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최윤덕장상 생가지로 지정한 경남도기념물제145호는 생가지가 아니다.

천부인권 2013. 3. 18. 18:42

 

 

 

<통천최씨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양장공유허도 : 창원 북면 무릉리 이목평이 기록되어 있다.>

 

 

1995년 05월 02일 경상남도가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한 창원시 의창구 북면 내곡리 1096, 1097, 1099번지 일대 2,840㎡의 면적은 생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최윤덕장상의 생가지로 지정한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는 해지되어야 한다.

 

생가지(生家地)에 대한 경상남도의 기준은 「생가(生家)’의 사전적 용어의 의미는 “사람이 태어난 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생가지(生家地)’는 “사람이 태어난 집터”라는 의미가 될 것이며, 광의적인 의미로는 “사람이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생가지란 사람이 태어나야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 생가지로 지정한 북면 송촌마을 뒷산(북면 내곡리 1096, 1097, 1099번지)은 최윤덕의 유허지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생가지(生家地)가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부모의 몸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최윤덕의 아버지 양장공 최운해와 어머니가 살던 집은 ‘북면 무등촌 이목평’이지만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한 최윤덕의 생가지는 북면 내곡리 송촌마을 뒷산이라 두 지역은 직선거리로 약 3km나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면 최윤덕은 부모와 상관없이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송촌마을 뒷산에 자신의 집을 짓고, 아이도 배지 않은 창원이씨라 주장하는 어머니를 송촌마을 뒷산인 정열공유지에 모시고와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2011년 생가지라고 내 놓은 정열공유지>


 

김종하가 쓴 창원군지(1968년)에는 「고려우왕병진(高麗禑王丙辰)에 본군 북면 내곡리 무등촌 이목평[北面 乃谷里 武嶝村 梨木坪 : 지금 무동리(茂洞里) 입구에 윤덕이 출생한 고가가 있다.]에서 출생하였다. 무릉산(武陵山) 풀이 삼년간 마른 후에 공이 출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원향교지에는 최윤덕장군의 생가지에 대해 「장군의 생가지로 알려진 곳은 북면 내곡리 송촌과 무동리로 두 곳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무동리는 그의 외가로 태어난 곳이라 하고 송촌마을은 그가 자란 성장지라 하며 일설에는 그가 정승이 된 뒤에 송촌으로 이사를 하였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48호인 남명 조식선생의 생가지가 외가인 합천 삼가면 외톨이 488번지인 것은 선생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윤덕장상은 태어난 무동리가 생가지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통천최씨가에서 기록한 ‘통천의 지명변천과 통천최씨’의 ‘창원정착 및 유적지’에 의하면 「현재 창원의 유적지로는 창원시 북면 내곡리 무릉촌에 고대 집터가 문화유적지로 지정되어 있다.」고 적고 있으며, 통천 최씨가에서 고문서로 주장하고 있는 ‘양장공유허도(襄莊公遺墟圖)’와 ‘정열공유지(貞烈公遺址)’를 보면 현재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한 생가지의 위치는 아무리 잘 봐줘도 정열공유지(貞烈公遺址)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11년 3월에 통천최씨가에서 생가지라고 창원시에 제출한 자료가 정열공유지(貞烈公遺址)였는데 통천최씨가에서 제작한 자료에는 양장공유허도(襄莊公遺墟圖)도 기록 되어 있다. 양장공유허도는 최윤덕의 부모가 살았던 집 위치가 송촌마을 뒷산이 아니라 지금의 무동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창원문화원장 박동백씨가 2012년 12월 12일 공문으로 창원시문화예술과에 보낸 답변 중 ‘최윤덕 생가지 문제’를 보면 「최윤덕 장상은 1376(우왕2)년 창원 북면 무동리에서 최운해 장군과 창원이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6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니 양수척가에서 불행하게 살게 되니 그 생가지는 전설로만 남아 있었다. 이번 무동이 아파트 공사로 그 생가지가 사라졌다.」고 하였다. 

북면 송촌마을 뒷산을 최윤덕의 생가지인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한 것이 자신의 공적이라고 주장하는 박동백원장이 지금에 와서 무동리의 생가지가 사라졌다고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데 1995년 5월에는 무동리의 생가지가 있었음에도 지정을 하지 않고, 송촌마을 뒷산을 생가지로 지정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러면 무동리가 생가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북면 송촌마을 뒷산을 경상남도기념물 제145호인 최윤덕장군의 생가지라고 속여 지정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이를 모르는 공무원들이 기념물로 지정을 하였는데 멀쩡한 생가지를 놓아두고 엉터리를 기념물로 지정해야만 했던 그 사건 속에는 일반 사람들이 몰라야 하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가지가 아님을 알고도 생가지로 만든 그 비밀스런 사연이 궁금하다.

 

 

창원시 보도자료 : 

창원시, 북면 감계·무동지구 아파트 입주 전 기반시설 조성 관련 합동 현장점검 실시

창원시가 의창구 북면 감계·무동리 일원에 지난 2007년부터 환경수도에 걸 맞는 생태도시로 조성중인 북면 감계·무동지구 도시개발사업이 그동안 도시개발구역 지정 등 행정절차를 거쳐, 2008년부터 1939억원을 투입해 현재 부지조성공사가 75%의 공정률을 보인 가운데 201312월 준공 목표(2013.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