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생태 공부를 하면서 중산리에 위치한 경상남도환경교육원에서 1박을 하고 아침일찍 법계사 산행을 결정했다. 14년전의 일이었고 지금은 망설여지는 산행이다.




법계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873, 지리산 천왕봉 동남쪽 아래에 있는, 신라시대 544년(진흥왕 5)에 조사(祖師) 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그러나 승려 연기가 창건하였다는 역사적 근거는 거의 없다.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대 이후 새로 법당을 조성하였다. 조선시대 유학자의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유람자가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 머무르는 숙박 장소로 이용되었다. 법계사 법당 왼쪽에는 보물로 지정된 산청 법계사 삼층석탑(山淸 法界寺 三層石塔)이 있다.
해발 1,450m고지에 위치하며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915m)과도 인접해있으며, 천왕봉 등반 최단코스인 중산리 코스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의 쉼터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1405년에 선사 정심(正心)이 중창한 뒤 수도처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절 뒤에는 암봉(巖峰)과 문창대(文昌臺)가 있다.
이 절은 일본과 미묘한 관계가 있는 절로, 예로부터 '법계사가 일어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면 법계사가 망한다.'라고 하여 여러 차례 왜적이 침범하였다. 고려 때 왜적 아지발도(阿只拔屠)가 이 절에 불을 지르고 운봉전쟁에서 이성계의 활에 맞아 죽은 일화는 심심찮게 이야기되고 있다.



萬代輪王三界主(만대윤왕삼계주) 만대의 법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께서
雙林示滅幾千秋(쌍림시멸기천추) 쌍림서 열반을 보이신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든가
眞身舍利今猶在(진신사리금유재) 부처님 진신사리를 지금 여기 모셨나니
普使群生禮不休(보사군생예불휴) 수많은 중생들 끊임없이 예배하리.


願共法界諸衆生(원공법계제중생) 원컨대 법계의 모든 중생들
同入彌陀大願海(동입미타대원해) 모두 아미타불의 대원 속에서
盡未來際度衆生(진미래제도중생) 미래가 다하도록 중생제도하고
自他一時成佛道(자타일시성불도) 자타가 일시에 불도 이루어지이다





智異山法界寺緣起事蹟碑
法界寺方丈山之中央名刹也 溯其緣起 新羅眞興王午年甲子烟起祖師始刱此寺距今一千三百九十五年也 其後朝鮮太宗大王五年乙酉碧溪禪師重刱焉 近爲灰燼所毁 今戊寅春淸信女史申德順氏 發大願投臣款開拓舊址 建法堂及大室僚舍凡三刱也 盖烟起祖師先創華嚴寺次刱此寺 又刱大源寺而皆建舍利塔所謂智異山三塔是也 此寺之有舍利塔誠無雙聖跡 而千有年間毁廢修理難 以枚擧噫申氏慨塔之久 廢盡誠建寺 以守之可謂篤信善德者也 自新羅時諸祖師莫不於此 修道儒家大賢崔文昌常遊於此 故寺前有文昌臺 金濯纓先生亦留遊賞之跡本寺之形勝可知矣
義方山人月汀李炳昊書
世尊二千九百六十六年己卯 月 日
雙磎寺沙門金雲城善紋謹述
華嚴寺陳震應考閱
雙磎寺立
지리산 법계사 연기사적비
법계사(法界寺)는 방장산(方丈山, 지리산) 중앙에 위치한 이름난 사찰이다.
그 연기(緣起)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 진흥왕 5년(갑자년, 서기 544년)에 연기조사(烟起祖師)께서 처음으로 이 절을 창건하셨으니, 지금으로부터 1,395년 전의 일이다. 그 후 조선 태종 5년(을유년, 1405년)에 벽계선사(碧溪禪師)가 중창하였으나, 근래에 화재로 소실되어 잿더미가 되었다.
지금 무인년(1938년) 봄에 청신녀(淸信女, 여성 불자) 신덕순(申德順) 씨가 큰 원력을 세우고 정성을 다해 옛 터를 개척하여, 법당과 큰 방, 요사채를 세웠으니 이것이 세 번째 창건(삼창)이다.
대저 연기조사께서는 먼저 화엄사(華嚴寺)를 세우시고, 다음에 이 절(법계사)을 세우셨으며, 또 대원사(大源寺)를 창건하셨는데 모두 사리탑을 세웠으니, 이른바 '지리산 삼탑(智異山 三塔)'이 이것이다. 이 절에 사리탑이 있음은 진실로 둘도 없는 성스러운 흔적이나, 천 년의 세월 동안 헐리고 고친 일을 어찌 다 열거할 수 있겠는가.
아! 신씨(申氏)가 탑이 오랫동안 황폐해진 것을 슬퍼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절을 세워 이를 지키니, 가히 신심이 두텁고 선행을 베푸는 덕 높은 분이라 할 만하다.
신라 시대부터 여러 조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지 않은 분이 없으며, 유가의 대현인 최문창(崔文昌, 최치원) 선생도 일찍이 이곳에서 노닐었기에 절 앞에 문창대(文昌臺)가 있다. 또한 김탁영(金濯纓, 김일손) 선생 역시 이곳에 머물며 경치를 감상한 흔적을 남겼으니, 본 사찰의 뛰어난 경치를 가히 알 수 있다.
의방산인(義方山인) 월정(月汀) 이병호(李炳昊) 씀
세존 응화 2,966년(단기 4272년, 1939년) 기묘년 월 일
쌍계사 사문 김운성(金雲城) 삼가 지음
화엄사 진진응(陳震應)이 교열하다.
쌍계사(雙磎寺) 세움










출처와 참고
나무위키-법계사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덜-법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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