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책과 기록

서산유집(曙山遺集)

천부인권 2026. 2. 4. 06:45

 

서산유집(曙山遺集)은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엮었고, 노루지 겹장에 순 한문으로 된 기록으로 2(·)이 완질인데 2026년 22일에 부산의 헌책방에서 건()권만 만원에 구입했다.

() 책의 크기는 가로 19.2cm, 세로 28.5cm이며, 70쪽이다.

 

서산유집(曙山遺集)은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 효자이며, 유학자인 허식(許湜;1879~1959)의 유집으로 자는 정현(廷賢)이고, 호는 서산(曙山)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초계(草溪) 신림리(新林里)에서 출생했다.

증조부는 허기(許杞), 조부는 허장(許璋)이고, 부친 석은(石隱) 허호(許鎬)와 모친 광주노씨(光州盧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조부는 노응균(盧應均)이다. 부인은 정진민(鄭鎭玟)의 딸 초계정씨(草溪鄭氏)이다.

7세에 집에서 효경을 읽었고, 10세에 만졸(萬拙) 노응희(盧應禧)의 문하에서 논어(論語)』‧『중용(中庸)을 읽었다. 또한 그의 효행은 농산(農山) 장승택(張升澤)이 지은 효자전(孝子傳)에 실려 있다.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이 없어 종제(從弟) 허윤욱(許潤旭)2남 허백회(許伯會)로 후사를 이었으며, 딸은 문화(文化) 유진호(柳鎭浩)에게 출가시켰다.

그의 저서 서산유고(曙山遺稿)에는 강상필(姜相弼)의 서문과 유진호(柳鎭浩)의 발문이 붙어 있으며, 그중 주목할 작품으로 지리산부(智異山賦)가 있다. 특히 총석정(叢石亭)부터 개골산(皆骨山)까지를 총 24수로 읊은 유금강산제영(遊金剛山諸詠)과 단발령(斷髮嶺)부터 동해비(東海碑)까지 총 136수로 읊은 제이내금강(第二內金剛)은 시의 소제목을 따라 금강산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 금강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읊은 작품이다. 부록(附錄)으로 가장(家狀)과 묘갈명(墓碣銘) 등이 실려 있다.

 

 

曙山遺集序

陽許氏爲東方之大族 而近世八溪之鄕 以文學行誼 見推於人者盖有一焉 曰曙山處士少有才學而尤篤 於孝行日必漁樵 而備養親之志 體餘力則受學于 萬拙盧翁之門 讀孝經論語中庸 而至於事親之訓 特加再三誦讀 而體認之及幷有裘 而體哀兩致拙翁弔慰 曰昔尊王考 以孝名世今君 又善繼而無忝詩 所謂孝子錫類者非耶 及其制闋乃從 當時儒學長老如張農山李南旅盧竹塢張晦堂 諸公先生求古人之學 拜稟書質殆無虛歲 其見於簡牘者 多懇至之語 而至於刮磨 以文砥礪以行則尤在於盧敬山秀亨 柳溪隱萬基申菊齋鉐基 安聼溪求璞 諸公之道義交于 以見其實事之求 是所學之不虛 其厭飫而充之以德行之 以義懮懮乎 指引後學羹墻先聖 而各盖其道 又其發於詩文 有若豪氣吐虹逸想浚雲傲兀 而不害於平常橫放 而不悖於繩墨不事雕琢 而自合於調格徃慇勤款洽忠厚 惻怛之意寓 於其間令人可讀 而傳于世也 况又其至行者乎 然則與世之徒文 而傳者有不可同倫 而語者矣 處士沒後其壻柳君鎭浩 與其嗣孤及門生相議 而將謀刊以抱遺文屬余理 而序之余讀之信知 其行學之實足班 於前數君子者無愧焉 顧余於數君子 皆蒙知愛而至 於處士亦然未嘗忘于 中及爲定整遺編 而書此以寄其思云

丙辰秀葽節 晉陽 姜相弼 謹序

 

서산유집 서문(曙山遺集序)

양천 허씨는 우리나라의 큰 가문이다. 근세에 팔계(八溪, 합천의 옛 이름) 땅에서 문학과 덕행으로 사람들에게 추대받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산 처사(曙山 處士)이다.

처사는 젊어서부터 재주와 학문이 있었으나 특히 효행이 두터웠다. 날마다 반드시 낚시질과 나무질을 하여 어버이를 봉양하는 정성을 다했고, 남은 힘이 있으면 만졸(萬拙) 노옹(盧翁;노적(盧績))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효경, 논어, 중용을 읽을 때 어버이를 섬기는 가르침에 이르면 특별히 재차 삼차 외우고 읽으며 몸소 체득하였다.

부모님이 한꺼번에 돌아가시자 슬픔과 예절을 극진히 다했다. 이에 졸옹(拙翁)이 조문하며 위로하기를, “옛날 그대의 조부님께서 효도로 세상에 이름이 났는데, 이제 그대가 또 잘 계승하여 욕됨이 없으니, 시경에서 말하는 효자가 착한 무리를 내린다(孝子錫類)’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삼년상을 마친 뒤에는 당시 유학의 어른들인 장농산(張農山), 이남려(李南旅), 노죽오(盧竹塢), 장회당(張晦堂) 등 여러 선생을 쫓아 옛사람의 학문을 구했다. 편지로 묻고 직접 찾아가 가르침을 청함에 거의 헛된 해가 없었다. 그 편지들에 나타난 내용은 대부분 간절하고 지극했으며, 글을 닦고 행실을 갈고닦는 데 있어서는 특히 노경산(盧敬山) 수형, 유계은(柳溪隱) 만기, 신국재(申菊齋) 석기, 안청계(安聼溪) 구박 등 여러 공과 도의(道義)로 교유하며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보였으니, 그 배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학문을 넉넉히 머금고 덕행으로 채우며 의로움으로써 행하니, 여유로운 모습으로 후학들을 이끌고 앞선 성현들을 우러러보며 각각 그 도를 다하게 하였다.

또 그 시문(詩文)에서 드러나는 것은, 호탕한 기운이 무지개를 뿜어내고 빼어난 상상이 구름을 깊게 뚫는 듯하다. 기상이 높고 우뚝하면서도 평상심을 해치지 않으며, 자유분방하면서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꾸미는 데 힘쓰지 않아도 스스로 격조에 맞고, 그 사이에는 은근하고 정성스러우며 충실하고 측은한 마음이 깃들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읽고 세상에 전하게 할 만하다. 하물며 그 지극한 행실(효행)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니 세상의 그저 글재주로만 이름을 전하는 자들과는 같은 줄에 놓고 말할 수 없다.

처사가 돌아가신 후, 그의 사위 유진호(柳鎭浩) 군이 고인의 아들 및 문생들과 상의하여 책을 간행하기로 하고, 유고를 챙겨 나에게 정리와 서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읽어보니 처사의 품행과 학문의 실상이 앞서 언급한 여러 군자와 비교해도 부끄러움이 없음을 진실로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 여러 군자에게 모두 아낌을 받았고 처사에게도 그러했기에 마음속에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유고를 정리하고 이 글을 써서 그에 대한 그리움을 붙노라.

병진(1916년 혹은 1976년 추정) 수요절(端午)

진양(晉陽) 강상필(姜相弼) 삼가 씀

 

智異山賦

自天開而地闢 自地闢而山出 距天下而峻巗 環海際而崒嵂 聳白頭而流脈 曰智異而名傑 於三神而參一 與五嶽而同列 界嶺海而確盤 通古今而公認 四十里之高直 萬八峰之留鎭 東南跨於河晉 西北接於咸求 日出沒於峰內 天分合於岑頭 最爲高者天王 最爲深者靑鶴 姑蘇城與峨嵋 慕古時而名作 鳳凰臺與岳樓 何景物之符合 洞庭湖與瀟湘 萬千像之圍匝 洗耳巖之潺流 響空谷而不絶 佛日臺之尖巖 撑靑天而嶻嵲 坪石細而路轉 庵溪碧而林欝 貝葉傳於雙溪 法界通於七佛 雪經夏而不消 花非春而尙存 檜還生其老魄 竹多産其穉孫 無占雲於最上 鳴雷雨於其腰 西帶江而混混 南臨海而遙遙 寺斷俗而淸淨 洞開花而暎耀 飛瀑雪於年空 滴松濤於曉杪 披雲林而見天 𨰢巖壁而通路 萎淮伯之古梅 年己老而臥吐 鳴海上之風帆 非梵宮而何鍾 倚前川之長橋 非雲雨而何龍 金剛之於蓬萊 漢挐之於灜洲 玆山之方丈 千古間之無儔 伊中州之五嶽 今復見於此地 因地靈而人傑 可探境而寓志 名其山者爲誰 古賢人之達觀 兼仁智而樂樂 慕聖訓而拊歎 摸其形則筆澁 言其景則口涎 生涯白於雲堅 富貴紅於花田 自西洲而至東 誰不欲其登臨 以節義而遯隱 以文章而放吟 四相國之詩槖 七先生之筆語 垂後垂而煒煌 爲此山之靈助 巧被選於八景 非人授而殆天 乗斯梯而設社 名益廣於來千 十二州之夛士 何努力之其壯 業於學而簣屹 攻乎玉而彩放 仙世界之風流 捨此境而安得 曰悠久而存者 截彼高之山德

 

지리산부(智異山賦)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진 이래, 땅이 갈라지며 산이 솟아났으니, 천하에 우뚝하여 바위는 가파르고, 바다 끝을 둘러싸 산세는 높고 험하구나. 백두산에서 솟구쳐 그 맥이 흘러내렸으니, '지리(智異)'라 부르는 그 이름 호걸스럽도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참여하고, 오악(五嶽)과 나란히 서열을 같이 하네.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 확고히 서서, 고금에 이르도록 누구나 공인하는 명산이로다. 사십 리 높이로 곧게 솟아 있고, 만 팔천 봉우리가 진을 치고 머물러 있네. 동남쪽으로는 하동과 진주에 걸쳐 있고, 서북쪽으로는 함양과 구례에 닿았도다. 해는 봉우리 안에서 뜨고 지며, 하늘은 산마루 끝에서 나뉘고 합쳐지네.

가장 높은 곳은 천왕봉(天王峰)이요, 가장 깊은 곳은 청학동(靑鶴洞)이라. 고소성(姑蘇城)과 아미산(峨嵋山)은 옛날을 사모하여 이름 지은 것이요, 봉황대(鳳凰臺)와 악양루(岳陽樓)는 어찌 그리 경물이 딱 들어맞는가. 동정호(洞庭湖)와 소상강(瀟湘)의 만 가지 형상이 주위를 둘러싸고, 세이암(洗耳巖)의 잔잔한 물줄기는 빈 골짜기에 울려 끊이지 않네. 불일대(佛日臺)의 뾰족한 바위는 푸른 하늘을 떠받쳐 높디높고, 평평한 돌은 가늘고 길은 구불구불한데, 암자의 시냇물은 푸르고 숲은 울창하구나.

패엽경(貝葉)은 쌍계사(雙溪寺)에 전해지고, 불법(佛法)은 칠불사(七佛寺)로 통하네. 눈은 여름을 지나도 녹지 않고, 꽃은 봄이 아닌데도 여전히 피어 있도다. 전나무는 늙은 넋으로 다시 살아나고, 대나무는 어린 순을 많이도 틔우네. 산꼭대기엔 구름 한 점 없는데, 산허리엔 천둥 번개 치며 비가 내리는구나. 서쪽으로는 강을 띠처럼 둘러 도도히 흐르고, 남쪽으로는 바다를 임해 아득히 펼쳐졌네. 절은 속세와 끊겨 맑고도 깨끗하고, 골짜기마다 꽃이 피어 찬란히 빛나도다. 날아오르는 폭포는 일 년 내내 허공에 눈을 뿌리고, 새벽녘 소나무 끝동에는 파도 소리 같은 솔바람이 이슬처럼 맺히네.

구름 낀 숲을 헤치고 하늘을 보며, 암벽을 뚫어 길을 내었도다. 위회백(萎淮伯)의 고매(古梅)는 나이 이미 늙어 누운 채 꽃을 토해내고, 바다 위 돛단배에 울리는 소리, 범궁(불당)이 아니라면 어찌 종소리가 나겠는가. 앞 시내의 긴 다리에 기대어 서니, 구름과 비가 아니라면 어찌 용이라 하겠는가. 금강산이 봉래(蓬萊)이고 한라산이 영주(瀛洲)라면, 이 산은 방장(方丈)이니 천고의 세월 속에 짝할 곳이 없도다. 저 중국의 오악(五嶽)을 이제 이 땅에서 다시 보는구나. 땅이 신령하여 인걸이 나니, 그 경지를 탐험하며 뜻을 기탁하네.

이 산의 이름을 지은 이는 누구인가? 옛 현인의 달관(達觀)이로다. 어진 자와 지혜로운 자의 즐거움을 겸비하여, 성인의 가르침 사모하며 감탄하노라. 그 형상을 그리려니 붓이 무디고, 그 경치를 말하려니 입에 침이 고이네. 나의 생애는 흰 구름처럼 굳건하고, 부귀는 꽃밭처럼 붉게 피었구나. 서쪽 고을에서 동쪽까지 그 누가 이 산에 오르길 바라지 않겠는가. 절개와 의리로 은둔하기도 하고, 문장으로 호탕하게 읊조리기도 했네. 네 분 상국(相國)의 시 보따리와 일곱 선생의 필적은 후세에 길이 전해져 빛나니, 이 산의 영험함을 돕는구나. 교묘하게 팔경(八景)에 뽑힌 것은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것이라. 이 사다리(기회)를 타고 시사(設社)를 세우니, 그 이름 천 년 뒤까지 더욱 넓어지리라. 열두 고을의 많은 선비들이 어찌 그리 장하게 노력하는가. 학업에 힘써 산처럼 쌓아 올리고, 옥을 갈고 닦아 빛을 내는구나. 신선 세계의 풍류를 이 경지 말고 어디서 얻겠는가? 유구하게 존재하는 것은 저 높디높은 산의 덕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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