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민족의 숨결 간직한 정병산 기슭의 창원 봉산리 돌제단

천부인권 2021. 4. 19. 07:26

2021.4.18. 정병산 기슭의 봉산리 돌제단

창원의 해안이나 강가에는 신목神木과 신당神堂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해안을 벗어나 산악지역으로 가면 돌제단石祭壇이 목신木神과 함께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창원시 동읍 봉산리 산 46에 위치한 돌제단은 해발 100m 높이에 위도 35°16'25"N 경도 128°41'53"E에 있다.

돌제단을 2010년 찾았을 때, 마을 전체에서 한 분만이 돌제단의 위치와 제단의 역할을 설명하신 분을 만났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도 못하고 고인돌로 알고 있으니 우리 민족의 혼이 깃든 전통 신앙은 잊혀진 존재가 됐다. 

봉산리 돌제단은 자여역自如驛을 책임지던 문관 종육품인 찰방察訪이 제관이 되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산신에게 빌던 국가의 행사가 이루어지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이를 아는 이가 없다.

봉산리 돌제단은 신목 앞에 설치하여 신목에 제례를 지내던 곳이지만 신목이 사라지고 나자 마을 앞에 회화나무를 심어 신목을 대신하게 되었고 이후 돌제단은 마을에서 관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곳이 명당임을 감지한 사람들에 의해 지금은 무덤이 생기게 됐다. 

제단이 위치한 방향은 정확하게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형태는 뒷면에 길이 2m, 높이 110cm, 폭 23cm의 넓고 평편한 판석을 남북방향으로 세우고 좌측에 역시 길이 2m, 높이 95cm, 폭 10cm의 판석을 세웠다. 우측은 좌측과 달리 산석을 3매정도 이용하여 쌓은 후 상석을 올렸다.
상석은 길이 240cm, 폭 110cm, 두께 15cm의 평평한 돌로서 긴 장타원형이다. 앞부분 우측에는 높이 150cm의 방형 기둥을 세웠으며 좌측에는 비석모양의 판석을 세워 앞을 막았다. 상석 밑에 형성되어 있는 방의 크기는 1.65×1m이며 장방형이다.

 

2021.4.18. 창원 봉산리 돌제단

1967년 문교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전국부락¹⁾제당조사질문지(全國部落祭堂調査質問紙)』의 내용에는 동면 신방국민²⁾학교(新方國民學校)에서 근무한 김해철(金海哲, 당시 38세)씨가 조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제당祭堂의 이름은 배랑당이고, 마을 남쪽 정병산 록에 자리하며, 집의 형태는 돌로써 Ⅱ형으로 되어있다. 옛날에는 회화나무 신목이 있었으나 30여년 전에 없어졌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이며, 제주祭主의 선출은 동장과 마을 유지有志가 연석회의를 거쳐 선발한다. 제례의 날짜가 잡히면 제주는 아침저녁으로 목욕하고 외부와는 접근을 피하며 근신하고, 외출하지 않는다. 제의 순서로 단산제, 벅수제, 배선제, 고목제를 지내며 배선터에서 배선놀이를 하고 재물을 나누어 먹는다. 제례일은 음력 정월 중 어느 날을 택일하고 밤 12시경에 시작하며, 상차림은 술酒, 흰떡白餠, 흰밥白飯, 조기魚煮, 소고기牛肉, 과일果實, 산나물山菜이다.
비용은 각 집에서 균등하게 갹출하고 제주의 정신이 부족하면 화禍가 있어 특별한 관심과 절도로 제사 지내며 식기는 모두 신품으로 마련한다. 굿터 샘에서 목욕하고 제물을 마련 후 돌제단까지 운반해 제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