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자원봉사/봉사단과 마을 이야기

아토피 치료 초등학교가 있어 더 좋은 함양 금반마을

천부인권 2014. 4. 14. 16:57

 

 

<2014/4/13 휴천면 금반마을>

 

4월 둘째주 일요일은 마창기술봉사단이 봉사활동을 가는 날이다. 이번에 갈 곳은 함양군 휴천면 금바실로 불리는 금반(金盤)마을이다. 1001호 지방도를 따라 휴천면 사무소를 지나 약 1km를 가면 금반초등학교가 우측에 보이고, 길 우측 가장자리에 6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리한 곳이 석정(石亭)마을 회관이면서 석정노인당이다. 금반(金盤)마을은 옛날 휴지면에 속했던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휴천면에 편입되었다. 금반마을은 석정동(石井洞), 양지새터(陽村), 음지새터(陰村)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앙은 너른 들판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곳이 석정(石亭)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마을입구 축대위에 큰 바위가 모여 있고 그곳에 5백년이나 살아온 느티나무가 그늘을 이루고 있어, 돌과 느티나무가 자연적으로 정자구실을 하게 되니 이곳 바위에 석정(石亭)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지금은 이 느티나무의 원 줄기는 90% 죽었고, 옆에 가지가 붙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 나무 아래쪽에 큰 혹이 2개 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치성을 드리면 영험이 있다하여 신성시 해오고 있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는 휴천로가 지나고 그 앞쪽에는 서주천이 흐르고, 그 앞에는 꽤 너른 경작지가 있어 금반마을이 배산임수를 갖춘 길지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옛 풍수가들이 마을은 금소반처럼 생겼고 하동정씨 선조의 묘소가 있는 곳은 옥으로 빚어 만든 술잔 같아서 어찌 여기에 여인과 춤과 노래가 없을손가 하였다. 벼리안에 뻗친 산줄기는 여인이 춤추는 형상이라 한다, 마을 건너 영변의 험준한 산기슭은 협소하다 못해 병안과 같아서 골짜기의 이름을 병목안이라 했으니 여인이 병목을 잡고 금반옥분에다 술을 따르며 권주가로 가무하는 춤추는 형국이라 하여 금반이라 부른다.[출처 : 휴천면사무소]

 

 

 

 

 

옛 정취와 새마을운동이 함께 나타나는 우리나라 시골 풍경이다. 돌담길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정작 내것은 나쁜 것이고 왜놈것은 좋은 것이라고 나라를 팔아 먹은 역적들이 가르친 교육의 결과 물이다.

 

 

 

 

죽산박공호후세거 단기 4315년 임술구월(竹山朴公晧后世居 檀紀 4315壬戌九月)이라 세긴 경사지에 심은 죽산박씨의 세거지 임을 표시한 빗돌이 이색적이다.

 

 

 

<살림집>

 

금반초등학교는 아토피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꿈의 학교인데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아토피로 고생하는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생활하면 아토피가 저절로 낳게 되어 전국에서 학생들이 이곳 금반초등학교를 찾아온다.

 

 

 

<금반초등학교 풍경>

 

처음 마을에 도착해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니 생뚱맞게 2층 다세대 주택이 있어 이런 시골에 왜 저런 주택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을 따라온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사는 집이라 한다. 이날 경기도 이천에서 주말이면 찾아온다는 아버지를 만났는데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이 학교를 선택했고 아이는 이곳에 와서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시골이라 노인들 밖에 없는데 이처럼 외부에서 아이들이 와서 마을이 활기차다고 말하며 아토피에 고생하는 아이들이 전학을 오면 병도 낳고 시골의 정취와 낭만도 배울 것이란 전한다.

 

 

 

 

금반 석정마을에서 양촌은 붙어 있는듯하지만 약간 올라가야 양지새터(陽村)이되고, 이곳에도 마을회관이 있었지만 비워 있는 듯했다.

 

 

 

 

시골풍경이 집 앞 논에 반영이 되어 사진으로 남겨 봤다.

 

 

 

 

<금반교와 음지마을 풍경>

 

 

 

 

금반교를 지나 농로를 따라가면 음지새터(陰村)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는 멋진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그 옆으로 옛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수령이 300년이고, 높이는 19m, 나무둘레는 5.5m2004년도에 보호수로 지정을 한 이 느티나무에 많은 새들이 앉아 요란스럽게 지저기고 있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반마을은 너른 들판이 있어 예부터 굶주림 없이 살았을 것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