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자원봉사/봉사단과 마을 이야기

가회면 목곡마을 봉사활동

천부인권 2009. 2. 9. 12:05

 

<황매산 가는 길에서 마을로 들어 오는 입구의 모습>

 

<상목교에서 본 목곡마을 모습 맨 좌측건물이 마을회관이다>

 

합천군 가회면 목곡마을 봉사활동


황매산 아래에 자리한 목곡마을은 황매산으로부터 흘러오는 하천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상목곡과 하목곡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물이 흔하고 깨끗하여 물맛이 좋을 뿐 아니라 청정한 자연환경과 공기로 인하여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다른 곳 보다 가격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2007년 7월 9일 태풍 “에위니아”가 오던 날 하천의 물이 넘치려 하여 서둘러 철수한 기억이 있는 합천군 가회면 목곡마을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에는 정확한 지명을 몰라 ‘동곡마을’로 소개를 한 곳이다.


2007년에는 하목곡 마을 입구에서 일을 하였지만 오늘은 상목곡마을에 「마을회관」이 만들어져 있어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농촌마을의 모습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았지만 곳곳에 빈집이 있었는데 도시로 나간 분들은 마을사람들이 매입을 하고자 하나 집이 허물어져도 팔지 않아 흉물처럼 남아 있었다.


마을 뒷산 넘어는 매화산으로 이어지는 「늘어재산」이라 불리는 길고 큰 능성이 형성되어 있어 높고 깊은 산골마을 임을 알 수 있게 한다. 6.25전쟁 때에는 빨치산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보았고 특히 짐승들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산속에다 짐승들을 숨겨두고 키우기도 하였다고 하목곡마을에 사시는 “김희순(73) 어르신이 말씀해주셨다.


어르신에게 논에 파릇하게 돋아난 것이 밀인지 보리인지 물어 보니 가을에 호밀(일명 대국밀)을 파종해 두었다가 봄이 되면 갈아엎어 거름으로 사용하며 올해는 가뭄이 심해 다른 해 보다 많이 자라지 못했다고 전해 주신다.


옛날에는 누에를 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벼농사를 주로하고 언덕에 두릅을 심어 년간 1백만원, 감나무 농사를 지어 1천만원 정도 수익을 얻고 있지만 몸이 아파 병원을 가자면 진주까지 택시비만 7만원이 들고 병원치료 받고 오면 25~26만원의 경비가 들어가신다며 걱정을 하신다.


마을 어르신 다른 분이 통나무를 지게에 지고 오시길래 난방에 대해 물어 보니 심야전기도 사용하고 나무로 군불을 지피는 방도 있다고 말씀을 하신다. 심야전기가 처음에는 전기세가 저렴하여 좋았지만 지금은 12만원 정도 나오신다며 물가가 오른 것을 걱정하셨다.


내 개인적으로는 마창기술봉사단을 따라 다니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모르고 살아갈 수 있었던 사소한 것들을 알게 되면서 오늘도 함께하는 단원님들의 고마움에 새삼 고개를 숙이게 된다.

 

 <상목곡 마을 전경>

 <마을 모습>

 <울안에 있는 염소가족>

 <가중나무 열매>

 <2007년 놀았던 정자, 하목곡마을 입구에 작은 공원을 이루고 있다>

 <허물어진 집>

 <하목교에서 본 하목곡마을>

<김도지사 집안의 재실앞에서 본 마을 전경 저멀리 "널어재 능선"이 보인다>

 <김희순 어르신>

<지게> 

 

우리들에게 잊혀지는 물건 중에 지게가 그 하나일 것이다. 사람하나 다닐 수 있는 작은 숲 속의 산길이나 논두렁길을 지나 물건을 옮기자면 지게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던 때가 어저께 같은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고 사용하는 분들은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지게


어린 자식은 아비의 지게가

어떤 고통의 무게인지 모르는 채

아비의 지게 위에서

세상이 모두 내 발아래에 있는 양

신이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묵묵히 미소지어며 또랑을 건너간다.


영혼까지 억누르는 무게를 견디려고

삶의 고통을 지게에 담아

까져서 쓰라린 양 어께 나누어 훈장을 만들었다.


그 지게를 내려놓으니

몸은 고통에서 벗어나 가벼워 졌지만

세상과 함께하고자 몸부림치던

정신까지 놓아 버릴까 염려가 된다.


<김지사 집안의 재실이라고 함. 하목곡마을 맞은편 언덕에 독립되어 있다>