挽郭昌原 弘址 창원부사 곽홍지 만시
舊識凋零盡 옛날 알던 사람이 다 떨어져 없어지더니
今君又九京 이제 그대가 또 저승으로 갔다하네
半年供末宦 반년 동안 마지막의 관직을 이바지하여
數字入銘旌 두어 글자 명정에 썼네.
得失塵中幻 얻고 잃은 것은 티끌 속의 환상이요
悲觀夢裏驚 슬픔과 괴로움은 꿈속의 놀라움일세.
眼前雙玉樹 눈앞의 두 아들은 재능이 뛰어나
猶喜 績家聲 오히려 집안 명성을 계승함이 기쁘네.
鷗洲 姜大適
*구주 강대적(1594~1678)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에 합천에서 태어나 광해군과 인조반정이 일어나는 격정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경상우도에서는 남명학파가 정치적 절멸을 당하는 시기였다. 또한 나의 14대조이기도 하다.
*창원군지(국제신보출판사 1962 김종하)에는 『郭弘址 文 居高靈 甲午十一月 赴任 乙未十月 因灾傷 見罷-곽홍지 문인 고령거주 1654년 11월 부임, 신변에 재앙이 와서 그만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곽홍지(1600~1656)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현풍, 자는 자구(子久)이다. 경북 고령 출신으로 전라도사, 예조정랑 등을 역임 했으며 현감·부사 등의 재임 시 선정을 베풀었다. 문장과 시에 능했으며 의약·복서·산수 등 많은 분야에 뛰어났다.
*명정(銘旌)다홍 바탕에 흰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름 등을 적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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