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책과 기록

웅천에 왔던 강맹경이 읊은 시

천부인권 2018. 10. 5. 09:38


萬里風濤薺浦邊-姜孟卿   만리풍도제포변-강맹경(姜孟卿)¹⁾
五更鼓角熊城上             오경(五更) 북소리는 웅성(熊城) 위이고,
萬里風濤薺浦邊             만리 풍도(風濤)²⁾는 제포 가로다.
欲識如今王化重             지금의 왕화(王化)³⁾를 알고자 하여,
數聲漁笛倚樓舩            두어 곡조 고기잡이 피리 소리 들으며 뱃머리에 기대었네.


강맹경(姜孟卿)¹⁾ :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章). 문하찬성사 강시(姜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북면순무사(東北面巡撫使) 강회백(姜淮伯)이고, 아버지는 지창녕현사(知昌寧縣事) 강우덕(姜友德)이며, 어머니는 지보주사(知甫州事) 이혜(李惠)의 딸 재령이씨(載寧李氏)이다.
1410년(태종 10) 태어나 1429년(세종 1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의 벼슬을 두루 거치고 1448년 지승정원사, 1452년(문종 2)에 도승지를 지냈다. 1453년(단종 1) 이조참판으로 있으면서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을 도와 공을 세우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좌익공신 2등에 뽑혀 진산부원군에 봉작되었다. 이후 좌참찬을 거쳐 1457년(세조 3) 우의정으로 있으면서 등극사(登極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계속하여 좌의정을 거쳐 1459년에 영의정이 되었다가 1461년 별세하였다. 평소 성품이 침착하고 너그러우며, 강직·근엄하여 대신의 기품이 있었고, 타고난 바탕이 체격이 크고 훌륭하였으며 의례와 법도에 밝았다.
현재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산 301에 있다. 묘역은 크게 봉분·묘비·상석이 있는 부분과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있는 돌로 만든 등)·문인석이 있는 부분으로 구분된다. 오른쪽 무인석 뒤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신숙주가 글을 짓고 강희안이 글씨를 써서 1462년(세조 8)에 세운 것이다.


만리풍도(萬里風濤)²⁾ : 굉장히 넓고 큰 바람과 물결


왕화(王化)³⁾ : 임금의 덕행으로 교화시킴.


출처 및 참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2권-경상도(慶尙道)/웅천현(熊川縣)
교남지권지73(嶠南誌卷之七十三)-웅천군(熊川郡)
웅천현읍지-진해문화원(1993.12.30.)/황정덕
디지털진주문화대전-강맹경-이수덕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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