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2

창원향교는 국채보상운동 시발지

IMF(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사태가 일어났던 1997년 말 지도자의 판단 실수로 나라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굴욕을 겪었을 때 대한민국 민초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일이 ‘금 모으기 운동’이었던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인 1907년 2월 11일 대한제국이 짊어진 일본에 대한 재정적 빛을 민초(民草)들의 모금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려는 운동이 창원향교 유생들로부터 분연히 일어났으니 이를 일러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의 시작이라 말한다. 일제 통감부와 일진회 등의 무자비한 방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창원시 용호동에 있는 ‘경남도민의 집’에 가면 뼈아픈 역사의 한 토막을 알려주는 ‘국채보상운동 회문(國債報償運動 回文)’ 사본이 놓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