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광제암문

천부인권 2008. 2. 4. 12:07
 

광제암문


광제암문은 경남 산청군 입석리 용두마을 벗어나면 좌측에 네모난 암석이 있는 곳에서 하천으로 내려가면 하천의 물길과 접하여 있는 큰 암석에 새겨져 있는 글씨로 단속사의 동문이란 뜻을 담고 있다.

또한 廣濟嵒門은 “많은 타인을 도와주는 길”이란 뜻도 있고, “넓게 깨달음을 성취하는 문”이란 뜻도 있는 것 같다.


 

길에서 바라본 광제암


 

남근석

남근바위. 

 지역민들에 의하면 어느 때부터인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무당이 이 남근석을 세워 비손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골짜기 안에 두 개의 옥녀봉이 있는데, 남근석이 있어야 골짜기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기운이 충만하다고 믿는 일종의 액막이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남근석에 자식을 갖지 못한 부녀자들이 정성을 다하여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



 

광제암의 위용


광제암은 큰 조각하나가 떨어져 하천에 내려가 있는데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랫 부분은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어 옛날 창원 성산에 있던 "산태방구"를 생각나게 했다.

하천의 물을 떠서 바위 위에서 붇고 흐르는 물과함께 미끄럼을 타면 물속으로 풍덩 빠지는 재미란 멱감는 기분을 한층 신나게 했다.   



 

거대한 암석


 

전체 모습


 

물속으로 연결된 바위


 

아름다운 하천의 모습


 

광제암문의 글씨


통화 13년 을미(서기 995년) 4월에 승려인 혜원(?)이 쓰고, 역시 승려인 청선이 새긴 것이다. 아담하고 무게가 있으면서도 개성 있는 필체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옆에 새겨진 글


  1969년 4월6일 단성면에 살고 있는 병오생 사람10명이 모임을 가진 후 자신들의 이름과 본관을 기록하였다.

무슨 일을 하고 이런 기록을 남겼는지 몰라도 황칠(낙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은 바위만 보면 꼭 이렇게 이름을 남기는데 유적과 자연을 훼손 할만한 일을 하고 이름을 새긴다면 칭찬을 받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이 글이 사라질 때까지 욕을 듣게 됨을 알아야 된다.

돌이 풍화를 하는 시간은 대략 천년이 흘러야 한다는데 적어도 이정도의 글이라면 천년 동안 칭찬을 듣든가 욕을 듣게 될 것이다.


단기 4302년 을유 4월 6일 도현규 씀 이라고 되어 있음.



 

광제암에 쓰여진 또다른 글


 

광제암 절벽에 멋지게 살고 있는 소나무

 

 

광제암과 소나무의 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