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의 선비가 남긴 소산집(小山集)을 보다가 소산 김기호(小山 金琦浩 1822~1902)가 쓴 요천회운(樂川會韻)을 보게 되었다. 이 한편의 시에 우리지역의 잊혀진 역사가 남아 있기에 소개를 한다. 요천회(樂川會)는 지금의 요천시사(樂川詩社)로 이어졌는데 처음 요천회는 김녕김씨의 후손인 사파정동(沙巴丁洞) 김기호 선생을 중심으로 1859년 완암의 정재건(鄭在建), 안촌의 송병정(宋秉正), 덕정의 김진헌(金振憲), 모산의 김정호(金廷浩) 등과 이곳에서 요천유계(樂川儒契)를 맺고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계제사(契祭祀)를 지내고 시사를 열었다. 아래는 소산 선생이 읊은 요천회운(樂川會韻)의 원문과 해문을 옮겨 둔다. 樂川會韻 요천회(樂川會)¹⁾ 운 龍華菴下一長川 용화암(龍華菴)²⁾ 아래 긴 시내 흐르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