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퇴촌마을 풍영대기

천부인권 2022. 3. 4. 11:02

風咏臺記

昌之鎭山曰天柱其一枝蜿蟺起伏東走二十里爲旃檀其狀岩岩仰可以捫星斗 俯可以挹湖海山之南有庄曰退村地平衍野開豁勢寬而氣聚安氏居焉世有偉 人碩德吾友士允克趾先烈不以貧苦而自沮杜門養性務樸素厭紛華嗜泉石如 圖書之耽玩乃就所居數弓許而得東岡之陡而奧者曰壁谷幽而邃窈而廓兩面 皆蒼壁壁間有水㶁㶁而出匯而爲泓瀅澈如鑑開折而爲瀑奔放如雷轟奇岩異 石錯列左右松蘿躑躅蔭映上下窅然若與人世不相聞眞靈區也士允甚愛之刻
風咏臺三字於壁面每春秋風和景明携冠童杖枯藜逍遙於壁之顚或講質經史或 談討古今或命韻言志卽事寓興心廣神怡悠然有沂雩之趣私累淨盡義理昭融 以全吾本然之天而樂其眞樂也苟然矣則是谷也於治心養氣之助豈敢曰淺淺 乎哉士允曾有所軆認而自得焉必不以余之言爲耄而不加勉也余亦癖於山水 心竊欣慕而爲之記
商山 金相頊 記

풍영대기 해문-이현호

  창원의 진산은 천주산이라 부른다. 천주산의 한 가지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다가 동쪽으로 20리를 달려서 전단산(정병산, 봉림산)이 된다. 그 모습이 우뚝우뚝하여 올려다보면 북두칠성을 어루만질 수 있고, 내려다보면 호수나 바닷물을 떠 마실 수 있다. 산의 남쪽에 전장(田莊)이 있어서 퇴촌이라 부르는데, 땅이 평평하고 넓으며 들은 탁 트여 있고 지세가 광활하고 기운이 모여 있어, 안씨가 이곳에 살고 있다. 
  대대로 큰 인물과 큰 덕을 지닌 사람들이 났다. 우리 벗 사윤(士允) 극지(克趾)의 선조는 가난한 고통을 스스로 막지 않고 문을 닫고 성품을 기르며 학업에 힘썼다. 평소 번화함을 싫어하고 자연을 즐기면서 책을 탐독하였다. 바로 거처하는 곳에서 몇 걸음쯤 나아가면 동쪽언덕의 험하고 깊은 곳을 만나는데 벽곡(壁谷)이라 하였다. 그윽하면서도 깊고 고요하면서도 탁 트인 양면이 모두 푸른벽(蒼壁)이었다. 푸른 벽 사이에 물이 있어, 콸콸 솟아나오고, 물이 돌아나가 깊어지고 맑기가 거울 같고 터져 나와서 폭포가 되고 분방하여 우레가 치는 듯하다. 기암괴석이 좌우에 뒤섞여 늘어서 있고 송라와 철쭉이 상하로 그늘지니 세상과 더불어 서로 들어보지 못한 참되고 신령한 구역이다.
  사윤이 이것을 몹시나 사랑해서 풍영대 세 글자를 벽면에 새기고 매번 봄가을에 바람이 온화하고 경치가 청명할 때에 어른 아이 이끌고 지팡이 집고 벽의 꼭대기를 소요하거나 혹은 경사를 익히고 묻거나 혹은 고금을 담론하거나 혹은 명운을 써서 뜻을 말하고 사물에 나아가 흥취를 붙이니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편안해져 넉넉하게 기우(沂雩)의 정취가 있다. 사루(사심)가 깨끗이 사라지고 의리가 밝게 융화되어서 내 본연의 천을 온전히 하고 그 참된 즐거움을 즐긴다. 진실로 그렇다면 이것은 계곡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기를 기르는 도움에 어찌 감히 얕고 얕다고 말하겠는가!
  사윤이 일찍이 체인하고 자득한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반드시 나의 말을 노망난 것이라 여겨 더욱 힘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산수에 빠져 마음으로 적이 기뻐하고 사모하여 이것을 기록하는 바이다. 
상산 김상욱(金相頊)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