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생각하다

봉곡마을 축제명칭을 ‘구산봉마을축제’로 하는 이유

천부인권 2013. 5. 7. 13:30



 

 


봉곡평생교육센터에서 ‘석류길축제’란 명칭으로 작년까지 6회에 걸쳐서 어린 친구들과 부모님,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를 해마다 행해왔다. 매년 부제(副題) 달리하지만 타이틀(title)로는 ‘석류길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

올해도 5월 25(토)일 2시에 봉곡평생교육센터에서 펼치는 축제를 열기로 운영위원들이 모여 의논을 하였다. 축제의 부제로는 ‘이바구가 있는 봉곡마을’로 선정을 하였고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축제라는 것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다만 큰 제목이 되는 축제 명칭을 ‘석류길축제’에서 ‘구산봉마을축제’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와 검토를 하였다. 




<시티세븐에서 바라본 봉림마을 풍경 - 구산봉에서 봉림사지가 훤히 보인다.>


예전에는 이곳 거리 이름이 ‘석류길’이었고 단독주택지다보니 석류가 집집마다 심어져 있어 이곳만의 특징이 있었지만 지금은 석류나무도 사라졌고, 도로명 주소로 인하여 ‘창이대로169번길과 지귀로120번길’이 만나는 곳으로 바뀌었으며, 주소도 창이대로169번길 7로 바뀌어 석류길의 이미지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축제에 참가하여 ‘석류길축제’라는 명칭을 왜 사용하느냐고 묻는다면 장황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고, 이곳만의 특징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명칭을 바꾸기로 결정을 하였다.

 


 


 

창원공단의 배후 주택지로 개발된 이곳 봉곡동은 전형적인 단독주택 주거지역으로 1997년 7월 14일 창원시의 대동제실시로 인해 봉림동(鳳林洞)과 봉곡동(鳳谷洞), 사림동(士林洞)이 합해져 봉림동이 된 곳으로 봉곡평생교육센터가 위치한 곳은 봉곡동이다. 이곳이 봉림동과 명곡동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창원시가 동지역의 경계를 분리 확정하면서 봉림동의 봉(鳳)과 명곡동의 곡(谷)을 빌려와서 봉곡동(鳳谷洞)이라는 마을이 탄생했다.




<구산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마을 풍경>


그러나 창원공단이 개발되기 전에는 이 일대의 마을들은 봉림리, 지귀리, 신촌리, 상복리, 서곡리 등이 있었고 지귀리(知歸里)가 대표적인 마을 이었다. 

지이포(只耳浦)는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처음으로 나오며, 염분(鹽盆)이 있었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지이리(只耳里)가 보인다. 『경상도읍지』에는 지귀리(知歸里)라는 표기로 나오는데, 당시 남면 도상일운에 속해 있었다. 그 후 지귀리는 동지이리(東只耳里)와 서지이리(西只耳里)로 나누어졌다가 다시 신촌리(新村里)·동지이리·서지이리의 일부가 합쳐져 지귀리(知歸里)가 되었다.[출처 : 디지털창원문화대전] 또한 김종하가 쓴 『창원군지 p30』 제8장 방리(坊里) 상남면(上南面) 일운(一運)에 의하면 부남십리지점(附南十里地點)을 포함하였다. 지이리(只耳里), 봉림리, 반송리, 퇴촌리, 상림리, 용동리 합육동(合六洞)이라 기록하고 있다.

지귀리는 마을 지형이 쥐의 귀처럼 생겼다고 하며, 옛날 어느 도사가 마을 뒤산에 도장골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돌아갔다 하여 지귀라 하였다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의하여 신촌리, 동지이리, 서지이리 일부를 병합하여 지귀리(知歸里)라 하였다.[출처 : 창원향교지 하 p1210]

지귀동의 유래에 대해 창원시 회원구 내서읍 첨두서원(瞻斗書院)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교하노씨 양현 세덕비명(交河盧氏 兩賢 世德碑銘)에는 『교리공(校理公)이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직무를 수행하다가 단종손위(端宗遜位) 때에 시국을 예견하시고 명곡에 돌아오시니 이로 인해 명곡(明谷)을 지귀촌(知歸村)이라 불렀다』고 적혀있다.[비문은 2000년 12월에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이해문(李海門)이 지은 글]



창원향교지 하권 p1211-지명


지귀동 뒤산의 이름을 창원향교지 하권(p1211)에는 지귀 북쪽에 있는 산이 ‘구룡산(九龍山)’이라 적고 있고, 김해김씨 부자의 효성을 추모한 ‘부자상호비’와 함께 세워져 있는 ‘지귀동유허비’에는 ‘구산봉’이라 새겨져 있으며, 지귀동 원주민인 명지노인당 정태연(여, 85세)씨는 ‘구산먼댕이’라 부르는 것으로 볼 때 태복산의 말단에 솟은 봉우리가 ‘구산봉(龜山峰)’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龜山峰’이라 쓰는 것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선승들이 세운 선종의 아홉 산문 중에서 제팔 선문인 봉림선문(鳳林禪門)의 입구가 여기이고, 구산봉에서 봉림사지(鳳林寺址)까지는 직선거리로 2km에 불과하다.




<구산봉 정상에서 현재의 마을을 기록하기 위해>


봉곡평생교육센터가 자리한 이곳과 축제를 여는 삼각공원은 낙남정간 4구간에 위치한 태복산이 구산먼댕이(구산봉 또는 구룡산)를 거쳐 독뫼(獨山)를 지나 지이포로 흘러가는 길목 중에서 그 혈을 맺은 자리이다. 그리고 마을 뒷산의 작은 언덕 같은 곳이지만 이름이 있음에도 후대가 불러주지 않는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은 자명(自明)한 이치라 역사에 영원히 그 이름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봉곡평생교육센터 운영위원들과 마을주민들이 간곡한 의미를 담아 축제의 명칭으로 '구산먼댕이(龜山峰)를' 사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