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꽃향기로 채워지는 옥천사 자방루

천부인권 2009. 9. 21. 19:16

 꽃향기로 채워지는 옥천사 자방루

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꽤 넓은 공간을 가로막아 절집을 보호하고 있는 듯한 영조 40년(1764)에 뇌원(雷遠)대사가 초창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옥천사 자방루(玉泉寺滋芳樓)를 만난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팔작지붕의 건물로 기둥사이를 모두 두터운 문으로 막고 오직 앞마당과 면하는 전면만을 개방하여 큰 성채를 방불케 한다.


성채와 같은 자방루는 조선 후기 사찰건립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초토화되자 국가가 승병을 기르는 호국사찰을 건설하면서 사찰도 보호하고 군사용 회합장소로도 사용할 목적으로 외곽 방어용의 커다란 ‘자방루’와 같은 건물을 짓게 된 것이다.

  <광장에서 본 자방루 전경>

 <자방루 내부 전경>

 
자방루(滋芳樓)’란 “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란 말로 “불도를 닦는 누각”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자방루(滋芳樓)’ 건물의 정면에는 영조 때 이조참판을 지낸 조명채(1700~1764)의 편액이 걸려있고 반대편 대웅전 마당 쪽에는 '연화옥천(蓮華玉泉)'이라는 추사의 수제자 위당(威堂) 신헌(申櫶, 1811~1884)의 예서체 글씨로 쓴 현판이 걸려있다. 네 개의 기둥 중 2번, 3번 기둥에는 용두가 쌍방으로 조각되어 있고, 지붕 밑의 장혀와 창방에 그려진 화조도와 풍경화는 120년 전 중수 당시의 단청그림이다. ‘자방루’에 앉아 기둥과 기둥사이의 나무문을 열고 밖을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동양화가 되어 돌아온다.


 

 <조명채의 글>

 <위당 신헌의 예서체>

  <대웅전에서 바라본 자방루>

 <양쪽으로 조각한 용두>

<자방루에 앉아 밖을 보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