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옥천사 대웅전(玉泉寺 大雄殿)과 옥천사 편액

천부인권 2009. 9. 22. 10:48

 옥천사 대웅전(玉泉寺 大雄殿)과 옥천사 편액

자방루 옆 쪽문을 들어서면 대웅전 앞마당이며 마당은 대웅전, 자방루 그리고 탐진당(探眞堂)과 적묵당(寂黙堂)으로 둘러싸여 있어 전형적인 조선시대 중정형 가람배치 모습을 보여준다. 축대 위 대웅전 좌우에는 팔상전, 명부전, 옥천각, 나한전, 산령각, 독성각, 조사당, 칠성각, 취향전 등 작은 전각들이 오밀조밀하게 열을 지어 서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인 대웅전은『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57년(효종8)에 용성화상이 중창하였으며 그 후 여러 번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대웅전은 부속건물에 둘러싸여 답답한 느낌을 주지만 높이 쌓은 석축위에 건물을 조성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우러러 보게 배치하여 당당한 맛을 살렸으며, 건물의 부재(部材)들 역시 고급스럽고 튼실하여 조선 후기 남해안 지방에 건립된 일반 사찰에 비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고 안내판에는 기록하고 있다.

 <옥천사 대웅전은 다른 건물 때문에 작아보여도 고급스런 풍격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커다란 당간지주석이 이채롭고 연꽃으로 장식한 정료대(庭燎臺)가 좌우 양쪽에 설치되어 야간에 행사를 했다면 신비로움을 더했을 것이다.

 

 <멋을 부린 정료대(庭燎臺)>

(정료대는 야간에 관솔이나 나무에 기름을 부어 횃불을 피우는 곳으로 절이나 향교, 서원 등에 설치되어 있다.)

 

대웅전 좌우에 배열한 적묵당과 탐진당의 지붕은 대웅전 쪽에는 팔각으로 자방루 쪽으로는 화려한 팔작으로 펼쳐 대칭을 이루고 있어 대웅전의 위세가 밖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게 했다.


 

 <탐진당> 

 <적묵당>

 <대웅전 내부 모습>

 

 대웅전 편액의 글씨는 영조 때 동국진체풍(東國眞体風)의 대가인 동화사 기성대사(箕城快善:1693-1774)의 글씨라 한다.


 

 <대웅전 편액의 웅자를 길게 내려쓰 한층 힘있어 보인다.>

 

 ‘옥천사’라는 글씨는 동국진체풍의 후기 글씨로 영조말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낙관에 정수혁(鄭守赫)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어 영조말기에 경상감사를 지낸 정수혁의 글씨로 그가 지은 “홍매(紅梅)”라는 시가 최근 한글로 번역 게재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하여 여기에 적어 둔다.

홍매(紅梅)

 

정수혁(鄭守赫)

 

가지마다 눈을 흩고
봄빛을 독차지해
산호로 깎아 낸가
송이송이 눈부시네.

 

아리따운 젊은 여인
애교 흠뻑 머금은 듯
향기 바람 절로 일어
정든 임을 애태우네.


 

 <자방루에 걸려있는 옥천사 편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