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봉림동 퇴촌마을 옛터 비

천부인권 2020. 10. 10. 06:41

202.10.9. 봉림동 퇴촌유허비


퇴촌유허비退村遺墟碑 즉 『退村마을 옛터 碑』가 건설된 곳은 의창구 사림동 501-26번지 사림민원센터 한 모퉁이에 있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9m를 기록하고 위도 35°14'31"N 경도 128°40'55"E에 위치한다. 

『창원 삼원지역의 지명과 옛 모습』에 의하면
퇴촌리退村里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퇴촌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촌리上村里 상림리上林里 전부와 대봉림大鳳林 일부를 병합하였다. 퇴촌동退村洞은 1983년부터 사림동士林洞이라는 명칭의 법정동으로 바뀌었는데 창원대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퇴촌退村’이란 명칭이 퇴임한 재상이 물러나 사는 곳이란 의미가 있으므로 士(선비 사)+林(숲풀 림), 즉 선비가 숲처럼 많이 탄생하라는 의미로 바꾼 것이다. 
어떤 학자는 ‘퇴退’는 중심을 뜻하는 ‘므르’를 표기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인용한 또 다른 학자는 퇴촌리는 용동과 마찬가지로 중심이 되는 마을을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 또 『창원의 지명유래』를 소개하며 먼 옛날 나라의 재상이 늙어 이곳에 와서 살았으므로 퇴로촌退老村 또는 퇴촌으로 불렀다고 기록했다. 

 


퇴촌마을 옛터 비
여기는 아득한 옛적부터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안주하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뒤로는 정병산(전단산) 동에는 불모산과 장복산 서북간에는 봉림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분지의 상단에 위치하므로 정병산성에서 발원한 퇴촌계곡과 용추천수가 합류하니 옥야의 젖줄이 되고 다시 유목천에 이르러 봉암을 통해 합포만으로 시원하게 흘러간다.
이곳에 우리 선조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하니 명승락지 였다. 이곳 터전을 마련한 년대는 문헌에 미비하나 조선조 중엽인 임난 전후부터 퇴촌리(고명 退老村)로 명명하여 백 여호가 오순도순 생존한 곳이다. 그 촌락 분포를 보면 본동에 우깍담 아래깍담 새깍담을 이루고 위쪽에는 상림 상촌마을로 구성되니 산수 수려하여 조상대대로 땀의 체취와 발자취가 서린 곳이니 지금도 양질의 지하수가 사격장 밑에 공동식수장을 만들어 주민들이 길어다 먹고 있다.
본 동민들은 국가발전의 계획에 협조하여 누대로 정을 들여 살던 옛터를 떠나 새로 조성된 택지로 이주하고 일부는 생업을 위해 본의 아니게 산설고 물선 타지로 이주하니 많은 실락민이 생겨났다. 이제 퇴촌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걷우고 사림동으로 개명되었다. 이에 우리는 퇴촌리의 유래를 길이길이 후대에 전함과 아울러 고장의 발전과 운주민 후손들의 무궁한 행복을 천지신명과 조상의 신정에 축원하면서 이제는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퇴촌인의 열망과 창원시의 협조로 여기에 비를 세우고 이를 길이 새기고져 한다.


2006년 12월 5일
퇴촌 이주민 향우회 일동

 


□ 퇴촌리退村里 지명
가락국시대 재상宰相이 늙어서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는 설이 있어 퇴로촌退老村의 약칭으로 퇴촌(디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상촌리 상림리 전부와 대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퇴촌리라 하였다. 
일설에는 가락국의 10대왕인 구형왕仇衡王 즉 양왕讓王이 낙동강변 이궁대에서 법흥왕에게 항복하고 난 후, 가락국의 세력 중 항복하지 않고 가락국의 재건을 꿈꾸던 사람들이 퇴로촌에 이사를 와서 병사를 훈련하며 재건을 원했으나 결국 꿈을 이루지는 못하고 신라에 병합 됐다고 전한다. 그 퇴로촌이 퇴촌이 됐다는 설이다. 
오래된 성씨는 순흥안씨, 단양우씨, 김해김씨 등이 있다.
*건넌들 : 퇴촌 근처에 있는 들(현 사림민원센터 앞 다리 왼편 주택지)
*구시들 : 퇴촌 남쪽에 있는 골짜기
*밤정이 : 퇴촌 서쪽에 있는 약수 , 전에 밤나무가 있었다.
*밭등 : 퇴촌 북쪽에 있는 들
*새미치 : 퇴촌 서쪽에 있는 들
*소목곡 : 우항령牛項嶺 퇴촌에서 동읍 덕산리로 넘어가는 고개(현 사격장에서 동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소자문 : 퇴촌 동쪽에 있는 효자비문(창원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기숙사 방향으로 가는 언덕)
*송솟바우 : 상촌 동쪽에 있는 바위 송솟처럼 생겼다(퇴촌 산 73)
*절골 : 퇴촌에서 동읍 우곡사로 가는 고개(봉림사지 절터에서 동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정자나무 : 퇴촌 서쪽에 있는 고목나무 둘레 3아름
*탕건바우 : 상촌 동쪽에 있는 바위 탕건처럼 생겼다.
*해상골못 : 밭등 북쪽에 있는 못(현 창원대학)
*상림 : 퇴촌 동쪽에 있는 마을
*상촌(웃안골) : 상촌의 본래 이름이 웃안골이다. 제일 위쪽에 있는 마을
*퇴산재 : 퇴촌 가운데 있는 재실(현 창원의 집 옆)

 

봉림산 자락의 순흥안씨 부호군공 묘산도

이 묘도를 보면 정병산과 봉림산은 별개의 산으로 봉림사지, 적암등, 소봉림, 대봉림, 퇴촌후곡, 퇴촌, 상림 등의 지명과 퇴산서당, 서쪽으로 창원읍, 남쪽으로 진해로 향하는 신작로의 방향을 나타내고 3그루의 노거수를 표현하고 있다. 이 묘도 속에는 현재의 봉림사가 기록 되지 않은 것으로 보면 봉림사는 근래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