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자원봉사/봉사단과 마을 이야기

고성군 삼산면 병산리 이야기

천부인권 2006. 12. 13. 21:14
 

고성군 삼산면 병산리 이야기

(2006.12.10. 마창기술봉사단)


● 수년 전까지만 해도 바다낚시에 푹 빠져 삼산면을 수없이 들락거렸는데 병산마을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곳에 불과 했다. 관심이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와는 무관한 일로서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인 것 같다.

“세상에 대한 작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첫 번째 마음의 문을 여는 길인 것을 마창기술봉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내가 배운 큰 교훈이다.” 세상을 보는 마음의 문을 열어준 봉사단에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2006년 마지막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들녁에 정리하지 못한 짚을 정리하는 봉사단>


● 2006년 마지막 봉사활동 장소로 병산리가 선정 되었다고 하여 어떠한 정보가 나오는지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마창기술봉사단이 2004년10월10일에 간적이 있었고 그 때에 “이따이이따이”병이 발병되었다고 한창 문제가 제기 되는 시기인 것으로 조사 되었다.

                                                         <마을 전경과 매바위산>

● 일제가 조선의 자원을 수탈하여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광산을 개발하였으며 물류의 이동이 용이한 바다에 인접한 곳을 개발했다.

  경남에 많은 폐광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은 이러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미래에 어떠한 일들이 생겨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가운데 지금까지 흘러 왔다.

  병산리는 그러한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로 2006년12월7일에야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물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공사를 완료하였다고 한다. 2004년 9월에 정부에서는 오염으로 인한 “이따이이따이”병이 아니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폐광 후 지금까지 토양이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2년에 걸쳐 공사를 한 이유를 모르겠다.

                                                           <정겨운 돌담 길>

●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신 노인회장(정영석.79세)님은 일제 때 에 재일광산과 상봉광산이 있었는데 이때에는 마을이 100호가 넘었으며 면사무소, 우체국, 지서가 있었고 병산마을에서 면장을 6명이나 배출한 저력이 있는 곳이라고 자랑을 하셨다.

광산은 수익성이 없어지자 일제 때 폐광을 하였고,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로 이당리와 대독리를 고성읍에 편입시켜 가자, 1984년 8월 22일 고성군 조례 제858호로 병산리, 두포리, 미룡리, 삼봉리, 장치리, 판곡리 등 6개리를 형성하였고 이렇게 되자 병산리가 면의 중앙이 아니게 되었고 관공서 건물도 낡아 1990년 3월 22일자로 미룡리로 옮겨 갔다고 한다.

                                                <공동우물 터 지금도 물은 고여 있다>

                                                        <마을 전경>

◎ 병산리의 유래(由來)

병산마을의 동명(洞名)은 마을의 형세가 삼면이 산으로 병풍(屛風)을 둘러친 모양새 같다 하여 병산리라 하였으며, 고려현종(高麗顯宗) 9년(서기 1078년)에 고성현으로 개칭될 때 상서면(上西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3월 1일 상남면과 상서면이 삼산면으로 병합되어 현재 삼산면 병산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 뒷산의 적송, 곰솔, 서어나무 삼형제>

                                     <마을 안 풍경 마을을 가로 지르는 하천>

◎마을의 형성(形成)

병산마을의 생긴 년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없으나 고려현종 때 상서면병산리로 행정구역이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주민이 거주하게 된 것은 훨신 이전으로 추정된다.

현재 거주민의 성씨는 달성서씨(達城徐氏), 전주이씨(全州李氏), 밀양박씨(密陽朴氏), 영일정씨(迎日鄭氏)등 4성이 입촌 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현재 10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들판을 지키는 허수아비>

                                                       <마을 당산나무>

◎마을의 지세(地勢)

마을 남쪽은 고성만에 임하여 있고 동, 서, 북쪽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산골마을로 병풍 모양을 하고 있는 병풍산, 호랑이처럼 생긴 범바위산(虎岩山), 매의 형세와 같다하여 매바위산(정상에 측량점이 있음)이 있으며, 동쪽에는 새앙산(새앙골)으로 불리는 산으로 쌓여 있다. 근세에 와서 동광(銅鑛)(지금은 폐광되었음)이 많이 있었던 마을로서 경지는 비교적 비옥하며 수원은 병산 수류지가 윗마을에 있어 양호한 편이다.

                                          <바다가 바라 보이는 전경>

       <어릴적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던 생각이 나서 한컷>

◎주민(住民)

마을 주민은 85가구에 280명(남자 136명, 여자 144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주민의 성씨는 달성서씨(達城徐氏), 전주이씨(李氏),밀양박씨(密陽朴氏), 영일정씨(迎日鄭氏), 김해김씨(金海金氏), 김녕김씨(金寧金氏), 진양정씨(晋陽鄭氏)등 여러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 노인회 가입

65세 이상 되는 노인 남자:34명, 여자:15명이 주소지와 거주지가 동일한 분들이 가입하고 있으며, 주소지는 다른 곳이나 현재 마을에서 사시는 분들이 상당 수 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모습인 것이다.


◎주민의 생업(生業)과 생활환경

주민의 생업은 농업과 어업을 하고 있으며 농업은 미맥 위주의 전통적인 농업에 축산 등을 겸하고 있고, 어업은 양식어업과 어선어업을 하고 있는 반농반어를 하고 있다. 생활권은 고성군으로 고성장(1일, 6일)을 이용하고 있으며 병원도 고성군으로 이용하는 편이고 큰 병원은 마산이나 진주를 이용한다고 한다. 교통은 다른 곳보다 편리한 편이라 한다.


◎주거환경(住居環境)

마을의 초가지붕은 1970년대에 스레트와 일부 기와로 전면 개량하였으며 지금은 개량주택과 현대식 주택도 건축하고 있다. 그리고 주택구조도 입식부엌과 수세식 화장실로 개량을 하고 있으면 전기, 전화, TV는 전 가구에 보급이 되었다.


◎교육(敎育)

초·중등교육은 삼산초등학교(스쿨버스가 다님)와 삼산중학교 및 고성읍의 중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고등학교는 고성 등 인근 도시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교육을 받고 있다.


◎병산 우체국

본 마을에 병산우체국(사설)이 1966년 12월 1일에 병산리 200-2번지에 설립되어 우편, 체신예금, 보험, 환금, 우편대체 및 각종 공과금수납과 전보접수 및 배달 업무를 수행했다.


◎재실(재실)과 지명일화(지명일화)

◇현용재(현용재)

   옛날 한학을 수학한 서재로서 달성서씨(達城徐氏) 문헌에 의하면 송오(松墺) 서상륜 (徐相崙) 선생께서 창재(創齋)하여 많은 선현을 배출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한일합방 이후에 폐지되었다 고한다.


◇서씨(徐氏) 문중에 병산재, 곡부정(谷夫亭), 한송정(韓松亭)이 있으며

◇이씨(李氏) 문중에 선영재(善迎齋)가 있다.

◇정씨(鄭氏) 문중에도 재실(齋室)이 있다.


◇산제곡(山祭谷)

    백일산제(百日山祭)를 지낸 골짜기로서 산제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