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지와 유허지는 완전 다른 개념이다. “정열공 최윤덕장상 연보”에는 “부북면 내곡에서 출생했다.”고 기록하여 생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유허지와는 아무른 관련이 없다. 따라서 “정열공 최윤덕장상 연보”는 수정해야 한다.
창원시는
“이 외에도 영조대 국가차원에서 간행된 『여지도서』(창원도호부, 인물조)에는 ‘최윤덕은 부북 내곡인’ 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기록은 최윤덕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공신력 있은 자료이며. ‘무동리’와 관련된 문헌 자료는 19세기까지 자료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고 답하였습니다.
창원시의 답변이 문제가 있는 것은 『여지도서』는 유허지란 뜻으로 말한 것이지 생가지의 이야기는 아니다. 결국 출생이란 생가지 이야기이다.
창원시가 말하는 19세기 당시 ‘부북 내곡’이 지금의 어느 지역을 말하는가?
창원시가 19세기 당시의 ‘부북 내곡’의 위치와 규모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밝혀주기 바란다.
또 창원시가 답변해 주실 것 중 하나는 벼슬이 가선대부 행전라병마절도사 였던 창원 구씨의 중시조인 구복한에 대한 기록과 구씨 족보에 기록된 최윤덕장상의 기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알려 주기 바란다.
끝으로 창원시는 1962년 김종하선생이 발간한 ‘창원군지’는 무시해도 되는 자료인지 답해 주기 바라며,
창원시가 최윤덕장상의 생가지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통천 최씨가에서 제시한 “정렬공 유지”의 그림은 거짓이라고 지금에 와서 답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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