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책과 기록

菊史遺稿 국사유고

천부인권 2023. 2. 26. 12:42

국사유고 표지

국사유고는 창원구씨 구종길仇宗吉(1363-1436)의 글을 모아 후손 구영주具永珠가 1996년에 유고遺稿로 만든 책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190cm, 세로 264cm이며, 화재華齎 이우섭李雨燮이 서문序文을 썼고 책의 말미에는 제정도諸廷燾(1931~2012)의 발문跋文이 있다. 이 책은 한문을 번역하여 국한문 혼용의 해석을 함께 달아두었다.
창원구씨는 정조(正祖)가 무과에 급제한 구시창(仇始昌)이라는 인물의 성을 구(具)로 바꾼 적이 있었는데, 1798년(정조 22)에 병조판서 이시수(李時秀)의 건의로 창원 구(仇)씨의 한자 표기가 모두 구(具)로 바뀌었다. 

국사유고菊史遺稿는 1996년 그 후손 구영주가 발행 했고 인쇄는 문진인쇄소이며, 2023년 1월에 마산헌책서점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국사유고 서


국사유고 서문
시와 문장이란 것은 성정性情을 나타냄이요 그 품격이 성조聲調와 풍채운치가 반드시 그 사람에 닮은 고로 시와 문장을 보고 그 사람을 가히 알 수 있는 것이요. 또 귀한 시와 문장이란 것은 간략하면서 바르고 넉넉함이요 뜨고 비고 화려하고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사람을 보는 데는 역시 이러한 것에 말미암음이니라. -후략-

 

국사유고 목록
국사유고 목록
국사유고 목록

천곡 선조의 행적을 압축해 기록함
선생의 이름은 종길宗吉이고 자字는 자안子安 호는 천곡川谷, 성姓은 구씨仇氏로 창원 사람이다. 윗 조상의 이름은 성길成吉로 고려 혜종 때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러 서경西京에서 큰 공을 세워 의창군義昌君에 봉했다. 의창군義昌君의 아들 희喜도 또한 찬성사贊成事이다. 아버지는 설雪이고 생원이며 어머니는 강진康津 김씨金氏 을용乙龍의 딸이다. 공민왕 1363(癸卯年)년에 선생이 창원부 북면 내곡리에서 태어 났다. 

천품이 온화하고 어질며 어버이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여 성경誠敬을 다했다. 어려서 부친상을 당하여 죽 먹고 빈소를 지켜 아침 저녁 성묘를 바람과 비가 와도 폐한 일이 없고 3년을 하루같이 지냈다. 성품이 학문을 좋아하여 지조가 맑고 삼가하여 여러번 고을에서 벼슬에 추천해도 취직하지 않으시고 지내다가 만년에 부모 봉양을 위하여 벼슬길에 나섰다. 우리 세종대왕 때 1422(壬寅)년에 정시庭試에 합격하여 

 

 

직제학直提學에 이르고 왕으로부터 총애가 두터웠다. 왕을 모시고 강론할 때 일기가 차가웠다. 왕은 특히 향주香酒 한 병과 주역周易 한 질을 하사하였으며 말미를 받아 고향에 갈 때 또 명주明珠 한 알을 주시어 표신表信으로 하였다. 중사中使¹⁾ 승전관承傳官이 강 가운데 빠뜨렸다. 다음 날 아침에 잉어 배에서 나와 간수하였다가 서울에 돌아와서 왕에게 바치니 왕이 크게 놀라며 괴이하게 여긴 사실은 영남도지嶺南道誌에 실려 있다. 돌아가신 해는 상고할 수 없다. 묘는 창원군 동면 신풍상新豊上 구천등龜川嶝 유좌酉坐이다. 배위配位는 숙부인 성주이씨 념恬의 딸이다. 합장을 했고 아들이 셋인데 복한復漢은 충청도사忠淸都事 강계부사 나주병마절도사를 지냈고 동벽東薜은 진사進士요 동직東直은 문과에 합격하여 승지承旨이다. 도사공복한都事公復漢은 4남을 두었는데 석종碩從은 훈도訓導요 이종理從은 진사進士요 순종順從은 진사進士요 말종末從이다. 딸은 황자화黃自華에 출가했다. 진사공進士公의 아들은 상종尙從이요 승지공承旨公의 아들은 상도尙道로 참봉參奉이다. 말종末從의 3세손 자평自平은 단종 때 갑술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장령掌令의 벼슬에 올랐고 동직東直의 7대손인 연설延說도 선조조宣祖朝에 문과에 합격하여 교리校理를 지냈다. 응진應辰은 석종碩從의

【주석】
중사中使¹⁾ : 궁중에서 왕명을 전하던 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