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진주성 내의 경절사와 호국사

천부인권 2009. 4. 13. 07:57

 

<경절사(擎節祠)>

 

경절사(擎節祠)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


이곳은 고려조 충절신(高麗朝 忠節臣) 하공진(河拱辰) 장군의 영정(影幀)과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향례(享禮)를 받드는 곳이다.

공(公)은 현종원년(顯宗元年, 1010), 안으로는 왕실의 위난(危難)을 수호(守護)한 공(功)을 세웠고, 밖으로는 거란(契丹)의 40만대군을 삼촌설(三寸舌)로 퇴각(退却)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하여 적국(敵國)의 볼모(人質)가 되어서도 절개(節槪)를 굽히지 않고 의(義)를 좇아 신명()身命을 홍모(鴻毛)와 같이 버리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서는 문하시랑동중서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評章事)를 추증(追贈)하고 영정을 기린각(麒麟閣)에 모시었다. 공의 죽음은 곧 위국충절(爲國忠節)의 상징(象徵)이 되어 이곳 진주를 충절의 고장이라 일컫는 효시(嚆矢)가 되었다.

<호국사 입구>

 

호국사(護國寺)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이 절은 원래의 이름은 내성사(內城寺)였다고 한다. 고려말기 왜구(倭寇)를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생각되는 이 절은 임진왜란 때 승군(僧軍)의 기지가 되었다.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임금께서 호국사(護國寺)란 이름으로 재건(再建)하였다고 전한다. 최근에 진주성을 재건하면서 일주문(一柱門) 자리가 발견되어 새로웠으며 사찰의 건물은 요즘에 새로 이룩된 것이다.

<호국사(護國寺) 입구에서 대웅전 방향>

 <호국사(護國寺) 대웅전에서 입구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