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섬 여행과 낚시

섬인 듯 섬이 아닌 웅천 연도

천부인권 2015. 10. 2. 20:00

 

2015.9.24. 웅천 천자봉에서 바라본 연도와 솔섬 일부와 수도 일부의 모습

椽島(연도)’라는 이름은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처음 나온다. 이 섬의 주민들은 어업으로 소득이 높아서 돈섬또는 쇠섬으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음과 비슷한 서까래 연자를 써서 연도로 표기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솔섬과 연도마을 그리고 개머리섬이 보이는 풍경-천자봉에서

이미 육지가 된 수도에서 동남쪽으로 2.1떨어져 있는 연도의 면적은 768000이고 가장 높은 곳은 107m이다. 해안선이 1,264m인 연도는 동북쪽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암석 해안으로 해식애가 발달해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연도를 일주할 수 있는 길은 없으며, 섬의 남쪽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한다. 섬의 중앙부에는 흰색의 무인등대가 건설되어 있어 이곳을 지나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섬의 동북쪽에 주민들의 가옥들이 분포해 있고, 마을과 마주하는 무인도인 송도와는 바다를 매립하여 육지로 변했다. 지금은 신항 개발로 인해 인근 바다가 모두 매립되어 수도와 연결되고, 육지로 변한 웅동경제자유구역과 연결되었으나 차량통행은 할 수 없고 아직도 마을에서 운영하는 여객선에 의지하여 육지로 왕래를 하고 있다.

 

연도로 가는 도선이 운행되는 괴정마을 풍경-옛 왜관 자리

 

진해에서 어업과 수산·양식업이 잘 되는 곳 중에 하나였던 연도는 우리나라 피조개 양식의 보고였으며, 낚시꾼과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지금은 바다를 매립하고 나니 주변이 오염되어 낚시꾼과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어졌다. 바다에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자연경관의 훼손과 파괴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격동의 지역이 되었다. 마을 앞에 쌓은 둑은 마을의 집보다 훨씬 높아 앞을 볼 수 없고, 갯벌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여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1차적으로는 보상이 끝난 상태이지만 바다에 생계를 유지해온 주민들은 쉽게 떠나지도 못하고 설사 떠난다 하더라도 직업이 사라지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왜관이 있던 괴정마을 옆의 제포성지 모습-현 제덕동
연도 어 촌계에서 운행하고 있는 여객선 운항  시간표
배가 출항을 하니 괴정마을과 옛 제포성지인 제덕동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매립지가 끝나는 장소에서 바라본 음지도와 솔라타워 그리고 우도 풍경
창원만의 아름다운 섬들 좌로부터 지리도, 잠도, 원전, 웅도, 웅도 뒤쪽은 초리도,  소쿠리섬(소고도)
수도의 남쪽 모습-수도 역시 남쪽 방향으로 오는 도로가 없다.
송도와 연도 모습
연도의 남쪽 모습-이미 둑이 둘러싸고 있다.
남 동쪽 방향에는 갈미도(형 제섬)와  거가대교 그리고 저도 풍경
연도의 남쪽 부분과 방파제 모습
연도와 개머리섬이 보 이는 풍경
연도의 동쪽 가덕도
토도와 부산진해 신항 모습

 

경상남도의 땅을 힘으로 빼앗아 간 부산이 하는 짓은 일본이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 우기는 것보다 더 야비한 짓이다. 경상남도는 큰 항만을 운영해 본 경험이 부족하고 세계 무대에 부산이란 이름이 더 알려져 있으니 부산으로 경상남도 땅을 빼앗아 간 짓은 잘못된 일이다. 세계 무대에서 부산이나 진해나 개진도진 아닌가? 이런 일을 자행한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 땅이라 말할까?

 

방파제 끝에 세운 등대는 일반적인 일자형 등대가 아니라 상당히 미관을 생각한 조각품 같다.
개머리섬과 연도
연도 선착장 모습-예전의 연도는 이미 사라졌다.
연도마을 입구에 있는 우물

 

여객선에서 내려 연도마을 입구에 이르면 시멘트 벽돌로 울타리를 친 우물이 보인다. 이 우물 위는 예전에는 큰 당산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얼마 크지 않은 팽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우물의 물은 현재 먹을 수 없고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연도에는 우물과 과련된 전설이 전하는데 2008년 진해시에서 발행한 진해 스토리椽島(연도)의 장사샘과 개물독메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옛날 웅천동 연도라는 섬에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괴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힘이 어느 정도로 세냐 하면, 어느 해 고기떼를 찾아 전라도로 갔을 때이다. 마침 큰 황소 두 마리가 뿔을 맞대고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양손으로 황소 뿔을 하나씩 거머쥐고는 순식간에 황소 목을 꺾어 그 자리에 주저앉혔을 정도였다. 이때 우연히 이를 본 전라도의 박씨가 배를 타고 바다를 같이 다니면서 힘을 키우자고 청하였다. 박씨의 속셈은 신씨를 눌러 자기가 제일 힘이 세다는 것을 천하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씨는 신씨의 힘을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뒤따르며 살폈다. 신씨는 매일 새벽 연도 섬 동쪽의 느티나무와 포구나무가 서 있는 장승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는 앞 바위틈에서 나오는 샘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박씨는 신씨 힘의 원천이 그 샘물의 조화에 있다고 확신하여 자신도 샘물을 마시기로 작정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신씨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박씨의 힘이 얼마나 세어졌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 큰 바위를 주워 연도의 동쪽바다로 돌 던지기 시합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날부터 둘은 몇날 며칠 동안 쉼 없이 바다를 향해 돌과 바위를 던지기 시작하였다. 결국 바위 던지기에 지친 두 사람은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때 두 사람이 던졌던 바위들이 쌓이고 쌓여 조그만 바위섬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섬을 개물독메라 불렀는데 바닷물이 빠지면 갯바닥이 드러나게 되어 독메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또 두 사람이 그 물을 마시고 장사가 되었다고 하여 장사샘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 물을 마시면 모두 장사가 될 수 있다 하여 앞 다투어 마시기 시작하였는데 이 샘물을 마시고 악인의 운명을 지닌 장사가 되거나 불구가 되는 사람이 많아져 결국 흙으로 덮어버려 현재는 찾을 길이 없다.

 

 

개머리섬으로 가는 방파제
개머리섬에서 본 풍경-낚시꾼들이 버린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주민의 호소문이 있다.
신항의 입구가 되는 연도 방파제 모습
이제 연도 마을을 구경하러 왔다.-처음부터 낙서 같은 구호들이 마을을 뒤덮고 있다.

연도와 수도는 조선시대에 제포가 개항되기 전에는 가까운 출입항이 바깥지개[괴정]였으나, 괴정이 왜관으로 변하자 왜인의 무역항이 되고, 왜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자 나루메라는 곳을 이용하게 되었다. 웅천 남산[해발 184m]으로 오르면 마당태 고개가 있다. 이 고개에서 서쪽으로 가면 제포가 되고, 동쪽으로 오르면 남산 꼭대기로 가게 되며, 남쪽으로 내려가면 모래톱과 자갈밭으로 된 작은 만곡으로 이루어진 나루메가 나온다. 이곳이 조선시대 제포개항 후 수도와 연도 주민들의 나루터였다. 이곳 나루메에도 설화가 전한다.

 

어느 날 한 어부가 웅천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데 큰 바다 뱀 한 마리가 배를 따라왔다. 바다에서 뱀을 만나면 일반적으로 불길한 징조로 여기나 그는 그 뱀을 보자 간밤에 꿈결에 나를 배에 실어주면 만선이 될 것이다.”라는 백발노인의 말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그리하여 뱀 쪽에 노를 내려 주었더니 뱀은 노를 타고 뱃전으로 올라왔다. 배에 올라온 뱀은 나루메 쪽을 보고 기어갈 듯하였다. 이를 이상히 여긴 어부는 그물을 거두어 나루메로 와서 배를 대었더니 뱀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고기를 잡으러 다시 바다로 나갔다. 신기하게도 던지는 그물마다 고기들이 가득 차 전례 없이 만선이 되었다.

 

마을 진입로에서 앞은 둑으로 막혀 있고, 영세 어민들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구호가 담장을 메우고 있다.
텅 비어 있는 연도 노인회관엔 구호들로 가득하나 그 위에는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펄럭이고 있어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를 매립한 둑에 올라보니 뻘 썩는 냄새가 많이 나고, 마을은 높은 지대의 건물만 보인다.
마을 풍경과 둑 모습을 남겨 보았다.

이곳 연도에는 우리 고유의 장례 풍습이 전래되어 왔는데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연도 여자 상여소리가 그것이다. ‘연도 여자 상여소리는 발인제 때 부르는 소리에는 회심곡을 담고 있으며, 4음보 1행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운상(運喪)할 때는 산염불이 가미된 소리로 역시 4음보 1행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또 물의 상여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어화형 하나만을 구연하는 단일형을 취하고 있다.

 

1. 하직 인사(下直人事)를 하는 출상 전야(出喪前夜)

 

출상(出喪) 전날 밤 상두꾼들이 앞소리꾼의 만가(輓歌)에 맞춰 빈 상여를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망자(亡者)가 이웃에게 하직 인사를 고하는 의식을 치른다. 망자의 하직 인사를 빌어 상두꾼들이 장례를 치르는 예행연습이라고 볼 수 있으며 마을의 잔치나 큰일을 치르는 전야제와 같은 성격을 지녔다.

 

2. 발인제(發靷祭)

 

영구가 부두로 운송되기 직전 행하는 의식이다. 발인제는 고인의 집 앞에서 행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마을 중앙에서 행한다. 고인이 평생을 살아온 정든 섬을 이제 영원히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섬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여 애도한다. 이때 부르는 소리는 인생무상, 불효 의식, 석별의 정을 담고 있는 회심곡이 중심이 된다. 먼저 상여를 어르면서 앞소리꾼이 어이화 어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하고 매기면 상여꾼들이 뒤따라 어이화 어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하고 받는다. 구연되는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세상천지 만물 중에 사람밖에 또 있던가/ [후렴 : 어어화 어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 여보시오 시주님네 내 말 잠시 들어보소/ [후렴]/ 아버님 뼈를 타고 어머님 살을 빌려/ [후렴]/ 칠성님께 명을 빌고 석가여래 복을 빌어/ [후렴]/ 세상 탄생 나가지고 한두 살에 철을 몰라/ [후렴]/ 부모은공 내 못하고 오늘 백발 잠시구나/ [후렴]/ 어제 그제 소년이더니 저녁 나절 병이 오네/ [후렴]/ 잔약한 이내 몸에 태산 같은 병이 오네/ [후렴]/ 인삼 녹용 쓰기런들 그 약인들 소용 있나/ [후렴]/ 무녀들이 굿을 한들 그 귀신들 소용 있나/ [후렴]/ 경문쟁이 데려다가 경 읽은들 소용 있나/ [후렴]/ 부르는 것 엄마로다 찾는 것이 냉수로다/ [후렴]/ 일가친척 많기런들 대신갈이 뉘 있겠노[후렴]/ 친구들이 많다 해도 동정할 이 뉘 있겠노/ [후렴]/ 삽작걸에 처사손님 날 데리러 왔다하여/ [후렴]/ 쇠뭉치로 등을 치며 어서가자 재촉하네/ [후렴]/ 서른셋 상두꾼아 요령 소리 발맞춰라/ [후렴]/ 날씨 좋고 해도 길어 많이 놀고 내가련다/ [후렴]

 

3. 운구(運柩)

 

발인제가 끝나면 관을 상여에 실어 집을 나서는데 망자의 집 앞에서 왼쪽으로 세 번을 돌고 상여의 앞부분이 집을 향해 목례하듯이 세 번을 숙여 하직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상여는 큰길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부두에 이르며 범선(帆船)으로 장지인 솔섬으로 이동하며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에 이르면 타원을 그리며 배를 한 바퀴 돌려서 혼백이 다시는 오지 못할 고향과 하직 인사를 하도록 하여 섬사람들이 건너야 할 숙명적인 통과 의식을 보여 준다. 배가 장지인 솔섬에 닿으면 미리 파 둔 모혈(摹穴)까지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이때는 상여에 줄을 매어 문상객까지 합세하여 끌어 준다. 다음은 발인제를 마치고 떠날 때 하는 소리이다.

 

북망산천 멀다더니 대문밖이 북망산이네/ [후렴 : 어어화 어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마라/ [후렴]/ 필적에는 고이피고 질 적에는 슬퍼지네/ [후렴]/ 명년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건마는/ [후렴]/ 불쌍한 사람인가 한번가면 못 오는고/ [후렴]/ 벽상에 그린 닭이 홰치거든 오실런가/ [후렴]/ 높은 산정 고목나무 움나거든 오실런가/ [후렴]/ 움이 난들 싹이 난들 온다소리 할 수 있나/ [후렴]/ 떠나는 이 마당에 자공이나 찾아보자/ [후렴]/ 우리 자공 이리 와서 노잣돈이나 많이 달라/ [후렴]/ 일가친척 많다 해도 노자 한 잎 안 놓구나/ [후렴]/ 서산에 해가지니 내 갈 길이 바쁘구나/ [후렴]/ 이내몸이 떠날 때는 인사 없이 떠날소냐/ [후렴]/ 동네어른 잘 계시오 이내 몸은 떠납니다/ [후렴]

 

연도에서 솔섬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가 400m 정도고 부두에서는 대략 500m 거리이다. 상여를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면서 구연하는 소리는 다음과 같다.

 

섬아 섬아 연도 섬아 오늘날에 이별이야/ [후렴 : 어어화 어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 고향산천 떠나가면 언제다시 또 오리까/ [후렴]/ 모진강풍 불지마라 이 강으로 건널란다/ [후렴]/ 늙고 젊고 내 친구야 신나게도 잘 가구나/ [후렴]/ 날씨 좋네 날씨 좋네 오늘날에 날씨 좋네/ [후렴]/ 인간 팔십 다 살아도 가는 길이 서글 퍼라/ [후렴]

 

4. 솔섬에 내려 장지까지

 

솔섬에는 연도 사람들의 공동묘지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개별적으로 묘소를 마련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공동묘지를 이용한다. 연도 부둣가에서 상여를 실은 배가 솔섬에 도착하면 대개는 제바이 끝 쪽에서 장지로 오른다. 솔섬은 주위가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고 장지까지 가는 길도 험하다. 따라서 노랫말 없이 뒷소리 일부인 어어화 어어화로 앞소리꾼과 상여꾼이 메기고 받으면서 장지로 오른다.

 

5. 장지에서 무덤을 만들 때

 

묘혈까지의 운구가 끝나면 바로 상두꾼들은 봉분을 만들 흙을 옮겨오게 되는데 이 고된 작업도 여자들 몫이다. 바위가 많은 솔섬은 흙이 귀하여 여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바지게, 함태기 등으로 흙과 잔디를 운반하여 봉분을 짓는다. 이때 앞소리꾼이 어어넘자 가래야또는 어어여루 가래야하고 메기면 일꾼들도 같은 소리를 반복으로 받으면서 봉분을 짓는다. 뭍에서처럼 회다지 소리달구 소리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어어여루 가래야 가래소리도 잘하구나/ [후렴 : 어어여루 가래야]/ 힘차게도 잘도 한다 우리 대맥군 잘 하누나/ [후렴]/ 떼도 이고 흙도 여서 이 봉분을 지어볼까/ [후렴]

 

6. 봉분을 다 짓고 작별을 할 때

 

봉분을 다 짓고 평토제가 끝나면 상여꾼들이 무덤 주위를 돌면서 소리를 한다. 이때 구연하는 소리는 쾌지나 칭칭나네이다. 앞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상여꾼들은 쾌지나 칭칭나네로 뒷소리를 받는다. 이는 망자를 보내고 슬픔에 젖어있는 가족들과 문상객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상여꾼들의 피로를 풀기위한 것이다. 이때도 꽹과리와 징이 동원된다. 이 역시 뭍의 내륙 지방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과정이다.

 

오늘날에 하직이야/ [후렴 : 쾌지나 칭칭나네]/ 씨 망령 들어보소/ [후렴]/ 우리 친구 떠납니다/ [후렴]/ 새 잔디로 옷을 삼고/ [후렴]/ 황토 흙을 밥을 삼고/ [후렴]/ 주야평생 누웠으니/ [후렴]/ 어느 친구 찾아올까/ [후렴]/ 내 누운 무덤 위에/ [후렴]/ 논을 친들 내가 알까/ [후렴]/ 밭을 친들 내가 알까/ [후렴]/ 한심하기 짝이 없네/ [후렴]/ 많이 노소 많이 노소/ [후렴]/ 늙고 젊고 많이 노소/ [후렴]/ 살아생전 많이 놀고/ [후렴]/ 이 시간에 이별이야/ [후렴]

 

연도로 되돌아오는 뱃길에서도 이 의식과도 같은 여흥은 계속되며 우스갯소리와 섬 아낙네들 특유의 걸쭉한 육담(肉談)으로 슬픔에 젖어 주체하지 못하는 상주를 웃기기도 하면서 바다 위에서 춤과 소리, 그리고 웃음판이 한데 어우러져 계속된다. 장례에 참석했던 모든 여인들은 배를 타고 연도로 돌아오면서 소리꾼과 함께 풍물을 치면서 망자의 혼을 위로하고 상주와 유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는 한편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험한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섬여인들의 처절한 한풀이로 끝난다.

 

 

 

돌아 오는 배안에서 붉게 물든 바다를 보았다. 이런 풍경은 10여분 후에는 사라졌다.
수도 옆을 지날 쯤 바다  위에 갈매기 떼가 있다가 비상을 한다.
점점 육지에는 불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괴정 선착장에 도착하기 전 마을 풍경을 담아 보았다.

 

창원시의 섬들 중 유인도이고 아직은 섬이라 불리는 연도를 탐방해 보았다. 섬이 육지가 되면 망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도는 그 사항이 너무나 열악했다.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는 몰라도 연도를 시민에게 개방을 하여 섬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우리들의 소중한 문화인 '연도여자상여소리'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보존할 수 있는 문화관이라도 세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