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지 2

최윤덕 장군 생가지에 대한 이견

생가지와 유허지는 완전 다른 개념이다. “정열공 최윤덕장상 연보”에는 “부북면 내곡에서 출생했다.”고 기록하여 생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유허지와는 아무른 관련이 없다. 따라서 “정열공 최윤덕장상 연보”는 수정해야 한다. 창원시는 “이 외에도 영조대 국가차원에서 간행된 『여지도서』(창원도호부, 인물조)에는 ‘최윤덕은 부북 내곡인’ 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기록은 최윤덕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공신력 있은 자료이며. ‘무동리’와 관련된 문헌 자료는 19세기까지 자료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고 답하였습니다. 창원시의 답변이 문제가 있는 것은 『여지도서』는 유허지란 뜻으로 말한 것이지 생가지의 이야기는 아니다. 결국 출생이란 생가지 이야기이다. 창원시가 말하는 19세기 당시 ‘부북 내곡’이..

최윤덕 장상 연보 수정필요

창원 용지역사공원에 세운 최윤덕 장상 연보는 엉터리 기록이므로 수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역사를 만든 사람에게 그 비용을 청구해야 할 것이다. 금석문에 기록한 연보를 보면 “고려우왕 2년(1376) 5월 16일 창원부 북면 내곡리에서 양장군 최운해 장군의 장남으로 출생하다. 6세에 모친 창원이씨 별세(양수척에게 위탁)”라 기록했다. 최윤덕 장군의 출생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을 하면서 태어난 곳은 엉터리로 적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최윤덕 장상 생가 터 고증 중단되나’라는 제목의 경남도민일보 2011년 3월 24일자 이일균 기자의 기사에 의하면 최씨 문중에서 제공한 목판본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 목판본에 의하면 ‘정열공 유지 창원북면’이라 적고 내곡리라 표기된 곳에 집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