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고성 천왕점 봉수를 찾아

천부인권 2018. 4. 27. 07:13



2018. 4. 25. 고성군 충효테마파크 안내도 


고성군 대가면 양화리 산 1-1번지에 위치한 고성 천왕점봉수(固城天王岾烽燧)를 찾아 나섰다. 천왕점 봉수(해발 353m)는 1999년 8월 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21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고성군에서 가장 높은 천왕산(天王山 : 해발 581m)의 동쪽 끝 봉우리를 이룬다. 천왕산(天王山)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무량산(無量山)으로 불리다가 향토사학자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산 이름이 혼재되어 있어 혼란을 가져 온다. 혼란의 중심에는 아직도 이름을 바꾸지 않은 고성군에서 세운 안내판의 역할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봉수가 위치한 곳 산 이름은 대부분 봉화산(烽火山)이다. 이곳 등산 안내판에도 천왕점봉수를 봉화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제는 옛 지명 그대로 지명도 바꾸었으면 좋겠다.




천왕산 등산 안내도에서 표기된 봉화산


고성군에서 지방도 제1009호를 따라 가면 고성군 대가면 유흥리 247-5번지를 만나는데 이곳에 효자 이평선생 비(孝子 李平先生 碑)가 세워져 있다. 이 갈림길에서 천왕산으로 가는 유흥갈천길을 따라가면 충효테마파크라는 곳을 만난다. 이곳은 작은 주차시설이 되어 있고 입구에는 팔각정자가 있다. 고성군에서 관광자원화를 위해 효자 이평선생의 묘소와 연계해 만든 시설인데 아무런 편의시설도 없이 산속에 오솔길과 공부꺼리가 담긴 글귀만 만들어 놓았다. 한마디로 평하면 고성군의 의도와 상관없는 예산만 낭비한 공사에 불과하다.




충효테마파크을 지나 오솔길에서 바라본 팔각정자


충효테마파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등산을 시작하면 “부모에게 효도하기” 알림판이 있는 곳까지 약 500m는 거의 평지를 걷는 듯 하며, 이곳에서 천왕산 정상까지 3km이다. 또한 이곳에서 천왕점 봉수(해발 353m)까지는 경사도가 있는 계단과 제법 가파른 산길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리는 약 700m 정도이다.
송화(松花)가루가 온 산하에 흩날리는 계절이라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지 않아 등산화와 바지는 노란 송화 가루로 물들었다. 요즘 산행이 힘들지 않는 것은 등산로 곳곳에 피어난 야생화와 가막살나무 꽃, 층층나무 꽃 등 마치 산이 꽃동산처럼 지천에 꽃들이 만발하여 구경하다보면 어느 듯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곳곳에 공부꺼리가 되는 이런 표지판이 서있다.



평탄한 오솔길이 끝나는 '부모에게 효도하기'알림판이 있는 곳



제법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진다.



효자의 시묘살이 체험 장소



전망이 되는 곳에서 마을과 거류산을 바라 본다.



대나무가 에워싼 소로에서 천왕점봉수 안내판을 만나다.


현재 봉수대를 에워싸고 있는 대나무와 잡목들이 웃자라 봉수시설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머위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볼 때 채소를 길렀던 것으로 추정 된다. 큰 단점은 봉수대에서 다른 곳이 조망이 되지 않아 남쪽으로 14.68km 떨어진 통영 우산봉수나, 동쪽으로 10.8km 떨어진 고성곡산봉수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 14.06km 떨어진 고성좌이산봉수도 조망할 수 없었다. 앞으로 봉수대가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인데 서로 대(對)가 되는 봉수끼리 보일 수 있도록 잡목 제거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천왕점봉수 안내판에는 무량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봉수는 변경지방의 긴박한 사항을 중앙 또는 변경의 진영(鎭營)에 알리는 통신체제로 군사상 목적으로 설치하여 운영했다. 변경지역의 안위를 전고(傳告)할 때에는 정세의 완급에 따라 거수(炬數)로서 구별했다. 평상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둘, 적이 해안에 접근해오면 셋,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넷,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밀주징신록에는 봉수는 고려 때 시작되어 『의종(毅宗) 기사년(己巳年 1149)에 봉수(烽燧) 방식이 정해졌는데 평시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하나씩 피우되 이급(二級)이면 2번, 三級이면 3번, 사급(四級)이면 4번으로 했다. 각 곳마다 방비하는 장정이 200명인데 장정 20명에게 각 사례대로 평전(平田) 1결(結)을 주었다. 조선조의 법전에는 평시에 1거, 적의 모습이 나타나면 2거, 경계에 가까워 오면 3거, 경계를 범하면 4거, 접전이 일어나면 5거를 올리고 연일 접전이 일어나면 섶을 쌓아놓고 이리 똥(狼糞)을 사용하여 밤에는 불을 들고 낮에는 섶을 태웠다. 서울에서는 남부장(南部將)이 병조(兵曹)에 고하여 입계(入啓)하고, 지방에서는 봉장이 주진(主鎭)에 고하였다.』 「속대전(續大典)에는 불이 끊어진 곳의 봉졸(烽卒)은 극변(極邊:먼 변방)의 군사로 충당되었고, 도적이 쳐들어 왔는데 봉화를 알리지 않는 자는 참형에 처하고, 거짓으로 봉화를 올린 자는 일률(一律:사형에 처하는 죄)로 하였다. 고종 갑오(甲午-1894)에 팔도의 봉수가 폐지되었다.」
烽燧始于高麗 毅宗己巳定烽燧式平時夜火晝烟各一 二急二 三急三 四急四 每所防丁二百丁二十人 各例給平田一結 國朝典平時則一炬 賊現形則二炬 近境則三炬 犯境則四炬 接戰則五炬 連日接戰則積柴用狼糞夜則擧火晝則燔柴 京則南所部將告兵曹入啓外則熢將告主鎭 續大典絶火處烽卒極邊充軍 賊到不報火者處斬 僞擧熢火者用一律 高宗甲午廢八路烽燧





봉수의 종류에는 경봉수(京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가 있다. 봉수의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으로는 봉수군(烽燧軍)과 오장(伍長)인 감고(監考), 오원(伍員)이 있다. 이들은 반드시 봉수대 인근에 거주하는 자로 배속하도록 했는데 봉수의 3종류에 따라 시설 및 정원에 차이가 있었다. 모든 봉수지에는 오장 1인이 근무하였고, 경봉수에는 2명, 연변봉수에는 5인, 내지봉수에는 3인이 근무했는데 대체로 10일 마다 교대로 임무를 수행 했다.





이곳 고성천왕점봉수는 거제 가라산봉수에서 초기하는 제2거 간봉(2)의 연변봉수이다. 봉수대는 방호벽, 연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전체 단면은 ‘凹’자형으로 중앙부는 평탄면이 조성 되어 있다. 방호벽의 규모는 장축 23m, 단축 19m, 잔존 외벽 높이는 3m 정도까지 남아 있다. 방호벽 석축 상부는 1.5~3.3m정도로 불규칙하게 석축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 서쪽 방호벽이 잔존상태가 양호하다. 연조는 서쪽 방호벽에 인접하여 3기가 확인 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으로 연조간 거리는 3~3m정도 이다. 방호벽 남쪽에는 너비 0.7m 정도의 출입시설이 확인 되었으며 봉수의 서쪽 사면에서는 우물이 확인 되었는데 규모는 지름 1m, 깊이 0.5m정도 이다.





세종 7년(1425)에 편찬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고성현 봉수조에는 고성현의 봉수를 이렇게 기록 했다.
미륵산 봉화-현의 남쪽 49리 90보쯤에 있는데 동쪽으로 보면 거제현의 가라산 봉화가 있고 거리가 수로로 30리이다. 북쪽으로 보면 우산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육로로 50리 90보이다.
우산봉화로부터 서쪽으로 보면 좌이산 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육로로 60리 60보이고 북쪽으로 보면 천왕점 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40리 380보이다.
천왕점봉화로부터 동쪽으로 보면 곡산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30리 307보이다.
곡산봉화로부터 동쪽으로 보면 진해현 가을포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50리이다.
좌이산봉화로부터 서쪽으로 보면 진주관내 각산향 주산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53리 22보이다.
[彌勒山烽火 在縣南四十九里九十步許東望巨濟縣地加羅山烽火相去水路三十里 北望縣地牛山烽火相去陸路五十里五十步 自牛山烽火西望 佐耳山烽火相去陸路六十里六十步 北望天王岾烽火相去四十里三百八十步 自天王岾烽火東望曲山烽火相去三十里三百七步 自曲山烽火東望鎭海縣地 加乙浦烽火相去五十里 自佐耳山烽火西望晉州任內 角山鄕主山烽火相去五十三里二十二步]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고성현 기록에는 –봉화가 5곳이니, 미륵산은 현 남쪽에 있는데 동쪽으로 거제 가라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우산에 응한다. 우산은 서쪽으로 좌이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천왕점에 응한다. 천왕점은 동쪽으로 곡산에 응한다. 곡산은 동쪽으로 진해 가을포에 응한다. 좌이산은 서쪽으로 진주 각산향의 주산에 응한다.
[烽火五處, 彌勒山在縣南, 東准巨濟加羅山, 北准牛山, 牛山 西准佐耳山, 北准天王岾, 天王岾 東准曲山, 曲山 東准鎭海加乙浦 佐耳山 西准晉州角山鄕主山]


예종 원년(1469)에 편찬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고성현 연대봉화(煙臺烽火)에 따르면 현의 동쪽에 있는 미륵산 봉화는 남쪽으로 거제 가라산 봉화와 서로 마주 보고, 서쪽으로는 현 동쪽의 우산봉화와 마주본다. [縣東彌勒山烽火 南與巨濟加羅山烽火相准 西與縣東牛山烽火相准]
우산봉화는 서쪽으로 좌이산 봉화와 서로 마주본다. [牛山烽火 西與佐耳山烽火相准]
좌이산 봉화는 서쪽으로 진주 각산봉화와 마주 보고, 북쪽으로는 천왕점 봉화와 마주 보고, 동쪽으로는 곡산 봉화와 마주 보고, 또 진해 가을포 봉화와 마주 본다. [佐耳山烽火 西與晉州角山烽火相准 北與天王岾烽火相准 東與曲山烽火相准 又與鎭海加乙浦烽火相准]


성종 12년(1481) 50권으로 편찬하고, 중종 25년(1530)에 55권 25책으로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성현 봉수조에는 이렇게 기록 했다.
미륵산봉수 동쪽으로 거제현 계룡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우산에 응한다. [彌勒山烽燧 東應巨濟縣鷄龍山 北應牛山]
우산봉수 남쪽으로 미륵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좌이산에 응하며 북쪽으로 천왕점에 응한다. [牛山烽燧 南應彌勒山 西應佐耳山 北應天王岾]
천왕점봉수 동쪽으로 곡산에 응하고 남쪽으로 우산에 응한다. [天王岾烽燧 東應曲山 南應牛山]
곡산봉수 동쪽으로 진해현 가을포에 응하고 서쪽으로 천왕점에 응한다. [曲山烽燧 東應鎭海縣加乙浦 西應天王岾]
좌이산봉수 동쪽으로 우산에 응한다. [佐耳山烽燧 東應牛山]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신증 된지 130년이 지난 현종 때 편찬 된 지리지로 임진왜란 후의 상항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 자료의 고성현 봉수조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미륵산봉수 동쪽으로 거제현 계룡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우산에 응한다. [彌勒山烽燧 東應巨濟縣鷄龍山 北應牛山]
우산봉수 남쪽으로는 미륵산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좌이산에 응하며 북쪽으로는 천왕점에 응한다. [牛山烽燧 南應彌勒山 西應佐耳山 北應天王岾]
천왕점봉수 동쪽으로는 곡산에 응하고 남쪽으로는 우산에 응한다. [天王岾烽燧 東應曲山 南應牛山]
곡산봉수 동쪽으로 진해현 가을포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천왕점에 응한다. [曲山烽燧 東應鎭海縣加乙浦 西應天王岾]
좌이산봉수 동쪽으로 우산에 응하고 있다. [佐耳山烽燧 東應牛山]




동쪽의 곡산봉수가 조망되는 곳


순조 32년(1832)에 편찬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의 고성읍지 봉수조에는 이렇게 기록 한다.
미륵산 동쪽으로는 거제 가라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본부의 우산에 응한다. [彌勒山 東應巨濟府加羅山 北應本府牛山]
우산 남쪽으로 미륵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천왕산에 응한다. [牛山 南應彌勒山 北應天王山]
천왕산 남으로는 우산에 응하고 동쪽으로는 곡산에 응한다. [天王山 南應牛山 東應曲山]
곡산 동으로 진해 갈포봉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천왕산에 응한다. [曲山 東應鎭海乫浦峰 西應天王山]
좌이산 남쪽으로 사량주봉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진주 각산에 응한다. 별장 5인이 있다. [佐耳山 南應蛇梁主峰 西應晉州角山 別將五人]





1940년 간행한 교남지(嶠南誌) 고성군 봉수조에는 이처럼 기록 했다.
미조산봉수 남쪽으로 거제 가라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우산에 알리는데 서로의 거리가 수로 25리이다. [彌助山烽燧 南應巨濟加羅山 北報牛山相距水路二十五里]
우산봉수 남쪽으로 미조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천왕산에 알리는데 서로의 거리가 육로로 30리이다. [牛山烽燧 南應彌助山 北報天王山相距陸路三十里]
천왕점봉수 남쪽으로 우산에 응하고 동족으로는 곡산에 알리는데 서로의 거리가 육로로 30리이다. [天王岾烽燧 南應牛山 東報曲山相距陸路三十里]
곡산봉수 서쪽으로 천왕점에 응하고 동쪽으로는 진해 가을포에 알리는데 서로 거리가 30리 이다. [曲山烽燧 西應天王岾 東報鎭海加乙浦相距三十里]
좌이산봉수 남쪽으로 사량진에 응하고 북족으로는 진주 각산에 알린다. [佐耳山烽燧 南應蛇梁鎭 北報晉州角山]




경남지역의 봉수Ⅱ-천왕점 봉수대 평면도


* 거제 강망산봉수 거제 옥녀봉봉수거제 가라산봉 ⇔ 한산도 한배곳봉수 통영 미륵산봉수 통영 우산봉수 고성 천왕점봉수고성 곡산봉수 ⇔  창원 가을포봉수 ⇔ 함안 파산봉수 ⇔ 의령 가막산봉수 ⇔ 초계 미타산봉수 합천군 미숭산봉수[봉수노선은 제2거 간봉(2)]


[출처 및 참고]
경남지역의 봉수Ⅱ-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2013.11.30.)
고성사료집(제1권)-고성문화원(2005.12.31.)
조선시대의 연변봉수-김주홍(2010.11.5.)
경남의 성곽과 봉수-도서출판 선인(2017.2.28.)
고성군지 1권-고성군(2015.12.31.)
국역 밀주징신록-밀양문화원(201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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