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집천龜巖集天』은 구암龜巖 이정李楨(1512~1571)의 시문詩文을 모아 1641년(崇禎十四年)에 발간한 『구암집龜巖集』을 이인섭李仁燮이 번역하여 2002년 8월 사천문화원 오필근吳弼根 원장이 다시 발행한 책으로 이화문화사에서 인쇄했다.
떡제본의 책은 권두에 이정李楨의 존영尊影과 구계서원龜溪書院, 구산사龜山祠의 사진을 넣고 이정李楨의 친필과 인석도仁說圖를 부쳤으며 오필근吳弼根의 발간사, 사천시장, 구계서원 이영규 이사진, 시의장의 축간사를 부치고 책을 번역한 (사)한국서화교육협회 이인섭李仁燮 이사장의 ‘구암집 국역을 마치고’를 실었다. 그리고 1639년 조경근趙絅謹의 구암선생문집서의 영인본을 넣고 원문과 번역 글을 싣고, 목차를 붙이고 원문과 국역한 글을 실었다. 말미에 1640년 허목許穆이 찬한 발跋의 영인본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190cm, 세로 260cm이고 190p로 구성됐으며 2023년 6월 ‘즐겨찾기’에서 오천원에 구입해 소장하게 됐다.
구암龜巖 이정李楨(1512~1571)은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 맹주(孟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번(以蕃)이고,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담(湛)이며, 어머니는 진주 정씨(晉州鄭氏)이다.
1536년(중종 31) 진사로 별시 문과에 장원,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다. 다음 해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정랑을 거친 뒤 연로한 부모 봉양을 위해 경상도 선산부사로 나갔다가 1552년(명종 7) 사성, 이듬 해 청주목사를 지냈다. 이 때 선정을 베풀고 효행이 뛰어나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되었다. 1555년 왜구가 호남성에 침입하자 군기를 엄정히 해 구원하러 가자 그 위엄에 눌려 왜구들이 도망하였다. 1559년 우부승지·형조참의·좌부승지 등을 거쳐 이듬해 병조참의·대사간·호조참의·예조참의를 지내고, 경주부윤으로 나가 옛 신라의 열왕묘(列王墓)를 보수하고, 서악정사(西嶽精舍)를 세워 후진 교육에 힘썼다. 1563년 중앙의 요직에 잠시 있은 뒤 다시 전라도 순천부사로 나가 갑자사화 때 사사된 김굉필(金宏弼)을 위해 경현당(景賢堂)을 건립, 그를 제사하게 하였다. 1568년(선조 1) 홍문관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고향에 구암정사(龜巖精舍)를 지어 동쪽에는 거경재(居敬齋), 서쪽에는 명의재(明義齋)를 만들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어릴 때 송인수(宋麟壽)로부터 배우고 성장한 뒤에는 이황(李滉)과 교유하였다. 성리학에 밝았다 한다. 사천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구암문집』· 『성리유편(性理遺編)』·『경현록(景賢錄)』·『논상례(論喪禮)』·『한훤보록(寒暄譜錄)』·『열성어제(列聖御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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