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고인돌과 회화나무

천부인권 2008. 1. 16. 11:20
 

 선사시대“고인돌”과 회화나무의 어울림

(사림동 79-6번지)

 역사를 보는 시각이 예전에는 세계적인 유적이나 국가적 유물들을 소중히 생각하여 그러한 것들이 가치가 있다고 보아 왔다. 그러나 요즘은 먼 곳에 있는 유적이나 유물들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한 지역의 작은 유적이나 유물들이 오히려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여 이러한 내 주위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 하고자 하는 향토사학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사림동 79-6번지에 가보면 고목의 뿌리와 엉켜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여러 조각으로 깨어졌으나 그 위용만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성혈이 새겨진 고인돌


 “고인돌”이란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선사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불리는 고인돌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과 영국과 스위스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의 유럽 지역, 중동지역, 북아프리카 지역, 인도 남부 지역, 자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시아 지역 등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전세계의 거석유물 중 절반 이상이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조각난 고인돌 모습


 

성혈의 흔적


 

성혈의 모습


 계급분화가 시작된 청동기 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고인돌은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돌화살촉이나 간검돌, 민무늬 토기, 청동 제품 등이 주요 부장품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많은 고인돌에서 부장품이 아예 출토되지 않거나 있어도 매우 미미해 이차장(二次葬) 또는 세골장(洗骨葬 : 1차로 가매장하여 살을 썩혀 없애고 뼈만 추려 묻는 장례)용의 무덤일 가능성도 띄고 있다.


북방식은 넓고 편편한 4개의 판석을 땅 위에 세워 네모난 상자 모양으로 방을 만든 다음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는 식이다. 책상을 닮았다 하여 탁자식으로도 부른다.


남방식 고인돌은 먼저 무덤방(墓室)을 지하에 만들고 그 주위에 4~8개의 받침돌을 놓은 뒤 커다란 돌로 덮는 것으로, 바둑판 모양이라 하여 기반식(碁盤式)으로도 부른다.

개석식 고인돌은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을 놓은 형식이다.



 

고인돌에 새긴 퇴촌 괴헌정

 

 이 고인돌에 [퇴촌 괴헌정]이란 글귀와 광무9년 을사년(1905년) 3월에 새겼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불과 7개월 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져  민족의 비극인 조선이 망하는 안타까운 해이기도 하다. 

“안염의 호가 괴헌으로 현종 을사년에 태어나 정미년(1666년~1727년) 까지 살았다. 안염의 8대손인 안지현이 선조의 업적을 찬양하는 의미에서 괴헌정이란 글을 새겼다.”

[槐軒亭]이란 말 그대로 회화나무가 정자의 처마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이다.



 

크기를 짐작케 하는 모습

 

우리 동네 “고인돌”은 주술적 힘을 빌려 사람들의 생각을 모은 성혈의 흔적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강력한 권력을 가진 부족장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름철 괴헌정 모습

 

회화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손꼽아 온 나무다.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운이 흘러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고 하였고 또 이 나무에는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하고 좋은 기운이 모여든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 선조들은 이 나무를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아무 곳에나 심지 못하게 하였다.

 

 회화나무는 고결한 선비의 집이나 서원(書院), 절간, 대궐 같은 곳에만 심을 수 있었고 특별히 공이 많은 학자나 관리한테 임금이 상으로 내리기도 했다. 회화나무는 모든 나무 가운데서 으뜸으로 치는 신목(神木)이다.


 

겨울의 괴헌정 모습

 

이러한 신목과 고인돌이 함께 뒤엉켜 도굴꾼들의 약탈행위를 피했을 거라고 믿고 있으며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유구한 역사의 흔적이 증명하듯 봉림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어려운 일은 서로 돕고 위로하며 행복을 만들어 가는 끈끈한 정이 있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