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귀·신촌유허비知歸·新村遺墟碑는 『지귀·신촌 옛터』라는 이름으로 의창구 봉곡동 5번지 효자공원의 한 모퉁이에 세웠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31m를 기록하고 위도 35°14'55"N 경도 128°39'19"E에 위치한다. 유허비의 양쪽에는 『김해김씨부자포효비金海金氏父子褒孝碑』와 『김차곤공金次坤公을 기리는 비碑』가 서 있다.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에 의하면
지귀동에 지이포只耳浦가 있었다. 지귀知歸는 지이只耳의 또 다른 표기이다. 『경상도읍지』에 지귀리라는 표기로 등장한다. 지귀리는 동지이포東只耳浦 서지이포西只耳浦로 나뉘어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신촌리新村里, 동지이포東只耳浦, 서지이포西只耳浦 일부가 합쳐져 지귀리가 되었다. 신촌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은 지금의 늘푸른마을 코오롱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에 있었다.
또한 지귀리知歸里에 대해서는 마을 지형이 쥐의 귀처럼 생겼다고 쥐귀라 하였다고 하며, 또한 옛날 도사가 마을 뒤산에 도장골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돌아갔다 하여 지귀라 하였다는 기록이 창원향교지에 전한다.
『지귀·신촌 옛터』의 전면 비좌에 오석烏石으로 비명을 기록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여 년 전 태복산太福山(太白山) 끝자락 구산 봉우리 앞으로는 염창과 오리바다와 대구바다인 문전옥답이 있으며 마을 정북과 서쪽 어귀에는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있었고 동네 한가운데에는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약수같은 공동우물이 있었고, 앞 냇가에는 조선시대 때 유목정楡木亭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었으며 오가는 길손들이 잠자거나 피로를 풀어주는 휴식처로 또는 조상님들께서 시조 한 자락 하시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나 구전에 의하면 홍수로 유실 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렇게 아늑하고 엄마 품 같은 인정 많고 인심 좋은 창원군 상남면 지귀·신촌리에 백 여 호(지귀 80호, 신촌 20호)가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는 동네가 있었으나 70년대 들어 산업개발의 바람이 불어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82년부터 정든 고향을 떠나 지금의 봉곡동과 명서동으로 이주하고 일부는 고향을 떠나기도 하였으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느냐. 이 자리에 서서 고향을 바라보니 구산마루는 그대로인데 우리가 뛰어놀던 정든 골목길과 인정 많던 주민들은 보이지 않으니 조상님들의 영혼은 여기 고향을 찾아 오실지.....
이에 뜻있는 추진위원들이 힘을 합하여 조상님들의 영혼과 부근을 떠도는 모든 영혼을 위로 하며 후일 고향을 찾는 이들에게 이 자리에 서서 고향의 향수를 조금이라도 달래고 조상님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다.
2010년 5월 30일
지귀(신촌)이 이주민 일동
지귀리의 옛 지명
*대구바다 : 지귀리 동쪽에 있는 들 이며 옛날에는 바다로 이곳에서 대구大口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현 봉곡로터리 부근 창원천)
*뒷골바우 : 지귀리 뒷산에 있는 바위이며, 옛날에는 오래된 여우가 살고 있었다 한다.
*염창鹽倉 : 지귀리 남쪽에 있는 들이며, 옛날에는 소금을 구웠다고 하며, 지금도 소금기가 많이 포함되어 가뭄 때는 희게 염기가 나타난다고 한다.(현 허앤리병원앞, 봉곡동 34-4번지 부근)
*유목정楡木亭 : 지귀리 남쪽에 있는 창원·상남 간의 갈림길로 옛날에는 큰 느릅나무가 있었고 네거리로 놀기 좋은 곳으로 지금은 율전천이 흐르고 있었다. 현 농협 구판장 자리이다.
*구룡산龜龍山 : 지귀 북쪽에 있는 산 봉우리(현 늘푸른코오롱아파트 뒷산)
*독뫼 : 지귀 동쪽에 있는 산(현 지귀·신촌 옛터 비갈이 있는 곳)
*삼바골 : 지귀 동쪽의 골짜기
*상보 : 지귀 동쪽의 보(현 지귀상가 앞 창원천)
*선바우 : 지귀 서북쪽에 있는 바위인데 벼락을 맞아 지금은 없다.
*오리밭 : 지귀 남쪽에 있는 들인데 바다오리가 많이 날아왔다.(현 경남은행 부지 일대)
*자래바우 : 지귀 북쪽에 있는 바위, 자라처럼 생겼다.
*정구릉 : 적은 구릉을 뜻하는데 지귀 동쪽에 있는 들(현 상북초등학교 앞)
*진가들 : 지귀 남쪽에 있는 들(현 봉곡동 주택지 일대)
*홍길골 : 지귀 동쪽에 옛날 홍정승이 살던 집터
*화정 : 지귀 남쪽에 있는 터인데 꽃과 같이 생겼다고 한다.(현 상북초등학교)
*도장골 : 지귀 뒤산으로 창고와 같이 생겼다.
*지정재知定齋 : 지귀 남쪽에 있는 재실(현 명서동 주택지)
*중보 : 오리밭 동쪽에 있는 보
출처 및 참고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삼원회/창원종합인쇄(2011.2)
창원향교지-창원향교/대보사(2004.11.1.)
'역사의 기록 > 비판.정려각.마애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성군 금산리 제말장군과 증손 제명철의 정려각 (2) | 2020.11.21 |
---|---|
진북 대티리 중촌마을 황래성 공덕비 (0) | 2020.10.13 |
봉림동 상촌마을 유허비 (0) | 2020.10.12 |
봉림동 퇴촌마을 옛터 비 (0) | 2020.10.10 |
봉림동의 대봉림유허비 (0) | 2020.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