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산시집(蓬山詩集)』은 부산의 대표적인 근현대 한시 동호회였던 '봉산음사(蓬山吟社)'의 회원들이 읊은 시를 모아 발행한 책이다. 이 책을 2026년 5월 14일 헌책방 「훈민정음(북코아)」에서 3천원에 구입했을 때는 해마다 발행하는 연속간행물인 줄 몰랐다. 이 책을 검색하던 중 부산광역시 동구에서 운영하는 「동구E-Book」에서 『봉산시집 22~32권』이 실려 있어 알게 됐다. 『봉산시집 22권』은 2013년 9월에 발행됐고, 『봉산시집 32권』은 2023년 9월에 발행되어 10여 년간 발행해 온 책이다.
소장하게 된 『봉산시집(蓬山詩集)』은 1986년 5월에 남고(南皐) 김정주(金廷柱)가 발행했다. 김정주(金廷柱)가 남긴 서문(序文)을 보니 소장한 이 책이 『봉산시집(蓬山詩集)』의 창간호인 것 같다. 책은 양장본으로 세로글씨에 순 한문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9.6cm, 세로 26.6cm이며 244쪽이다.
권두에 1983년 사옥중수기념 사진과 1957년 사옥매입기념 사진이 붙어 있고, 시집의 간행을 축하하는 글귀를 붙치고, 목록을 기록했으며 김정주(金廷柱) 외 5명의 서문(序文)이 있다. 이재락(李在洛)이 쓴 봉산정기(蓬山亭記)를 기록한 후 회원들의 시와 정면 사진을 붙여 두었다. 권말에는 정헌교(鄭憲敎), 허채(許棌), 서연민(徐延玟)이 쓴 각각의 발문(跋文)이 있다.











蓬山詩集序
釜山是國中大都也 市街繁昌 産業隆盛 去辛卯秋 政府機關一時遷移于 此人口急增 戶過百餘萬之巨港矣 後有九德山 靈峰 瓊岳 左右羅列 奇巖盤石 上下碁布 溪草片花 呈奇效異 前臨大海 遠方珍怪 百家衆技 朝暮航之 鳥音卉服 比肩交易 往來無常 實是名港名區也 其於溫泉 海浴 寺刹 樓臺等 名勝古蹟 不可勝數矣 距今三十八年前戊子春 嶺右多士聚合齊議 而結社星期 有會嘃咏暢叙 名曰蓬山吟社 盖九德山之一名蓬山故 因而名之者也 自是或理屐深山 或駕舟幽壑 逍遙自適 嘗艷慕古人之遊 而尤感於香山九老之風流 然尚無一定會合之所 齎恨彌久 何幸九年後丙申 社屋買入之議 付於衆論 而敀一各盡心合力 乃成臣業 以余年少 亦檐前衛一臂之後 巍竣傑構 逈出於水晶之高塢 於是山若增其輝 水若增其淸 朝輝夕陰 莫不變態 而草木動喜色 禽鳥送好音 港都唯一之文化殿堂 是也是以聞嚴而會者 漸增社員數至於百數十人 皆白髮老儒 日優遊其上 有酒必飲 飲後少吟吟 則口誦周召之詩 心醉唐虞之世 尚友千古 怡怡然囂囂 然不知老之將至 豈不美哉 癸亥年 余被任社首 觀其社之現況 則有二大急先務 一曰社屋重修也 二曰詩集出刊也 年老社員幾至他界 社屋亦年久歲深 不堪風雨 而有倒壞之慮 故余卽時付議重修 無一人不參 而衆議攸同 各出誠金 以敦改修之巨役幸矣 又社員諸君子 每良辰美景 命酒呼韻 悲歌慷慨練之 以賡風泉之詩所樂至矣 然尚無詩集之刊行 以未遑之事 迄至于今矣 故今欲蒐集全員所製之詩 付之剞劂 須於各員則此實 當面之一事業也 執不贊成乎 若成冊印刊後 置之案上 其於無聊之時 酒闌不寢之夜 引卷而風咏 可以把僉員之襟韻 又可以開自放之吟唇 而挑逸興 則是集也 可以爲珍貴之籍矣 故余不勝欣感 而忘拙叙實如右云甭。
檀紀四三一九年丙寅二月 日
蓬山吟社長 南皐 金廷柱 序

봉산시집서(蓬山詩集序)
부산(釜山)은 나라 안의 큰 도시이다. 시가는 번창하고 산업은 융성하다. 지난 신묘년(1951년, 6·21 전쟁 당시) 가을에 정부 기관이 일시에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인구가 급증하여, 현재는 가구 수가 백만여 호를 넘는 거대한 항구가 되었다.
뒤편에는 구덕산(九德山)이 있어 신령스러운 봉우리와 아름다운 산등성이가 좌우로 나열되어 있고, 기이한 바위와 너럭바위들이 위아래로 바둑판처럼 깔려 있으며, 계곡의 풀과 한 조각 꽃들은 기이함과 신비함을 뽐내고 있다. 앞은 큰 바다에 임해 있어서 먼 곳의 희귀하고 괴이한 물건들과 온갖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을 가진 배들이 아침저녁으로 항해해 온다. 새 같은 소리의 말을 쓰는 외국인과 기이한 옷을 입은 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무역하며 가고 오는 것이 상례가 없으니, 실로 이곳은 이름난 항구이자 명승지이다. 그 밖에 온천과 해수욕장, 사찰과 누대 등 명승고적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무자년(1948년) 봄, 영남 우도(경상우도)의 많은 선비들이 함께 모여 의논하고 결사(結社)할 기약을 정하였다. 함께 모여 시를 읊조리고 노래하며 마음속 회포를 시원스레 나누었으니, 그 이름을 '봉산음사(蓬山吟社)'라 하였다. 대개 구덕산의 또 다른 이름이 '봉산(蓬山)'이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로부터 혹은 나막신을 끈 매고 깊은 산에 가기도 하고, 혹은 그윽한 골짜기에서 배를 몰기도 하며 유유자적 노닐었다. 일찍이 옛사람들의 노님을 부러워하고 동경했으며, 특히 당나라 백거이의 '향산구로(香山九老)'의 풍류에 더욱 감동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일정한 회합의 장소가 없어서 한스러움을 품은 지가 무척 오래되었다.
어찌나 다행인지 9년 뒤인 병신년(1956년)에 사옥(社屋)을 매입하자는 논의가 여러 사람의 공론에 붙여졌고, 귀결되자 각자 마음을 다하고 힘을 합쳐 마침내 큰 업적을 이루어냈다. 나(김정주) 역시 젊은 나이로 처마 앞에서 한 팔을 보태어 호위했으니, 높고 웅장하게 지어진 걸작의 건축물이 수정동의 높은 언덕 위로 멀리 솟아오르게 되었다. 이에 산은 그 빛을 더한 듯하고 물은 그 맑음을 더한 듯하며, 아침의 햇살과 저녁의 그늘이 변화무쌍하지 않음이 없고, 초목은 기쁜 색을 띠고 새들은 좋은 소리를 보내오니, 항구 도시의 유일한 문화 전당이 바로 이곳이다.
이 때문에 명성을 듣고 엄숙히 모여드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사원의 수가 백수십 명에 이르렀다. 모두 백발의 늙은 유학자들로 매일 그 위에서 여유롭게 거닐며, 술이 있으면 반드시 마시고 마신 후에는 나지막이 시를 읊조렸다. 시를 읊조릴 때는 입으로 주나라와 소나라의 시(시경의 국풍)를 외우고, 마음은 요순시대(唐虞之世)에 취하며,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아 기뻐하고 자족하면서 늙음이 장차 다가오는 줄도 알지 못하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계해년(1983년)에 내가 사수(社首, 음사의 우두머리)로 임명되어 우리 음사의 현황을 살펴보니, 두 가지 큰 급선무가 있었다. 첫째는 사옥을 중수하는 것이요, 둘째는 시집을 발간하는 것이었다. 연로하신 사원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고 사옥 또한 연대의 보냄이 오래되고 깊어져 풍우를 견디지 못해 무너질 염려가 있었다. 이에 내가 즉시 중수할 것을 안건으로 부치니,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는 이가 없고 여러 사람의 뜻이 같아 각자 정성 어린 돈을 내어 다행히 개보수하는 큰 역사를 돈독히 마쳤다.
또한 사원 여러 군자들께서 매번 좋은 시절과 아름다운 경치(良辰美景)를 맞이할 때마다 술을 가져오게 하고 시운(詩韻)을 불러, 슬프게 노래하고 강개하게 연마하며 바람과 샘물 같은 시(자연을 노래한 시)를 화답하여 이으니 그 즐거움이 지극하였다. 그러나 아직 시집의 간행이 없었으니, 미처 겨를이 없었던 일로 인하여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전 회원들이 지은 시를 수집하여 책판에 새겨 인쇄(간행)하고자 하니, 모름지기 각 회원에게는 이것이 실로 당면한 하나의 큰 사업이다. 어찌 찬성하지 않겠는가? 만약 책으로 이루어져 인쇄해 간행한 뒤 책상 위에 얹어두면, 무료한 때나 술자리가 끝나고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책을 끌어당겨 나지막이 읊조림으로써 여러 회원들의 가슴속 고상한 운치를 붙잡을 수 있고, 또 스스로 자유롭게 읊조리는 입술을 열어 숨은 흥취를 돋울 수 있을 것이니, 이 시집은 참으로 귀중한 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내가 기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졸렬(拙劣)함을 잊고 사실을 위와 같이 서술하는 바이다.
단기 4319년(1986년) 병인 2월 일
봉산음사장 남고 김정주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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