021. 9. 10. 19:05

2021.5.2. 삼가면 양전리 강씨사효각 양세삼효비 兩世三孝碑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281-2번지에는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파博士公派 삼효절三孝節을 기리는 강씨사효각姜氏四孝閣이 있다. 이곳을 고도계는 높이 99m, 위도 35°25'21"N 경도 128°08'07"E를 가리킨다.

 

2021.5.2. 삼가면 양전리 강씨사효각 양세삼효비 담장 앞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파博士公派는 1세 계용啓庸, 2세 급사공給事公 인문引文, 3세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 4세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창귀昌貴, 5세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6세 공목공恭穆公 시蓍, 7세 통계공通溪公 회중淮仲(1360~1421)의 후손으로 비碑에는 그를 강사운姜思運이라 적었다. 이곳에서 동쪽 방향으로 1.13km 떨어진 삼가면 동리에 있는 인산재麟山齋가 강씨사효각姜氏四孝閣 양세삼효비兩世三孝碑와 관련이 있는 재실이다. 

 

2021.5.2. 삼가면 양전리 강씨사효각
두개의 비가 있는 풍경


姜氏 四孝閣內 兩世三孝碑記
晋陽姜氏有三孝節 同敦寧諱義守 其妻貞夫人 八溪楊氏 其子副護軍諱達立也 敦寧字禮顯 號黙軒 自幼至性事親 必順志躬稼樵供 瀡滫父母甚安之 母嘗疾病 必處誠禱北斗欲 以身代左右 就養無方極殫 其力隣里感歎 咸曰孝子孝子楊氏亦至 誠事姑姑病割股和樂 而進之姑病 卽良己亦咸曰孝婦 孝婦及楊氏年老 遘瘧久不瘳 其自達立又割股 而進之遂得差亦咸曰 孝子孝子 字相喩 號芝隱 嗚呼稀矣 兩世三孝何其壯也 我聖上辛巳 俱蒙褒旌姜氏 卽晋陽著姓 上祖以式 以隋元帥留 吾東後世 有晋山府院君啓庸 監察御史師瞻 鳳山郡文敬公君寶 大提學通溪先生淮仲 其後世有士龍 壬燹倡義 保三嘉有獜坊坊人 號保長先生 生薦○除經歷 丙亂聞媾解 酌酒痛飮墜北崖而死至 今風節凜凜○贈吏議享忠孝祠 配羅州林氏 戒子勿忘乃 父遺訓至 三虞乃回 以三虞易 三年痛哭叱血而下從 卽敦寧之孝妣也 以○萬歷丁亥九月十一日卯時生 孝子敦寧于 宜寧茂洞里第云 歲壬午以三孝事行建碑于 三嘉治東五里 街上歲久○○ 後孫震馨基馨 方謀改竪要余撰次 其事行辭不獲因作 而曰嗚呼 人子人臣之盡 忠孝行事 親其義一也 而今倫綱墜地臣 而不知忠於其君子 而不知孝於其親矣 東西行 爲此煌煌 三孝之行 而其能有自勵 而與其者耶 其在不自勵 而興起者 則匪人也 銘曰○姜氏之先聯代 煊爀莫出匪 賢御史提學爰及 後世有曰 保長凜凜風節 百世稱彰 出是孝子曰 有黙軒至誠之養 可質神天 圭璋不僎 有此賢對 鄕黨嘖嘖 是夫是婦 又生孝子 良疇嘉穀 其理不變 兩世三孝何 其炳烺鳳城之東 丹閣然過者 尻高盖相勉
歲己未 春三月 上己
完山 崔正愚 謹撰
竹山 朴晩榮 謹書

강씨 사효각내 양세삼효비기
진양강씨 집안에 삼효절三孝節이 있으니 동돈령同敦寧¹⁾ 이름 의수義守와 그의 처 정부인貞夫人 팔계양씨八溪楊氏와 그 아들 부호군副護軍²⁾ 의 이름은 달립達立이다. 
돈령敦寧의 자는 예현禮顯이고 호는 묵헌黙軒인데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지극히 효성스러워 스스로 농사를 지어 편안히 공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열심히 돌보면서 북두칠성北斗七星에 자기가 대신 앓기를 빌면서 좌우를 떠나지 않고 끝도 없이 노력을 다하니 이웃 사람들이 과연 효자라고 감탄하였다.
그의 처 양씨도 역시 시어머니께 효성을 다하였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허벅지 살을 잘라 먹여서 낫게 하니, 역시 모두가 효부孝婦라 했다.
효부 양씨가 연로年老하여 학질에 걸려 오랫동안 낫지 않으니, 그 아들 달립達立이 또 본받아 허벅지 살을 잘라 먹여 낫게 했으니 사람들이 모두 효자라 했다.
효자의 자는 상유相喩요, 호는 지은芝隱이다.
아! 양세兩世에 삼효가 어찌 드물고 장한 일이 아니리요. 고종 신사辛巳(1881)년에 모두 정려旌閭의 포창을 받았다.
강씨姜氏는 진양의 이름난 성씨이니 시조 이식以式은 수隋나라 원수元帥로 우리나라에 머물렀는데 뒤로는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 계용啓庸, 감찰어사 사첨師瞻, 봉산군 문경공 군보君寶, 대제학 통계선생 회중淮仲이 그 후손이다. 
그 후손 사용士龍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삼가三嘉를 굳건히 지키니 사람들이 보장선생保長先生이라 했다. 벼슬에 천거되어 경력에 제수除授되었다. 
병자호란에서 굴욕적인 구화媾和³⁾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홧김에 술을 많이 마시고 북쪽 벼랑에 떨어져 죽으니 늠늠한 그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이조참의에 추증되고 충효사忠孝祠에 배향되었다. 부인 나주임씨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유훈을 잊지 말도록 가르치고는 삼우三虞⁴⁾에 이르러 삼우三虞를 지내고 3년만에 통곡하며 피를 토하고 남편을 따라 죽으니 즉 돈령공의 어머니시다.
선조宣祖 정해丁亥(1587) 9월 11일 묘시卯時(오전 5시~7시)에 의령 무동리茂洞里 집에서 효자 돈령공이 태어났다. 영조英祖 임오壬午(1762)에 삼효三孝의 효행비孝行碑를 삼가三嘉 동쪽 5리되는 길가에 세웠다. 
세월이 오래되어 훼손이 심해 후손 진형震馨 기형基馨이 의논하여 새로 세우기로 하고 나에게 비문碑文을 요구하나 그 사실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에 지어 이르니 인자人子와 인신人臣은 충효를 다하고 부모에게 효도 하는 것이 첫째라, 이제 윤강倫綱이 땅에 떨어져 신하는 충을 알지 못하고 군자는 효를 알지 못하니 그 부모가 방황하고 있는데 이렇게 빛나는 삼효의 행실은 우리가 함께 일으켜야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올바른 사람이 아니리니 명銘 하건대 강씨의 빛나는 선대先代에는 못된 사람이 나지 않고 어사御史 제학提學 등 현인들이 났고 후세에 보장선생保長先生은 늠늠한 풍절風節⁵⁾로 백세의 칭송을 받았다.
이어서 효자 묵헌黙軒도 지성至誠으로 부모를 섬겼으니 천성적으로 효도의 자질이 있어 가려내지 않아도 현인이라 마을 사람들마다 칭찬하면서 그 지아비에 그 아내요. 그 아버지 어머니가 또 효자를 낳으니, 좋은 밭에 좋은 곡식을 거두는 이치는 변치 않는다 하였으니, 양세 삼효가 어찌 우리나라에서도 빛나는 정려가 아니리요.
그러므로 지나가는 자 고개를 숙이고 서로 면려勉勵⁶⁾할 것이라.
기미년(1919) 봄 3월 상순上旬에
완산 최정우崔正愚 삼가 찬하고
죽산 박만영朴晩榮 삼가 씀

【주석】
동돈령同敦寧¹⁾ : 조선 시대, 돈령부에 속한 종2품 벼슬.
부호군副護軍²⁾ : 조선시대 오위五衛에 속해 있던 종4품의 무관직.
구화媾和³⁾ : 전쟁을 하던 두 나라가 전쟁을 끝내고 서로 화해함
삼우三虞⁴⁾ : 죽은 사람을 매장한 뒤에 지내는 세 번째 제사
풍절風節⁵⁾ : 거룩한 모습과 절개
면려勉勵⁶⁾ : 스스로 노력하거나 애씀

 

강씨사효각 편액
진양강씨야세삼효비
孝子贈司憲府監察晉陽姜公旌閭碑銘 幷序

孝子贈司憲府監察晉陽姜公旌閭碑銘 幷序 효자증사헌부감찰진양강공정려비명 병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