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생각하다

창원광장에 세워진 말대가리를 치워야 하는 이유

천부인권 2013. 6. 28. 07:56

 

 

 

 

 

최윤덕 상국(相國)이 왜 저곳 창원광장에서 해괴한 짓을 하고 있는지 창원시는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최윤덕은 영상(領相)을 지낸 사람으로 문(文)을 숭상하던 조선에서 문인(文人)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분으로 전쟁터나 누비는 일개 장군이 아닌데 그런 분을 영웅으로 만들자면서 전쟁이나 하는 꼴사나운 모습의 동상을 제작한 것은 영상(領相)을 장군으로 격하(格下)시킨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전쟁터에서 사람의 피 냄새를 맡으며 살았다 할지라도 적어도 장군의 모습이라면 전쟁에서 패하여 자신이 직접 활을 쏘는 급박한 상황의 모습은 아니어야 한다. 구국의 영웅이라 칭송하는 이순신의 동상을 보면 대체로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이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제작하지 않는 것도 장수에 대한 예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순신장군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여 마지막의 모습이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그 모습을 기리고자 하였던 것이지 갑옷을 입혀 그 분을 욕보이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의 표준영정은 갑옷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한 것도 그런 이유와 뜻을 담고 있다.
조선이라는 사회는 생명체를 죽이는 직업이나 일을 하는 것을 터부시하여 짐승을 잡는 사람을 ‘백정(白丁)’이라 하면서 최하위의 직급으로 낮추어 불렀다는 것을 상기할 일이다.

 

 

 

 


동상이란 상징성이 우선이다.
특히 멀리서 우러러보는 사람의 시각을 고려할 때 얼굴이 실제 사람의 모습보다 훨씬 크게 제작되어야 동상의 주인공이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윤덕 상국의 동상은 말이 사람을 압도하여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말만 부각된 모양이다.
최윤덕 상국의 동상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말대가리만 보이지 정작 주인공인 최윤덕 상국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동상의 주인공이 상국(相國)이라면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이지 말대가리만 보이게 한 것은 말(馬)보다 못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인가?

 

 

 

 

 

과거의 모습을 복원할 때에는 예술도 사실에 바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최윤덕 상국이 타고 있는 말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말이 아니라 유럽산 경주마의 모습을 하고 있어 역사적 사실감을 잃게 하였다. 이 역사성만 잘 지켰더라면 말대가리만 보이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동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창원광장의 최윤덕 장상 동상을 유럽산 말을 타고 전쟁이나 하는 모습으로 비하한 것은 존경 받아야 하는 인물을 웃음꺼리로 만드는 꼴이다.
그리고 말이 달리는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 하려면 달리는 모습의 말을 표현해야 할 일이지 도저히 달리지도 못하는 모양의 병신(病身) 말(馬)로 만든 것은 유감이다. 동상을 제작하려는 사람이 달리는 말을 구경도 해보지 않고 지쪼대로 말의 모양을 난도질 한 것은 예술의 기본을 무시한 행위로 생각된다. 달리는 말은 왼쪽 앞·뒤 다리를 벌리는 저런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동작을 할 수가 없다. 또한 달리는  말은 머리를 땅으로 숙이고, 꼬리도 절대로 치켜들지 않는다.

 

 

 

 


최윤덕 장상 동상에 다른 사람 연보(年譜)라?
연보(年譜)란 “사람이 한평생 살아온 내력이나 어떤 사실을 연대순으로 간략하게 적은 기록”을 말하는 것인데 최윤덕 장상 동상에는 ‘창원문화원장 문학박사 박동백’이라는 연보가 붙어 있다. 동상의 얼굴을 자신의 아들이 그린 삽화를 사용하더니 그래서 자신의 이름으로 연보를 넣었는가?
참고로 화가가 타인의 초상화를 그릴 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을 닮게 그린다고 한다. 아들이 동상의 영정을 그리고 아버지는 최윤덕의 동상에 자신의 이름을 연보로 적은 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계획 이었을까? 
국가가 인정하는 표준영정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오해와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