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명신 보문각 대제학통계강선생실기(高麗名臣 寶文閣 大提學通溪姜先生實記)』는 진주강씨 박사공파(晉州姜氏 博士公派) 7세 통계공(通溪公) 강회중(姜淮仲,미상∼1421년)의 행적의 기록을 모아 「진주강씨 통계공파종회(晉州姜氏 通溪公派宗會)」에서 발간위원회를 꾸려 1983년 5월에 발행하고 인쇄는 일광사가 했다.
2026년 5월 15일 「도토리중고서적(북코아)」에서 6천원에 구입했으며, 양장본으로 세로글씨에 국역을 덧붙였고 크기는 가로 16.8cm, 세로 23.6cm이며 374쪽이다.
권두에 경기도 고양군에 위치한 묘소와 신도비, 경덕제(景德齋)의 사진을 실었고, 경북 상주군에 위치한 경덕사(景德祠)의 사진도 함께 실었다. 목차를 붙인 후 통계종회장(通溪宗會長) 강신욱(姜信彧)의 서문을 넣고, 강계중(姜桂重), 강봉희(姜鳳熙), 강신곡(姜信珏)의 축간사를 싣고 강신혁(姜信赫)의 발문을 붙였다.

강회중(姜淮仲,미상∼1421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보(仲父), 호는 통계(通溪). 부친은 공목공(恭穆公) 강시(姜蓍)이고, 강회백(姜淮伯)의 아우이다. 전처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판사(判事) 남징(南徵)의 딸이고, 후처는 전주최씨(全州崔氏)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성주지사(星州知事) 최영(崔寧)의 딸이다.
1398년(태조 7) 4월 궁성을 쌓던 인부들을 왕명보다 먼저 놓아 보낸 죄로 외방에 귀양 보내졌다가, 10월에 좌우사간대부(左右司諫大夫)가 되었다. 1415년(태종 15) 신정을 하례하기 위해 중국에 다녀왔고, 1417년(태종 17) 함길도도순문사(咸吉道都巡問使)가 되었다가 무고죄로 갇혔으며, 1418년(태종 18)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겸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 인수부윤(仁壽府尹)을 역임하였고, 이듬해에 한성부윤(漢城府尹)‧공조참판(工曹參判)‧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고려 사직이 망할 때 통계선생 강공(姜公) 마음 속으로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기로 맹서하고 화(禍)를 입거나 복을 누리는데 굴복하거나 흔들리지 아니하여 두문동 여러 선비들과 같이 하였으니 백세를 두고 뛰어난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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