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사지 재실 앞>
오늘의 일정과 상관없이 용암사지를 갈 때 큰 기와집이 있어 사지를 나올 때 둘러보니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 1565~1624) 장군이 용암사지 정씨재실의 농포집장판각(農圃集藏板閣)의 주인공이었다. 빈 공터에 차를 세우고 보니 보호수가 눈을 끈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북관대첩비가 일본 동경의 야스쿠니신사 내에 초라한 모습으로 비둘기 똥을 맞고 있다하니 되돌려 받아 이곳 충의사에 안치하는 것이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문부 장군의 사적비가 충의사 앞에 있다.>
<가호서원(佳湖書院)>
<장판각의 문서는 경상대학에 기증했다.>
충의사(忠義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1호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119
이곳은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 명장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 1565~1624)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공 선조 21년(158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벼슬길에 나아가 임진왜란 때 북평사(北評事)로 의병대장에 추대(推戴)되어 함경도를 침략한 왜군을 물리치고 지방반군을 소탕하고 북방호족을 몰아내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북관대첩(北關大捷)을 이루었다. 전쟁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시화(詩禍)에 연루(連累)되어 억울한 죽임을 당하였다.
후에 무죄가 해명되어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되고 충의(忠毅)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사우(祠宇)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목조 구조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경내에는 충의공의 일대기와 유물을 전시한 전시관, 농포집책판(農圃集冊板)을 보관한 장판각(藏板閣), 강당 등의 건물이 있다.
원래는 귀곡동에 있던 것을 남강댐 숭상공사로 인하여 1997년 이곳으로 이건(移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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