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기술봉사단의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 이야기2
선돌의 전설
입석마을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단속사지의 창건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절을 창건할 당시 도인(스님)이 법력을 이용하여 인근의 돌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단속사가 다 만들어져 더 이상의 돌이 필요 없게 되자 단속사로 향하던 돌들이 지금의 자리에 그대로 서버렸다고 한다.(주민 강정수씨 73세)
권영달 산청문화원장님은 마을의 경계석이라는 말도 있으나, 단지 냇가에 돌이 서있어 그 지명을 입석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알고 계신다고 하셨다.
<마을 입구 냇가에 서있는 선돌>
<내가의 선돌 옆 모습>
<학당입구에 있는 탕건선돌>
그리고 『산청선비학당』에 있는 선돌의 모양이 탕건을 닮아 이 마을에는 국가의 녹을 먹는 큰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 된다고 한다.
<성혈이 있는 선돌>
이 탕건선돌에는 계란만한 크기의 성혈(선사시대 고인돌에도 있는 것으로 여성의 성기를 표현하는 것이다.)이 있는데, 아들을 낳고 싶어 하는 부녀자들은 이 성혈을 만지만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탕건선돌>
안동권씨, 밀양박씨, 성주이씨, 진양강씨가 주류를 이루고 살고 있으며, 이작은 마을에서 구회의원이 둘이나 나왔으며(권영길, 권경석), 옆 동네 구산부락에서도 국회의원이 나와(박계동) 석대산의 정기가 이 들을 만들었다고 주민들은 자랑을 한다.
<마을입구>
한편으로 창원사람인 나로서는 씁쓰름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한 마을에서 두명이나 창원시에 와서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정작 창원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기에 출마도 못하고 있는지 하는 자격지심도 든다.
<마을입구의 정려각과 유허비 보건소>
<마을 뒷 길>
<감나무가 많은 마을>
<시골이지만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정겨운 돌담>
<시골의 모습>
<변화 하는 마을>
<허물어져 가는 건물>
<이색적인 현대식 공중화장실>
“이산 저산 다 잡아 먹고도 아가리를 턱 벌리고 있는 것이 뭐꼬?”라는 수수께끼를 어릴 적에 들었는데 요즘은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산에 올라가 땔감을 하는 일이 없어 산은 숲으로 가꾸어져 있다. 불과 30여년 만에 산림이 이처럼 울창한 것은 화석연료 덕분이며, 북한의 산이 벌거벗은 것은 아직도 땔감을 산에 의존하기 때이다.
화석연료의 사용이 산을 숲으로 만드는 일등공신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구온난화 등 지구를 황폐화 시키는 일 또한 일등공신으로 역할을 했다.
요즘에 석유가격의 상승이 서민들의 뼈속까지 느껴지는 상황에서 <화목보일러>는 농촌지역이나 산과 인접한 곳에서는 쉽게 나무를 구할 수 있기에 연료의 대안으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호암떡집”의 화목보일러는 간혹 적은 양의 떡을 할 때에는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며, 많은 양의 떡을 할 때에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 화목보일러의 단점은 땔감이 많이 들어가 화력이 강할 때와 약할 때의 온도 조절이 잘되지 않아 떡을 만들 때의 일정한 온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호암떡집의 화목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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