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전면 오서리 월안마을 안동권씨 죽산재 竹山齋

천부인권 2020. 3. 23. 13:43

2020.7.7. 진전면 월안리 안동권씨 죽산재
2020.3.20. 진전면 오서리 월안마을 안동권씨 죽산재竹山齋 전경


창원시 진전면 오서리 985-4(월안2길 31-28)에는 안동권씨 권맹래權孟來를 향사享祀하는 재실인 죽산재竹山齋가 있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41m로 표시하고 「위도 35°06'22"N 경도 128°24'27"E」를 가리킨다.
죽산재竹山齋는 이곳 재실이 위치한 월안마을의 다른 이름을 빌려 제목 했으며 6세손 사인士人 영택寧宅의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가 타국他國살이를 통해 벌은 돈으로 그 비용을 희사喜捨해서 지은 건물이다. 솟을대문에는 ‘경화문敬和門’이라 편액 했고 본당本堂은 ‘죽산재竹山齋’라 제목 했으며 4개의 기둥에는 주련柱聯을 걸었으며 내부 마루에는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이 지은 기문이 걸려 있다. 재실 앞에는 꽤 넓은 공터에 죽산재竹山齋라 새긴 비갈이 서있다.



2020.3.20. 진전면 오서리 월안마을 안동권씨 죽산재竹山齋 솟을대문

 

경화문敬和門
2020.3.20.진전면 오서리 월안마을 안동권씨 죽산재竹山齋

 

 

2020.3.20. 진전면 오서리 월안마을 안동권씨 죽산재竹山齋 편액

 

 

 

 

竹山齋記
有閥有齋古也 夫有先塋 則不可無齊宿 寓慕之堂矣 有族姓則不可無會 宗族倫之所矣 此人家齋舍之建 必於古里之傍 望墓之地者 爲是故也 鎭海縣之西 有竹谷里之月安 安東權氏世居之權氏之先 有處士諱孟來字聖淑 其生在國朝英廟庚戌而歿後 與其配金海許氏雙墳于 所居馬上臺池洞良坐原 世代已二百年之久 戶且繁衍 而以尙無寓慕之齋 耿耿齎恨 處士之六世孫 士人寧宅配全州李氏 中歲喪所天 備經風塵 於殊邦敎養三子 以成家業 而專擔肯構之力 是豈易觀於澆漓如今日 而洵無愧爲處士之孝孫婦也 事役旣竣扁以竹山齋者 盖取其地名也 處士之七世孫 五可收問議屢訪余 詳道其經委¹⁾請爲之記 余於權氏曾有先誼 檜聞其世美矣 世以詩禮相傳 其行德文猷諸邑罕 有此焉處士 公雖無赫然之蹟 而隱居行義讀 古人之書守 古人之道者 其存心養德無非 爲子孫之嘉謨則實 爲一門垂統之祖 而宜膺子孫之敬慕矣 且扁以竹山齋者 其旨淵矣 夫君子之處 世篤守家學之正 而不惑於邪岐者有似乎 竹之深根 固本不撓²⁾於 風霜之獰也 貞潔其志行 而不混於俗化者有似乎 竹之中虛外直剛而不屈也 處士之後 輩出名碩世趾厥美 當倭奴之呑 幷我邦也 有以復國之倡 聳聲遠通 則豈非彷不於竹之淸剛者也 然則其取義以竹者允矣 爲名實相符 而居是齋者之不可不知也 余於是嘉 其權氏追慕之誠 而亦贊其非世之侈 其名而無其實者此也 是以樂聞其事 而不辭於述也
歲在戊寅初夏 完山 李雨燮 記

 

죽산재기 竹山齋記
문벌門閥이 흥성興盛하여 재실齋室을 건설함은 예로부터 우리의 전통傳統이다. 대개大槪 선영先塋³⁾이 있으면 제계齊戒하고 추모追慕하는 재당齋堂이 있어야 하고 씨족氏族이 있으면 종족宗族이 회합會合하여 인륜人倫을 돈독敦篤히 하는 처소處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가人家의 재각齋閣 건립建立을 반드시 마을 옆과 선영先塋의 근지近地에 마련하는 까닭이다. 옛 진해鎭海 고을 서西쪽 죽곡리竹谷里 월안月安마을은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세거지世居地이다. 권씨權氏의 선조 처사處士의 이름은 맹래孟來고 자字가 성숙聖淑인데 국조國朝 영조英祖 경술년庚戌年에 탄생誕生하여 별세別世 후 그 배위配位 김해허씨金海許氏와 마상대지동량좌원馬上臺池洞良坐原에 쌍분雙墳으로 모셨다. 세대가 이미 200년이 흘러 자손子孫은 번창繁昌 하였으나 아직 추모재당追慕齋堂이 없으므로 항시恒時 한恨스러워 여겼다. 처사處士의 6세손 사인士人 영택寧宅의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중년中年에 남편의 상喪을 당하고 풍진고해風塵苦海⁴⁾의 역경歷經을 겪으면서 다른 나라에서 3형제를 교육하고 길렀으며 가업家業을 이루었고 재실齋室을 건립建立하는 재력財力을 전담專擔하였으니 어찌 각박刻薄한 오늘에 보기 쉬운 일이겠는가. 참으로 처사공處士公의 효손부孝孫婦라 할지로다. 사역事役을 마친 뒤에 죽산재竹山齋라 이름 한 것은 그 지명地名을 취함이다.
처사공處士公의 7세손 오가五可가 문중공의門中公議⁵⁾로 나를 누차심방屢次尋訪⁶⁾하여 그 경위經緯를 설명하고 기문記文을 간청함이 있었다. 나와 권씨權氏는 일찍부터 선의先誼가 두터웠고 그 세덕世德은 익히 알고 있었다. 대대로 시례고풍詩禮古風⁷⁾을 전승傳承하였고 행덕行德과 문학文學은 근읍近邑에서 추중推重을 받았다. 처사공處士公이 비록 혁혁赫赫한 사적事蹟은 없으나 은거행의隱居行義⁸⁾하여 고인古人의 글을 읽고 고인古人의 도道를 지니시어 그 인심행덕仁心行德은 자손子孫의 오랜 가법嘉法으로 전해 왔으니 진실로 일가문一家門의 전통이었고 또한 자손의 경모敬慕를 받으실 분이다. 재호齋號를 죽산재竹山齋라 하니 그 의의義意가 깊다 군자君子의 처세요법處世要法⁹⁾은 가정학문家庭學問의 전통을 지키고 사도邪道에 유혹誘惑 되지 않는 것이 대의 뿌리가 깊고 풍상風霜에 동요動搖 되지 않는 것과 같으며 의지意志가 정결貞潔하여 시조時潮에 혼탁混濁 아니함은 대의 속은 비고 밖은 곧아 굴屈하지 아니함과 같다. 처사공處士公의 후손에 명사名士가 배출輩出 되었고 한일합병韓日合倂 당시에 독립운동獨立運動의 선봉先鋒이 되어 원근遠近에 풍성風聲이 진동振動하였으니 어찌 송죽松竹의 청강淸剛한 의절義節이 아니겠는가. 이 재명齋名을 죽산재竹山齋라 함은 참으로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명칭名稱이니 이 죽산재竹山齋 후손은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나와 권씨權氏의 추모지성追慕之誠¹⁰⁾을 가상嘉尙히 여기고 요사이 그 명칭名稱만 하려하고 실지實地가 없는 형식形式에 비比할바 아니다. 이러므로 그 사실의 전말顚末을 듣고 이에 즐거이 기문記文을 서술敍述한다.
무인戊寅(1998)년 초여름에 이우섭李雨燮

 

【주석】
經委¹⁾ : ‘經委’는 ‘經緯’로 원문을 바꾸어 해문 함.
不撓²⁾ : ‘不撓’는 ‘不搖’로 원문을 바꾸어 해문 함.
선영先塋³⁾ : 조상의 무덤
풍진고해風塵苦海⁴⁾ : 세상世上에 일어나는 어지러운 일과 괴로운 일
문중공의門中公議⁵⁾ : 한 일족一族의 의론議論를 거친 일
누차심방屢次尋訪⁶⁾ : 여러 차례에 걸쳐  찾아가서 만나 봄
시례고풍詩禮古風⁷⁾ : 시詩와 예禮의 옛 풍습이 있다는 것으로 즉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는 교훈이 옛 풍습으로 있다는 뜻이다.
은거행의隱居行義⁸⁾ : 숨어살면서 그 뜻을 추구하며 의義로움을 행한다.
처세요법處世要法⁹⁾ :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에서 살아가는 중요한 방법
추모지성追慕之誠¹⁰⁾ :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잊지 않으며 정성을 다하는 것

 

 

 

 

 

 

죽산재竹山齋 주련柱聯
嵬然齋宇月安之陽 높은 재우齋宇는 분명히 월안月安의 볕이라
詩禮相傳花山舊閥 시詩와 예禮의 교훈 서로 전하는 안동의 오랜 문벌이네
竹爲淸德和以庇宗 대나무 같은 맑은 덕이 화목하게 종족을 덮고
子性千秋敬慕勿替 자손의 성품을 오래도록 공경하고 사모하여 바꾸지 말라.

 

출처 및 참조
진전면지-진전면지 편찬위원회/삼덕정판인쇄사(2001.9.15.)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