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9/24 진해 천자봉에서 바라 본 웅천만의 섬들>
육지로 변한 수도는 우리말로는 ‘물섬’이라 불렸으나 한자식 이름이 등장하면서 水道(수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좋은 물이 많이 난다고해서 물섬이라는 이름이 생겨났고, 임진왜란 때에는 조선 수군에 용수를 공급했다는 설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려시대 1262년(원종 4) 2월에 “왜구가 물도(勿島)에 침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물섬을 물도(勿島)로 부르다가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서는 水島(수도)로 훈자 표기가 되었다.
<매립으로 육지가 된 수도와 윗·아랫꼬지섬 모습>
옛 수도동은 제덕동 바깥지개에서 1.5㎞ 정도 떨어진 독립된 섬으로 웅천군(熊川郡)에 속한 지역이다. 물섬 또는 수도라 불리다가 1908년(융희 2) 창원군(昌原郡) 웅읍면(熊邑面)에 편입되었다. 1910년 마산부제 실시로 마산부(馬山府)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원군 웅읍면 수도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진해시에 편입되면서 경상남도 진해시 수도동이 되었다. 2010년 진해시가 창원시와 통합되면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수도동이 되었다. 수도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웅천동 관할 하에 있다.
<천자봉에서 바라 본 육지가 된 수도동 마을 풍경>
수도동에는 굿방우·문방우 등의 바위, 굿방우산·보지산·수치봉 등의 야산, 아랫꼬지섬·윗꼬지섬·연도와의 사이에 을미도가 있다. 굿방우는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굿을 하였다는 데서, 문방우는 문처럼 생겼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서쪽으로는 아래꼬지섬과 인접하고 있다.
웅천만에는 진해구 중앙동에 남도·송도·저도·부도 등 4개, 창원시 진해구 태평동에 소율도·대율도·도투마리섬·화도·잠도[유인도] 등 5개, 창원시 진해구 덕산동에 대죽도·소죽도 등 2개,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아래꼬지도·초리도·위꼬지도·송도·수도[유인도]·연도[유인도]·우도[유인도]·웅도·음지도·소쿠리섬·개머리섬·동매도·지리도 등 13개, 창원시 진해구 웅동 2동에 쪽박도·말모도·을미도 등 3개의 섬이 각각 분포하고 있다.
윗꼬지섬은 웅천만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이 1만 9240㎡이고, 남북의 길이가 약 75m, 동서의 너비가 약 170m로 남북보다 동서의 길이가 긴 무인도이다. 아랫꼬지섬도 웅천만에 위치하며, 면적이 1만 3983㎡이고, 남북의 길이가 약 140m, 동서의 너비가 약 120m로 동서보다 남북의 길이가 조금 긴 무인도이다.
<육지로 변한 진입로에서 바라 본 수도 풍경>
최근에는 부산 진해 경제 자유 구역 건설을 위한 신항만 조성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 지역 개발로 동부 해안의 섬들이 육지화 되었다. 동북아 중심 항만과 물류 거점 항만 건설, 항만 기능 지원을 위한 첨단 복합 물류 기지 및 배후 도시 건설, 선진 해양 도시로의 도약을 위한 항만 물류 산업 육성에 기여하기 위해 2001년 9월에 부산 진해 신항만 조성 공사가 착공되었다. 공사 규모는 308만 3000㎡, 수용 인구는 1만 9000명, 사업비는 5,476억 원을 들여 대부분 완공되었다. 이 공사로 인해 동부 해안 지역 해류 흐름과 생태계가 바뀌는 등 인근 섬들의 자연 환경이 훼손되었고, 주민들의 어업 활동에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 [출처 : 창원디지털대전]
개발지역 경계를 지나 수도동 입구에서 바라보는 마을풍경 속에는 섬의 풍경이 남아 있다.
아직도 수도동 어촌계가 남아 있고 마치 육지의 어촌마을처럼 한가로운 배들이 어항에 정박하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니 공터에 운동기구들이 정비되어 있으나 이용객은 보이지 않는다. 육지로 변해서 인지 마을 주민들 중에는 젊은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작은 분교는 폐교가 되었고 접근을 할 수 없다보니 운동장엔 잡풀들만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마을 안쪽의 좁다란 골목길들은 미로처럼 얽혀있어 마을 보물찾기 등의 놀이를 한다면 꽤 재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 되었다.
마을 뒤 산으로 올라가면서 마을의 풍경을 담아 보았다. 바닷물이 넘실되었을 그곳이 육지가 되었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예측하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이 되어 있다. 그래도 저 멀리 천자봉과 수리봉·시루봉·망운봉 등 옛 풍경은 그대로 이다.
수도 뒷산에 올라보니 밭들로 개간이 되어있어 조망이 되는 곳이다. 윗꼬지섬과 연결한 방파제가 끝에는 이제 육지가 된 수도로 들어오는 배들을 위한 등대가 세워졌다.
가덕도 방향인 동쪽으로 가보니 을미도와 솔섬은 이미 육지가 되었고, 연도 역시 방파제로 둘러싸여 육지의 형태가 되었다. 우리나라 최대의 피조개 양식장은 이처럼 육지가 되었다. 그 반사적 이익은 몇몇의 기업인과 국가가 가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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